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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위에 내리는 비 Jan 14. 2024

목우씨의 詩詩하게 살자(43)

제43편 : 강갑재 시인의 '잠시 왼손을 잊었네'

@. 오늘은 강갑재 시인의 시를 배달합니다.


       잠시 왼손을 잊었네
                                         강갑재

  오른손이 아이를 일으켜 세울 때
  왼손이 커피 잔을 들고 있는 것을 깜박 잊었네.
  두 손으로 일으켜야 할 일을
  가볍게 여겨
  아이의 옷에 커피를 쏟곤
  오른손으로 더 큰 울음을 일으켜 세웠네.
  아이는 얼룩진 모습으로 갔지만
  나는 울음을 쥐고 돌아왔네.
  그 참, 오른손에 정신이 팔려
  잠시 왼손을 잊었네.
    - [잠시 왼손을 잊었네](2003년)

#. 강갑재 시인(1951년생) : 경남 남해 출신으로 1999년 [문예연구]를 통해 등단. 부산 ㅇㅇ여고 교사로 재직하다가 퇴직한 뒤 양산 원동에서 ‘수류당’ 짓고 시를 씀




  <함께 읽기>


  몇 년 전 봄날의 일입니다.
  오래전에 오른팔에 오십견이 와 오른팔을 들지 못했지요. 자칫 잊고 무심코 들다 보면 아픔이, 정말 팔이 끊어지는 아픔이 찾아왔지요. 오른손잡이가 오른손을 못 쓰니 두 손으로 써야 할 일을 왼손만으로 할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게 얼마나 힘들던지...
  밭에 거름으로 가장 무난한 게 소똥입니다. 그래도 가끔 오줌거름이 필요한 경우가 있습니다. 바로 무밭. 신통하게도 오줌이 들어가면 쑥쑥 자랍니다. 물론 오줌을 바로 쓰지 않고 보름쯤 삭인 뒤에 사용합니다.

  그날도 제법 잘 삭은(?) 오줌을 퍼 옮기는 일을 하였습니다. 오른손이 시원찮아 왼손만으로 들고 옮기려 했습니다. 꽤나 조심했지만 두 손으로 들어도 될까 말까 한 일을 한 손으로 든 결과는… 얼마 못 가 그만 쏟고 말았습니다.
  잘 삭은 오줌통이 왼발등을 치면서 쏟아졌고… 한동안 왼발까지 절룩거려야 했으니 오른팔과 왼발이 고장 난 상태로 한동안 지내야 했습니다.

  시로 들어갑니다.

  “오른손이 아이를 일으켜 세울 때 / 왼손이 커피 잔을 들고 있는 것을 깜박 잊었네.”
  두 손으로 일으켜야 할 아이를 왼손에 커피잔을 들고 오른손만으로 아이를 일으켜 세운 당연한 결과는, 아이의 옷에 커피를 쏟았으니 뒷얘기는 없어도 아이는 심한 화상을 입었겠죠.
  시 읽기에 어느 정도 길들여진 분이라면 여기서 ‘와손’과 ‘오른손’을 반드시 우리 몸에 붙은 손으로만 생각하시지는 않겠지요. 왼손과 오른손은 붙은 방향만 다를 뿐 같은 일을 하는데, 각각 하나만 사용할 수도 있지만 둘이 함께여야 그 효과가 배가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이렇게 비슷한 곳에 붙어 있으면서 함께 해야 제 몫의 일을 하는 경우를 한번 유추해 봅시다.
  언뜻 몸과 마음이 떠오르네요. 몸이 움직일 때, 마음이 따라 움직입니다. 물론 마음이 움직일 때 몸도 따라 움직여야겠지요. 헌데 말입니다. 당연히 몸과 마음이 함께 움직여야 함에도 그렇지 못할 때가 있지요. 그랬을 때 문제는 생겨납니다.
  두 손으로 일으켜야 할 일은 한 손이 아닌 두 손으로 일으켜야 합니다. 커피 쏟으면 아이의 화상 정도로 끝날 수 있겠지만 그보다 더 큰 문제가 생길 수도 있습니다. 시인은 바로 이 점을 얘기하고자 함이 아닐까요?

  “그 참, 오른손에 정신이 팔려 / 잠시 왼손을 잊었네.”
  저는 오른손에 팔려 왼손을 잊는 짓을 참 많이 했습니다. 시행착오를 할 만큼 했으니 이제 둘의 힘을 합치는 방향으로 가야 할 텐데... 이렇게 쓰고는 얼마 뒤 잊고 또 왼손 잊고 삽니다. 양손의 중요성, 두 가지 합함으로써 얻는 유익함. 잠시 생각하는 시간 갖습니다.

  강갑재 시인은 제가 잘 아는 분입니다. 저랑 부산에서 같은 학교에 2년간 밖에 근무 안 했지만 정말 가깝게 지냈습니다. 제 이십 대 후반에 시인이랑, 나중에 그 학교 교장으로 퇴직하신 역사 선생님이랑, 우리 셋은 날이면 날마다 어울렸습니다.
  시는 물론 인문학에 관한 박학다식. 늘 저를 반성케 한 강갑재 시인, 20대 후반의 그 시절이 풍족했다면 이 분과 함께 하였음이라고 말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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