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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위에 내리는 비 Feb 15. 2024

목우씨의 詩詩하게 살자(65)

제65편 : 장석남 시인의 '꽃차례'

@. 오늘은 장석남 시인의 시를 배달합니다.


            꽃차례
                              장석남

  조팝꽃이 피면 기침이 오지
  오래된 내 몸뚱이의 관습
  그맘때 한 이별이 있었지
  허리를 *쥐며느리처럼이나 굽히고
  쇤 기침을 쏟고 나면 이른 노을이 잔칫집 같았지

  조팝꽃이 지나가면 모란이 오지
  자줏빛 옛이야기 같은 모란이 오지
  이마 뜨거운 이 있을 거야
  혼이라도 가슴 싸늘한 이 있을 거야
  모란을 보면서 미워한 이가 있었거든
  허나 모란은 일찍 지는 꽃

  어느 아침 나는 서운히 서서
  모란이 있던 허공 언저리를 더듬어보지
  점잖은 호수와도 같이
  후회는 맑고
  꽃이 피고 지는 사이
  모든 후회는 맑아
  다시 한차례 살아오르는
  꽃 소식
  - [뺨에 서쪽을 빛내다](2010년)

  *. 꽃차례 : 꽃대에 달린 꽃의 배열 혹은 꽃이 피는 모양
  *. 쥐며느리 : 갑각류의 동물로 허리가 90°도로 꺾임

  #. 장석남 시인(1965년생) : 인천 덕적도 출신으로 1987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 현재 한양여대 문창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성철 스님의 일대기를 영화화 한 [성철]에서 성철 스님 역을 맡아 출연한 이력도 있음.

  다음 주(월) 배달할 장석주 시인과 혼동하는 경우가 많은데, 둘 다 이름 비슷한 데다 꽤 알려진 유명시인이기 때문입니다.



  <함께 나누기>


  아기 낳은 경험 있는 여인들 가운데 어떤 분은 아기 낳은 달이 돌아오면 몸이 아프답니다. 몸에 시계가 달린 것도 아닐 텐데 자식이 태어난 날 전후로 통증이 심해진다 하니. 애를 낳았던 시기를 마치 몸이 기억하듯이.

  심리학자들은 아주 강렬한 기억은 저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몸속 어딘가에 저장된다고 합니다. 그러다 깊이 어딘가 저장된 기억이 잠재의식을 타고 때가 되면 기억을 찾아 다시 나타난다는 말.


  오늘 시에서 화자는 특정 봄꽃이 피면 기침하고, 가슴이 싸늘해지기도 한답니다. 꽃이 피던 시기와 연결된 어떤 추억 때문에.


  시로 들어갑니다.


  "조팝꽃이 피면 기침이 오지"

  봄날 하필 조팝꽃 필 때가 되면 기침 난다고 합니다. 그 까닭은 '그맘때 한 이별' 때문이라고. 어찌나 기침이 심하게 나는지 반쯤 허리가 꺾이는 쥐며느리처럼 그리 굽힌 채 쇤 기침을 쏟아야 했답니다.


  "모란을 보면서 미워한 이가 있었거든"

  조팝꽃 지면 모란이 핍니다. 모란은 화왕(花王)이란 별칭대로 꽃 가운데 왕입니다. 그래서 글쟁이들은 모란을 글감으로 한 작품을 많이 남겼습니다. 헌데 화자에게 모란은 자줏빛 사랑 담은 꽃이 아니라 미워한 사람 때문에 꽃 필 때면 가슴이 싸늘해진답니다. 그나마 다행은 일찍 지는 꽃이란 점.


 "어느 아침 나는 서운히 서서/ 모란이 있던 허공 언저리를 더듬어보지"

  여기서 한때 내가 미워했던 그는 다른 미움이 아니라 애증 관계에서 온 것임을 엿볼 수 있습니다. 즉 일방적인 미움이 아니라 사랑을 하다 벌어진 의견 충돌일 수 있고, 또 다른 갈등일 수도 있습니다. 허니 안으로 삭이지 못한 회한이나 원망이 남아서 봄이 되면 붉은 모란꽃에서 통증을 느낍니다.


  "점잖은 호수와도 같이 / 후회는 맑고 / 꽃이 피고 지는 사이 / 모든 후회는 맑아"

  문창과 교수 시인다운 표현입니다. 책갈피에 간직하고 싶은. 이 부분뿐 아니고 참 깔쌈한 표현이 많습니다.

  그를 미워한 마음보다 그를 잃은 후회가 더 깊음을 봅니다. 모란은 피었다가 빨리 지기에 후회의 시간은 짧지만, 그래서 더욱 그립습니다. 하여 다시 한번 모란 핀다는 꽃 소식 들려오기를 기다립니다. 그 꽃 핌과 동시에 다시 미움의 불꽃 붙을지라도.


  올봄 어떤 꽃이 필 때 글벗님들은 이별의 아픔이나 미움의 회한을 느끼실지...

  저는 목련꽃 피면 헤어진 그녀가 생각나 잠시 눈시울 붉힐 예정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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