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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위에 내리는 비 Feb 26. 2024

목우씨의 詩詩하게 살자(70)

제70편 : 고재종 시인의 '면면함에 대하여'

@. 오늘은 고재종 시인의 시를 배달합니다.


     면면함에 대하여
                                고재종

  너 들어 보았니
  저 동구 밖 느티나무의
  푸르른 울음소리

  날이면 날마다 삭풍 되게는 치고
  *우듬지 끝에 별 하나 매달지 못하던 지난겨울
  온몸 상처투성이인 저 나무
  제 상처마다에서 뽑아내던
  푸르른 울음소리

  너 들어 보았니
  다 청산하고 떠나 버리는 마을에
  잔치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그래도 지킬 것은 지켜야 한다고
  소리 죽여 흐느끼던 소리
  가지 팽팽히 후리던 소리

  오늘은 그 푸르른 울음
  모두 이파리 이파리에 내주어
  저렇게 생생한 초록의 광휘를
  저렇게 생생히 내뿜는데

  앞들에서 모를 내다
  허리 펴는 사람들
  왜 저 나무 한참씩이나 쳐다보겠니
  어디선가 북소리는
  왜 둥둥둥둥 울려 나겠니
  - [방죽가에서 느릿느릿](2012년)

  *. 우듬지 : 나무줄기에서 가장 꼭대기 부분

  #. 고재종(1957년생) : 전남 담양 출신으로 1984년 [실천문학]을 통해 등단. 농고 졸업이 최종학력임에도 최고 권위의 ‘소월시문학상’(16회)을 받았으며, 현재 고향에서 농사를 짓고 살며 농촌 현실을 담은 시를 많이 씀



  <함께 나누기>


  우리 부부가 현재 사는 터를 사려할 때 마음을 사로잡은 게 여럿 있지만 제겐 두 종류의 나무였습니다. 뽕나무와 감나무. 감나무는 시골길 가다 보면 오래된 나무를 더러 봐 끌림이 적은 편이었지만 뽕나무는 정말 컸습니다.

  학교에 근무했으니까 늘 그에 빗대하는 식으로 표현하자면 뽕나무의 넓이는 교실 한 칸을 채우고도 남고, 높이는 건물 3층 정도라 할까요. 나이를 물어보니 100년 넘었다고 했습니다. 물론 감나무도 100년 넘었고. 허나 감나무는 올해를 넘기지 못할 것 같습니다.


  뽕나무는? 뽕나무는 처음보다 훨씬 더 크고 더 늠름합니다. 시에 나온 표현처럼 하자면 여전히 ‘면면합니다’. '면면하다'는 ‘끊어지지 않고 이어지다’는 뜻인데, 우리 뽕나무는 올해도 면면하게 5월 중순에 오디를 달아 6월 중순까지 매달고 있겠지요. 그러면 저는 ‘또다시 찾아온 오디의 계절’이란 이름으로 글을 써낼 테고. 참 변함없습니다. 아니 면면합니다.


  오늘 시에서 시인은 아주 오래된 느티나무를 잡았습니다. 그 나무는 동구 밖에 자리잡았다고 했으니 아마도 당산나무일 듯.


  “너 들어 보았니 / 저 동구 밖 느티나무의 / 푸르른 울음소리”

  느티나무의 울음소리가 들립니다. 그 울음은 겨울 늙은 나무에 몰아치던 된바람이 주는 아픔에서 나오는 신음입니다. 그런데 그 아픈 소리가 푸르다고 합니다. 이때의 ‘푸르른’은 ‘서슬 푸른’ 할 때처럼 아픔의 강조 표현으로 보입니다.


  2연으로 갑니다.


  지난겨울은 유독 날이면 날마다 삭풍이 되게 몰아치고 우듬지 끝에 별 하나 매달지 못할 정도로 매서운 날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래서 나무는 너무나 혹독한 고통에 상처마다 푸르른 울음소리를 뽑아내야만 했습니다.


  3연으로 갑니다.


  현재 사람이 떠나 황폐화한 시골의 모습과 그것을 지키려는 몸부림의 충돌을 봅니다. ‘다 청산하고 떠나 버린 마을’이지만 ‘아직 시골은 끝나지 않았으니 지킬 때까지 지켜야 한다고 소리 죽여 흐느끼는 소리’의 충돌입니다.


  제4연으로 갑니다.


  3연까지 이어진 고통의 순간은 ‘오늘은’이 나오며 반전을 이룹니다. 현재로 시점이 전환됨과 동시에 분위기도 바뀝니다. 또한 1, 2연의 ‘푸르른 울음’과 4연의 ‘푸르른 울음’은 전혀 뜻이 다릅니다. 즉 앞이 고통의 강조였다면 여기선 생명력의 회복이니까요.


  5연으로 갑니다.


  사람들에게 잊혀 갔던 느티나무는 모내기를 하며 농사를 짓고 마을을 유지하려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존재가 됩니다. 마침 그때 시골 마을에선 북소리가 울려 퍼집니다. '북소리'는 삶의 용기를 돋워주는 소리라 봐야겠지요.


  자 여기서 ‘면면함’의 뜻을 한 번 더 새겨봅니다. 이 시에서 면면함은 단 한 번의 고통을 이겨내고 일어섬을 의미함에 그치지 않습니다. 앞으로 이어질 고통까지 면면하게 이겨낼 의지를 담았습니다. 즉 우리네 농촌은 계속 고통받을 숙명을 띄어야 하나 그때마다 계속 이겨낼 것이라고.


  *. 사진은 천연기념물 제545호로 지정된 대전광역시 괴곡동 소재의 ‘느티나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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