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워 떨며 웅크리다 아주 어두운 곳으로 떨어져서 피를 흘리다 절망하는 모습과 불쌍하도록 두려워 떠는 모습과 외로워서 목이 메이도록 그리운 사람을 부르며 울먹이는 모습을, 밤마다 식은땀을 흘리며 지나간 시절이 원죄처럼 목을 짓누르는 긴 악몽에 시달리는 모습을 맺히도록 분명하게 받아들이고 받아들이고 부딪치고 부딪쳐서 굳어진 것들을 흔들고 흔들어 마침내 다른 모든 생명들과 함께 흐르는 힘을 시라고 부르고 싶다.
일하고 먹고 살아가는 시간들 속에서 일하고 먹고 살아가는 일을 뉘우치는 시간들 속에서 때때로 스스로의 맨살을 물어뜯는 외로움 속에서 그러나 아주 겸손하게 작은 목소리로 부끄럽게 부르는 이름을 시라고 쓰고 싶다. - [취업공고판](1984년)
#. 박영근 시인(1958년~2006년) : 전북 부안 출신으로 1981년 [반시(反詩)] 6집을 통해 등단. 민중가요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의 작사가며, '최초의 노동자 시인'이란 접두어가 붙음
<함께 나누기>
한때 시론을 물고 늘어질 정도로 읽은 저도 시에 대한 정의를 이보다 더 잘 표현한 작품을 본 적 없습니다. (있다면 그저 제 지식의 부족으로 여겨주시길.)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시들 가운데는 밝음과 사랑과 행복과 평화를 노래하는 시가 참 많습니다. 그걸 노래함도 좋은 시가 되겠지요. 헌데 시인이 생각하는 시란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에서 좀 벗어납니다. 아니 매우 벗어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