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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위에 내리는 비 Feb 05. 2024

목우씨의 詩詩하게 살자(59)

제59편 : 나호열 시인의 '성자와 청소부'

@. 오늘은 나호열 시인의 시를 배달합니다.


      성자와 청소부
                               나호열

  오늘도 나는 청소를 한다
  하늘을 날아가던 새들의 어지러운 발자국
  어두운 생각 무거워
  구름이 내려놓은 그림자

  지상에서는 쓰레기라 부르는
  그 말씀들을
  버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화로 같은 마음에 모으기 위해
기꺼이 빗자루를 든다

  누군가 물었다
  청소부가 된 성자는 누구이며
  청소부로 살다 성자가 된 이는 누구인가

  나는 망설이지 않고 답하리라
  죽음만큼 멀리 사라졌다가
  어느새 다시 돋아 오르는 저 새싹을
  그 숨결을
  당신은 빗질하겠는가
  아니면 두 손 받들어 공손히 받쳐들겠는가
  - [촉도](2015년)
  

#. 나호열 시인(1953년생) : 충남 서천 출신으로 1986년 [월간문학]을 통해 등단. 철학박사 출신으로 현재 도봉구에서 "도봉문화원" 산하 '도봉학연구소장' 맡고 있으며, 경희대 사회교육원에서 문학과 철학 강의


- 아프가니스탄 거리의 청소부 [뉴스1](2013년 7월 25일) -



  <함께 나누기>

  가톨릭의 교황에 비교되는 인물을 불교에선 조사라 합니다. 1대 2대 3대... 이어지던 조사(祖師) 가운데 6조인 혜능 스님은 다른 조사들과는 달리 뜻밖의 승계를 했습니다. 5조인 홍인 스님 문하에는 명문가 자제들만 모였는데, 근본을 알 수 없는 자(?)가 들어옵니다.
  그래서 처음엔 방아 찧고 장작 패는 하찮은 일을 맡겼습니다. 그런 하찮은 스님이 조사 지위를 물려받습니다. 이는 이탈리아의 로마 거리를 깨끗이 쓸던 청소부가 하루아침에 교황이 됨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육조인 혜능 스님과 관련된 일화 한 번 볼까요.
  “한 이름난 스님이 [열반경]을 강의하고 있을 때 갑자기 깃발이 펄럭였는데, 행자 두 명이 이를 두고 논쟁하기 시작했다. 한 명은 깃발이 움직인 것이라고 했고, 다른 한 명은 바람이 움직인 것이라고 했다.
  제자들이 와서 혜능에게 판단을 맡겼다. 그러자 스님은 이건 깃발이 움직인 것도 아니고 바람이 움직인 것도 아니며, 스님들의 마음이 움직인 것이라고 했다. 마음이 움직이지 않으면 깃발이 움직이는 것도 바람이 움직이는 것도 보지 못한다. 본다는 것은 마음이 마음을 보는 것이다.”

  시로 들어갑니다.

  “오늘도 나는 청소를 한다”
  일반적인 청소의 방법을 한 번 살펴볼까요. 빗자루로 쓰레기를 바로 쓸어 담아 아궁이에 넣어 불에 태워 없앱니다. 다른 하나는 쓰레기를 한 곳에 다 모아 그냥 두거나 땅에 묻습니다. 그러면 쓰레기가 거름을 대신합니다.
  화자는 어떤 방법을 택할까요?

  “지상에서는 쓰레기라 부르는 / 그 말씀들”
  여기서 쓰레기란 간직해야 할 게 아니라 버려야 할 사물이란 뜻입니다. 그럼 왜 하필 말을 쓰레기라 할까요? 우리가 일상적으로 내뱉는 말들이 서로에게 도움 되기보다 해를 끼치는 경우가 더 많아서 이런 표현을 했을까요?

  “버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 화로 같은 마음에 모으기 위해 / 기꺼이 빗자루를 든다”
  쓰레기 같은 말을 버리기 위해서 빗자루를 드는 게 아니라 화로 같은 마음에 모으기 위해 빗자루를 듭니다. 화로는 태우는 기능을 하니 빗자루로 쓸어 마음에 들어온 쓰레기를 속에서 태우는, 달리 정화시키려 합니다.
  이 부분을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습니다. 여러 갈래로 풀이하기에 시가 함축적이란 말을 하지요. 저는 ‘귀에 들어온 좋지 않은 말을 받아치는 대신 속에서 정화시켜 삼키는 뜻으로 보니, 쓰레기를 모으면 거름이 될 수 있다.’는 뜻으로 풀이합니다.

  “누군가 물었다 / 청소부가 된 성자는 누구이며 / 청소부로 살다 성자가 된 이는 누구인가”
  20여 년 전에 시인 류시화가 펴낸 [성자가 된 청소부]가 떠오릅니다. 물론 시인도 그 책을 읽었을 테고, 아마도 제목에서 얻은 시행이겠지요. 허지만 저는 그 책보다 앞에 언급한 청소부(실제로는 ‘불목하니’)에 해당하는 혜능 스님과 같은 분을 가리키는 게 아닌가 합니다.

  다음은 혜능 스님에 관한 또 하나 일화입니다.
  “혜능 스님이 5조인 홍인 스님을 찾아갔을 때 홍인 대사가 혜능이 ‘영남 사람’이라 하자, 갑자기 꾸짖으며 영남 사람은 오랑캐인데 어떻게 부처가 될 수 있냐고 하였다. 이에 혜능이 말하길, 사람에게는 북쪽 사람과 남쪽 사람이 있지만, 부처의 성품에는 남과 북이 없다고 하였다.”
  그러니까 청소부도 성자가 될 수 있다. 아니 성자는 누구나 될 수 있다. 깨달음을 얻는 데는 신분 지위가 하등 필요 없다는 뜻으로.

  “나는 망설이지 않고 답하리라 / 죽음만큼 멀리 사라졌다가 / 어느새 다시 돋아 오르는 저 새싹을”
  한겨울에 풀과 나무를 보면 마치 죽은 것처럼 보입니다. 허지만 봄이 오면 다시 새싹이 돋아 살아납니다. 우리가 쓰레기라고 정의한 것 가운데 버려야 할 것도 있지만 버려서는 안 될 새싹과 같은 것도 있습니다.
  성자가 될 가능성이 있는 청소부 -새싹 -이라면 당연히 키워야겠지요. 시에서처럼 빗질해 버리지 말고, 두 손 받들어 공손히 받쳐들어야 할 존재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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