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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위에 내리는 비 Feb 16. 2024

목우씨의 산골일기(161)

제161화 : 개나리 우물가에 ~~~

     * 개나리 우물가에 ~~~ *



  며칠 전 화요일, 전날 본 일기예보에 깜짝 놀랐다. 내일 기온이 20°까지 오른다고 하지 않는가. 세상에, 2월 중순에 20도라니! 그래도 설마 했는데 마을 한 바퀴 돌고 오니 속옷이 땀에 흠뻑 절었다. 지난 늦가을 한 바퀴 돈 뒤로 이런 적은 처음이다.
  돌아와 집일 하러 살피니 밭 언덕 쪽 올라온 칡넝쿨과 찔레 줄기가 눈에 거슬렸다. 진작에 정리해야 할 일인데 여태 놔둔 걸 후회하던 참. 당장 낫을 들고나가 칡넝쿨 자르고 찔레 줄기 베어내고... 한참 일하다 눈에 뭔가가 띄었다.

  어, 개나리! 세상에 개나리가 살포시 웃고 있었다. 날이 따뜻하니까 당연히 피었겠지만 오늘 바로 피어난 건 아니리라. 그동안 예년보다 따뜻한 기온에 언제 피울까 기회를 엿보다 20도란 날씨에 옳다 싶어 몸을 열었으리.




  우리나라가 원산지인 식물이 꽤 된다. 서양에서 크리스마스트리 만들 때 쓰는 나무가 바로 ‘구상나무’도 그 가운데 하나다. 학명인 ‘Abies koreana, Korean fir’에 ‘korea’가 들어 있는 것만 봐도 잘 알 수 있으리라. 현재 보호종인데 주로 한라산에서 많이 볼 수 있다.

  ‘미선나무’도 우리나라 특산종이다. 세계적으로 1속 1종밖에 없는 매우 귀한 나무다. 물푸레나뭇과(科)에 속하는 식물 가운데 미선나무속(屬)은 세계에서 오직 하나밖에 없고, 종(種)으로도 미선나무 하나뿐이라는 뜻이다.

  봄이 되면 담벼락에 늘어져 온통 길가를 노오랗게 물들이는 개나리가 우리나라 특산이라 하면 다들 놀란다. 특히 개나리는 봄의 진행 속도를 알려주는 또렷한 지표가 되는 나무다. 해서 기상대에선 개나리 피는 걸 보아 봄꽃 개화 시기 예상도를 발표한다 하니.
  역시 학명 ‘Forsythia koreana’를 보면 korea가 들어가 있다. 그럼에도 구상나무와 미선나무와는 달리 우리나라 특산이 아닌 줄 아는 사람이 많다. 아마도 너무 흔하게 보이니 그런가. 아니면 우리나라 식물 가운데 중국 원산지가 많으니 으레 중국산이라 여겨서 그런가.


(봄날 활짝 피었을 때의 모습)



  사람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개나리가 우리나라 땅에서 우리 겨레의 정서에 잘 맞도록 적응해 온 가장 한국적인 나무라하면 너무 엉뚱할까.

  한때 국화(國花)인 무궁화가 나라꽃으로 맞지 않다는 비판 여론이 일면서 어떤 나무를 국화로 삼을까 하는 의견을 담은 기사를 보았다.


  무궁화 대신 가장 많이 거론된 꽃이 진달래였고, 다음이 개나리였다. 물론 몇몇 사람의 주장이라 이내 묻혔지만. 진달래는 굳이 김소월 님 시를 예로 들지 않더라도 우리 겨레의 정서와 잘 들어맞지만, 개나리가 거론된 까닭은 우리나라 특산종이라는 점이 우선 작용했다고 한다.
  거기에다 개나리 꽃잎은 떨어져 지저분하다는 느낌 받은 적 없다. 크기가 작아서? 같은 크기의 벚꽃도 떨어지면 보기 싫은데... 노랑이라 눈에 확 띄는데... 이쁘게 보니 이쁜 면이 자꾸 드러나는 참 이쁜 꽃.

