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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위에 내리는 비 Jan 13. 2024

목우씨의 詩詩하게 살자(42)

제42편 : 박세현 시인의 '가던 길'

@. 오늘은 박세현 시인의 시를 배달합니다.


              가던 길
                                     박세현

  당분간 피해 있는 게 좋겠다는
  새벽 문자를 받았다 눈치 있는 나는
  얼른 몸을 감추고 잠수 타기로 했다
  핸드폰과 카드와 화폐 몇 장
  전철 우대권을 챙기고 집을 나왔다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길이다

  사람들이 나를 쳐다보는 것 같았지만
  실은 아무도 나를 거들떠보지 않았다
  지은 죄도 모르면서 달아나다니!
  억울한 노릇이다
  이왕 나왔으니 가던 길 먼 데까지 가보자
  정말 무죄일까? 나는
  - [공정한시인의사회](2022년 3월호)

  #. 박세현 시인(본명 박남철, 1953년생) : 강원도 강릉 출신으로 1983년 [문예중앙]을 통해 등단. 원주 상지영서대 교수로 근무하다 퇴직했으며, ‘빗소리듣기모임’을 만들어 활동하는 등 시와 수필을 씀




  <함께 나누기>


  어릴 때 식모살이(가정부) 한 여인이 들려준 이야깁니다.
  어느 날 집에서 주인아주머니가 아주 아끼던 금반지가 없어진 사건이 일어났답니다.  처음엔 어디 놔두고 못 찾는갑다 했더니 이곳저곳 찾아봐도 또 시간이 가도 나타나지 않자 그녀에게 묻더랍니다. 그때만 해도 걱정하지 않았답니다. 왜냐하면 자기가 갖고 간 게 아니기에, 자기완 상관없는 일이라 여겼는데...

  아주머니가 먼저 말을 꺼냈습니다.
  “너 혼자 있을 때 누가 온 적 없었니?”
  “네.”
  다음 아저씨 차례였습니다.
  “너 말고 없었다는 말이지? 그런데 너는 집을 비운 적 없었니?”
  ‘네’ 하고 대답하면서도 설마 자기를 의심할 줄 꿈에도 생각 못했답니다.

  그리고 이어진 기나긴 추궁. 완전히 자기를 범인으로 몰아놓고 이실직고하라는 투의 추궁에 이은 협박. 아무리 아니라고 해도 ‘네가 고백만 하면, 아니 반지만 갖고 오면 없었던 일로 하고 너를 계속 일하도록 하겠다’는 식으로 몰아붙였다 합니다.
  처음엔 완강히 부인하다가 몇 시간쯤 이어지자 정말 자기가 훔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내가 훔쳐서 어디 감춰두었지?’ 이런 생각까지 드니 그만 자기가 했다 말하고 싶었답니다. 다행히 다음날 아침 방문 틈에 낀 반지를 찾았지만 그녀는 한동안 자기가 훔쳤다는 강박관념에 빠졌다고 합니다.

  시로 들어갑니다.

  이 시는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두 갈래로 나뉩니다. '첫째, 화자는 죄를 지었다.' '둘째, 화자는 죄를 짓지 않았다.'
  죄를 지은 사람은 아주 극소수의 사이코패스 말고는 늘 그 죄의식에 눌러살게 된답니다.  거꾸로 결백한데도 누가 끊임없이 ‘너는 ~~한 죄를 짓지 않았느냐?’고 다그치면 정말 자기가 지은 것처럼 느껴져 그때도 죄의식에 빠져 살게 된답니다.

  “당분간 피해 있는 게 좋겠다는 / 새벽 문자를 받았다”
  아마도 아는 이가 전해준 문자인 듯. 그러자 화자는 눈치 빠르게 얼른 몸을 감추고 잠수 타기로 합니다. 아직까지 죄를 지었는지 지었다면 어떤 죄로 피신해야 하는지는 나와 있지 않습니다. 그저 피해야 한다는 의미만 담았을 뿐.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길이다”
  오랫동안 피신해야 할 정도로 상당히 큰 죄를 지은 듯. 허나 준비물은 달랑 핸드폰과 카드와 화폐 몇 장 전철 우대권뿐. 그만큼 다급하다는 뜻과 함께 도대체 이렇게 가난한 사람이 무슨 잘못을 저질렀을까 하는 궁금증을 읽는 이들에게 불러일으킵니다.

  “사람들이 나를 쳐다보는 것 같았지만 / 실은 아무도 나를 거들떠보지 않았다”
  어느 드라마에서 본 내용인데 죄를 짓고 달아나다 보면 모든 사람이 형사로 보인답니다. 옆으로 지나치는 사람이 혹 자기를 쳐다보기만 해도 ‘아, 나를 잡으러 왔구나!’ 하는 식으로.

  “지은 죄도 모르면서 달아나다니! / 억울한 노릇이다”
  여기서 반전이 일어납니다. 지은 죄도 모르면서 달아나고 있으니까요. 그럼 죄를 지었는지도 모르면서 왜 달아날까요? 우린 늘 쫓기듯이 살고 있는데 현대인의 ‘불안의식’ 혹은 ‘쫓기며 사는 삶’을 암시하려고?

  “이왕 나왔으니 가던 길 먼 데까지 가보자 / 정말 무죄일까? 나는”
  ‘정말 무죄일까? 나는’ 죄 없이 살아왔다고 하지마는 정말 나는 죄 없이 살아왔을까? 이렇게 되뇌며 자기 앞의 생을 바라보는 화자를 볼 때 정말 죄의식은 근원을 알 수 없어도 찾아온다는 말을 떠올리게 됩니다.

  어떤 분이 모임에서 이런 말을 하더군요. 길을 가는데 우락부락하게 생긴 데다 문신을 드러낸 조폭처럼 생긴 놈이, 분명 죄 없어 보이는 어리고 약한 사람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것을 보고 아무 말 못하고 그냥 지나쳐왔다고.
  그러자 주변에서 잘했다는 말이 나왔습니다. 괜히 끼어들었다간 봉변당할 텐데 잘 피했다는 뜻으로. 그때 그가 이런 말을 덧붙였습니다.
  “아무래도 내가 죄인 같아. 보복할까 봐 겁에 질러 경찰서에도 전화하지 못했다니까.”

  오늘 시에서 마지막 구절이 머릿속에 뱅뱅 돕니다.

  “정말 무죄일까? 나는”
  죄짓지 않고 산다고 여겼건만 누가 나더러 무죄냐 하면 자신 없습니다. 늘 떳떳이 산다고 자신 있게 말하는 분들이 부러운 오늘입니다.

  *. 위 그림은 구글 이미지에서 퍼왔는데 무슨 뜻인지 다 아시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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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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