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무 위에 내리는 비 Feb 27. 2024

목우씨의 詩詩하게 살자(71)

@. 오늘은 문태준 시인의 시를 배달합니다.


    우리는 서로에게
                                문태준

  우리는 서로에게
  환한 등불
  남을 온기
  움직이는 별
  멀리 가는 날개
  여러 계절 가꾼 정원
  뿌리에게는 부드러운 토양
  풀에게는 풀여치
  가을에게는 갈잎
  귀엣말처럼 눈송이가 내리는 저녁
  서로의 바다에 가장 먼저 일어나는 파도
  고통의 구체적인 원인
  날마다 석양
  너무 큰 외투
  우리는 서로에게
  절반
  그러나 이만큼은 다른 입장
  - [내가 사모하는 일에 무슨 끝이 있나요](2018년)
  

#. 문태준 시인(1970년생) : 경북 김천 출신으로 1994년 [문예중앙]을 통해 등단. 37세의 나이로 ‘소월시문학상’을 받아 차세대 가장 주목받는 시인으로 평가받았으며, 현재 [불교방송] PD로 '문태준의 생각'이란 프로그램을 운영



  <함께 나누기>


  이 시는 쉬우면서도 가슴 쩌리게 하는 작품이면서 시행 하나하나를 따지고 들면 갑자기 어려운 시가 됩니다. 그래서 제가 임의로 해설 답니다만 글벗님들은 자기에게 다가온 소리로 들으시고, 그 소리를 댓글로 보내주시면 좋겠습니다.

  또 이 시는 패러디하기 아주 좋은 시입니다. 한 편 다 쓰기 힘들다면 두세 시행이라도 써 남겨주시길. 꽤 유익한 시간이 되리라 확신합니다.


  먼저 시 이해를 돕기 위해 제가 임의로 나눈 세 연(1행~10행, 11행 ~ 14행, 15행 ~ 17행)을 보십시오. 아마 느낌이 올 겁니다. 1연은 우리는 서로에게 ‘긍정적’, 2연은 ‘부정적’, 3연은 ‘긍정과 부정의 합’으로 나눠봤는데...


  시로 들어갑니다.


  우리는 서로에게 '환한 등불'이라는 시행은 따로 덧붙일 필요가 없을 겁니다. 어두운 밤길 가다 내가 길을 잃거나 두려움에 떨 때 길잡이가 돼 주는 등불이 되어주니까요.


  우리는 서로에게 '남을 온기'는 의미 있는 시행입니다. '남은' 온기가 아니라 '남을'이라 함에 주목합니다. '남은 온기'가 내가 쓰다가 다 쓰고 내게 필요 없어 네게 주는 온기라면, ‘남을’은 쓰기도 전에 미리 너부터 챙겨주는 온기이기 때문에.


  우리는 서로에게 ‘움직이는 별’은 어떤 뜻일까요? 아마도 내가 가는 길마다 따라가며 비추는 별일 겁니다. 비록 별빛은 희미해도, 희미하기에 더욱 서로에게 더 소중한 빛이란 뜻으로 해석해 봅니다.


  우리는 서로에게 ‘멀리 가는 날개’는 그 날개를 활짝 펼치고 마음껏 넓은 세상을 날아다니게 만든다는 뜻으로 읽습니다.

  우리는 서로에게 ‘여러 계절 가꾼 정원’은 그만큼 서로에게 정성을 기울인다는 뜻으로 새기면 되겠지요.


  우리는 서로에게 ‘뿌리에게는 부드러운 토양’처럼 아낌없이 영양소를 주는, 서로의 행복을 위한 밑거름이 되겠다는 뜻으로 읽습니다.

  우리는 서로에게 ‘풀에게는 풀여치’, ‘가을에게는 갈잎’는 그만큼 잘 어울리는 사이란 뜻으로 봅니다. 풀과 풀여치, 가을과 갈잎의 조화는 늘 아름다우니까요.


  우리는 서로에게 ‘귀엣말처럼 눈송이가 내리는 저녁’이랍니다. 눈송이는 함박눈입니다. 눈 가운데 따뜻한 눈송이입니다. 비록 겨울밤이라도 서로를 포근히 감싸 안는 날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으리라 봅니다.


  우리는 서로에게 ‘서로의 바다에 가장 먼저 일어나는 파도’랍니다. 그렇지요. 가끔 우리 사이에 격랑이 일어나 싸우기도 합니다.

  우리는 서로에게 ‘고통의 구체적인 원인’이기도 합니다. 가장 가까운 사람이 아프게 했을 때 그 고통이 더 심하다는 걸 잘 알지요.


  우리는 서로에게 ‘날마다 석양’입니다. 석양이 아름답지만 지는 해입니다. 언젠가는 이별을 준비해야 하는.

  우리는 서로에게 ‘너무 큰 외투’. 억지로 맞추려 하나 잘 맞지 않아 어색한 쌍이 되기도 합니다.


  “우리는 서로에게 / 절반 / 그러나 이만큼은 다른 입장”

  우리는 서로에게 절반이라고 합니다. 너는 나의 전부가 아닙니다. 그러다 보니 다른 입장에서 말합니다. 아무리 사랑해도 그 사랑을 아프게 하는 일이 생김은 전부가 아닌 절반이기 때문이겠지요.


  다음은 인터넷에서 찾은 위의 시를 패러디한 작품입니다.


  우리는 서로에게

  왼손을 그리워하는 오른손,

  입맛 도는 음식을 싸 들고 문병 가고 싶은 환자,

  바꾸고 싶어도 자꾸 원래 자리로 되돌아가는 실패한 가르마,

  어둡지도 않고 밝지도 않은 삼십 촉짜리 백열전구,

  스마트폰 시대가 도래한 줄 모르고 쓰는 옛날의 우직한 폴더폰,

  달면서도 아리고 매운 생강차,

  홍합을 끓인 국물쯤은 언제든 공짜로 내어주는 저녁의 포장마차,

  그리고,

  우리는 서로에게 정다운 원수.


  *. 시 낭송 한 번 들어보십시오.


https://youtu.be/fA8b3PTAcyI?si=fDCkld3YDkbUbkgd


[문학집배원] 문태준, 우리는 서로에게

우리는 서로에게문태준우리는 서로에게환한 등불남을 온기움직이는 별멀리 가는 날개여러 계절 가꾼 정원뿌리에게는 부드러운 토양풀에게는 풀여치가을에게는 갈잎귀엣말처럼 눈송이가 내리는 저녁서로의 바다에 가장 먼저 일어나는 파도고통의 구체적인 원인날마다 석양너무 큰 외투우리는 서로에게절반그러...

www.youtube.com

작가의 이전글 목우씨의 詩詩하게 살자(70)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