  ‘꽃은 자세히 보아야 아름답다’는 시구가 있듯이 어느 꽃이든 가까이 눈을 대야 제 모습을 보여준다. 나는 완전히 벌어진 상태보다 살짝 감춘 듯 몽오리만 잡힌 모습을 더 이쁘게 여긴다. 그래서 ‘벚꽃 축제’ ‘꽃무릇 축제’ ‘매화 축제’ 하는 곳엔 안 간다.




  가끔 이웃에 사시다 하늘로 가신 가음댁 어르신이 떠오른다. 내 글에 자주 등장하신 분인데, 우리가 이곳에 발 내리도록 만드신 분이기도 하다. 그 어른의 말씀이 귀에 쟁쟁하게 들려온다. “촌놈이 되려면 벼가 부르는 소리를 들어야 한다오.”
  벼가 부르는 소리를 아직 듣지 못하니 반촌도 아니고 산골마을에 산 지 이십 년이 돼 가건만 나는 촌놈이 되지 못한다. 그래도 이런 말은 씨부릴 줄 안다.   
  “촌글을 쓰려면 적어도 만개한 꽃보다 살짝 몽오리 머금은 상태에, 그보다 새싹 움 돋는 모습에 눈을 더 줘야 한다.”라고.

  이맘때의 개나리는 활짝 벌어지진 않는다. 가끔 매화가 피었다는 소식이 들리는데(통도사 자장매가 피었다고 함) 그래도 활짝 펼치지는 않는다. 개나리에 눈을 주니 노랗기는 분명 노랑인데 바짝 갖다 대야 수줍은 듯 제 빛깔을 살짝 보여준다. 그때의 빛깔이 얼마나 고운지.


(돌담 너머 핀 개나리)

 


  몇 년 전 제자를 만나 이런저런 얘기 나누다 갑자기 그가 물었다.
  “선생님, 요즘도 봄날이면 개나리 피리 만들어 애들에게 들려주십니까?”
  무슨 말인가 하여 눈으로 묻자,
  “아 제가 수업할 때 선생님께서 개나리 가지 꺾어와 풀피리 만들어 불어주셨는데 기억 안 나십니까?”

  그러고 보니 그랬던 것 같다. 원래 갯버들로 만든 버들피리여야 제대로 된 소리가 나는데, 도시 주변에선 구하기 어렵다 보니 학교 울타리를 두르고 있던 개나리 가지 꺾어 만들어 불어줬던 기억이.
  개나리도 한창 물 오르면 갯버들과 다름없이 껍질만 쭉 빠지기에 만들기 쉽다. 일단 속을 뺀 껍질 원통형이면 불 수 있고. 다만 소리만 낼뿐 악보에 맞춰 부를 수 있는 실력은 못 된다. 그래도 아이들은 소리 나는 게 못내 신기했든지 기억하는 모양...


(갯버들 가지에서 속만 뽑아내(上) 끝부분을 얇게 하여 붊)



  우리 밭 언덕에 개나리가 절로 난 게 아니다. 일부로 심었다. 심은 까닭은 대나무처럼 뿌리내리면 서로 얽혀 쉬 무너지지 않는다는 점 때문이다. 게다가 일 년 내내 같은 빛깔인 대나무보다 개나리가 훨씬 보기 좋지 않은가. 노란 꽃이 만발하면 기분조차 좋아지니 말이다.
  봄이 오면 아예 가지를 잘라 언덕 이곳저곳에 더 옮겨 심을 참이다. 물만 주면 잘 사니 이내 퍼질 터. 아직 만개하려면 멀었지만 그때가 되면 가수 최숙자가 부른 “개나리 우물가에 사랑 찾는 개나리 처녀~”로 시작하는 「개나리 처녀」도 한 번 불러 봐야겠다.

  *. 사진 가운데 '담장 너머 핀 개나리'와 '버들피리'는 구글 이미지에서 퍼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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