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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위에 내리는 비 Feb 01. 2024

목우씨의 詩詩하게 살자(57)

제57편 : 김재진 시인의 '누구나 혼자이지 않은 사람은 없다'

@. 오늘은 김재진 시인의 시를 배달합니다.


  누구나 혼자이지 않은 사람은 없다
                                                           김재진

  믿었던 사람의 등을 보거나
  사랑하는 이의 무관심에 다친 마음 펴지지 않을 때
  섭섭함 버리고 이 말을 생각해보라.
  - 누구나 혼자이지 않은 사람은 없다.
  두 번이나 세 번, 아니 그 이상으로 몇 번쯤 더 그렇게
  마음속으로 중얼거려보라.
  실제로 누구나
  혼자이지 않은 사람은 없다.
  지금 사랑에 빠져 있거나 설령
  심지 굳은 누군가 함께 있다 해도 다 허상일 뿐
  완전한 반려(伴侶)란 없다.
  겨울을 뚫고 핀 개나리의 샛노랑이 우리 눈을 끌듯
  한때의 초록이 들판을 물들이듯
  그렇듯 순간일 뿐
  청춘이 영원하지 않은 것처럼
  그 무엇도 완전히 함께 있을 수 있는 것이란 없다.
  함께 한다는 건 이해한다는 말
  그러나 누가 나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가.
  얼마쯤 쓸쓸하거나 아니면 서러운 마음이
  짠 소금물처럼 내밀한 가슴 속살을 저며 놓는다 해도
  수긍해야 할 일.
  어차피 수긍할 수밖에 없는 일.
  상투적으로 말해 삶이란 그런 것.
  인생이란 다 그런 것.
  누구나 혼자이지 않은 사람은 없다.
  그러나 혼자가 주는 텅 빔,
  텅 빈 것의 그 가득한 여운,
  그것을 사랑하라.
  숭숭 구멍 뚫린 천장을 통해 바라뵈는 밤하늘 같은
  투명한 슬픔 같은
  혼자만의 시간에 길들라.
  별들은
  멀고 먼 거리, 시간이라 할 수 없는
  수많은 세월 넘어 저 홀로 반짝이고 있지 않은가.
  반짝이는 것은 그렇듯 혼자다.
  가을날 길을 묻는 나그네처럼, 텅 빈 수숫대처럼
  온몸에 바람소릴 챙겨 넣고
  떠나라.
  - [누구나 혼자이지 않은 사람은 없다](2012년)
  

#. 김재진 시인(1955년생) : 대구 출신으로 1976년 [영남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 계명대 기악과 출신이란 특이한 이력의 시인으로 KBS 피디가 되어 음악계에서 활발한 활동함.

  이후 방송 피디란 안정된 직장을 떠나 바람처럼 떠돌며 글쓰기와 마음공부 전문방송 '유나(UNA)'를 만들어 조용히 산다고 함.




 <함께 나누기>

  내게 가장 가까운 사람은 누구일까? 아내(또는 남편), 부모님, 아니면 아들딸, 그도 아니면 친구? 헌데 가끔 그렇게 가까운 이에게도 말 못할 일이 가끔 생기지요. 어느 누구에게도 말 못할 그런 일.
  특히 '믿었던 사람의 등을 보거나', '사랑했던 사람에게서 배신을 당했을 때나', '정말 그 사람만은' 했던 이에게 마음을 다쳤을 때는 드넓은 세상에 혼자가 됩니다. 이런 일이 없어야 함에도 가장 인정하고 싶지 않은 사람에게 가장 뼈아프게 당하는 그런 순간이 옵니다.

  그럴 때 '우리의 청춘이 영원하지 않은 것처럼 그 무엇도 완전히 함께 있을 수 있는 것이란 없다.'라고 되뇌거나, 푸른 들판이 한순간 누렇게 말라버리듯 우리 곁을 떠날 때가 있듯이 '그 무엇도 완전히 함께 있을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라고 할 수밖에요.
  헌데 아시는지요? 혼자 있게 됨은 스스로 만든 것임을. 누구에겐가 절대적 믿음을 얻고 싶다면 내가 절대적 믿음을 주어야 하고,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다면 내가 먼저 그의 베개가 되어야 하는데 우린 그 점을 잊고 삽니다.

  우리는 스스로를 세상에서 가장 높은 사람이라고 착각하면서 살지요. 그러니 '나를 따라와야지, 내가 너를 따라갈 수 없다.'라는 지극히 이기적인 착각 속에 삽니다. 스스로를 사랑한다면서도 스스로를 가장 버림받게 만드는 존재가 바로 자신임을 잊고 삽니다.

  오늘 이렇게 한 번 외쳐봅시다.
  “혼자가 주는 텅 빔, 그 텅 빔에 가득한 여운, 그것을 사랑하라”라고.
  내가 고차원의 존재가 아니라 가장 낮은 존재임을 깨달을 때 나는 혼자가 아닙니다. 또,
  “가을날 길을 묻는 나그네처럼, 텅 빈 수숫대처럼 온몸에 바람소리 챙겨 넣고 떠나라”라고.
  문득 고창 선운사의 동백(冬栢)을 보러 떠나고 싶은 날입니다. 꽃은 피지 않았겠지만 갈맷빛 잎사귀가 반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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