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안나 시인(1965년생) : 제주 출신으로 1990년 [문학과 비평]을 통해 등단. 제주 지역에 관한 글(시 포함)을 많이 쓰며, 현재 시인으로 평론가로 열심히 활동함.
<함께 나누기>
언젠가 걸어다니며 '불우이웃돕기' 모금에 앞장서 일하던 활동가가 하도 부탁해서 딱 하루만 그의 뒤를 졸졸 따라다닌 적 있습니다. 그는 제가 알기로 부자 동네를 지나쳐 비교적 형편이 어려운 사람이 많은 동네로 들어서기에 물었습니다.
“아까 거기가 여기보다 잘 사는 사람들이 많은 곳 아니에요?”
혹 착각했나 싶어 물었더니,
“맞습니다. 여기가 저기보다 좀 못 사는 사람들이 많은 곳이지요.”
“그럼 왜?”
의문 담은 제 눈을 잠시 보더니,
“그게 참 모순이지요. 잘 사는 사람들보다 못 사는 사람들이 모금활동에 더 적극적입니다.”
말하는 그의 표정에 씁쓸함이 묻어나는 걸 보면서 그때는 그 뜻을 몰랐습니다.
시로 들어갑니다.
“왜 아픈 사람들이 / 아픈 사람에게 다가가 / 사랑이 되는 것일까”
화자는 이상하게 여깁니다. 아픈 - 가난한, 외로운, 힘든 -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나오는 다큐 프로그램인 [인간극장]을 보면서. 그렇지요, ‘과부 설움은 홀아비가 가장 잘 안다’는 속담이 있듯이 아픈 사람이 아픈 사람의 사정을 가장 잘 알아 나서서 도와준다는 뜻입니다.
“자석은 다른 극이 만나야 / 하나가 되는데 /슬픈 손과 손이 만나 /서로의 슬픔을 어루만진다”
자석은 두 개의 다른 극이 만나야 달라붙는데 사람은 같은 극끼리 붙는 점에 화자는 의아심을 갖습니다. 슬픈 손과 슬픈 손이 만나 서로의 아픔을 어루만집니다. 문득 달동네 사람에게 가장 먼저 손 내미는 사람은 왜 같은 달동네 사람인지 알 수 있는.
“아픈 것들끼리 만나 / 밀어내지 않는 / 수학으로는 풀리지 않는 / 인간이란 / 색다른 방정식”
우리네 삶은 수학처럼 맞아떨어지지 않습니다. 수학 공식이라면 부자가 가난한 이를 가까이해야 함이 옳지만 오히려 밀어내는 경향이 더 많습니다. 조금 옆길로 샙니다만 어렵게 살다 재산을 모은 사람이 가난한 이와 짝을 이루기보다 자기보다 더 부자 아니면 자기 정도 되는 이와 결혼하더군요.
“맹자의 성선설을 다시 읽는다”
갑자기 성선설이 튀어나왔습니다. 맹자가 성선설을 순자가 성악설을 주장했고, 성선설 성악설이 뭔지 배워 아는 이들에겐 참 뜬금없지요. 문맥이 잘 연결되지도 않습니다. 즉 시 내용과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착하게 태어났다’ 하는 성선설과 연결시키기 힘듭니다.
사람은 모두 '성선설'의 바탕이 되는 측은지심(惻隱之心 :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애처롭게 여기는 마음)을 지니고 태어났으니 아픈 이를 보면 도와줄 수밖에 없다는 뜻인지... 그러다가 아프지 않은 사람이 아픈 사람을 도와주기가 더 낫지 않느냐 하는 반론엔 마땅히 답할 수 없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