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가 순댓국집으로 들어간 사이 나는 밖에서 눈을 맞았다. 무슨 돈이기에 문산까지 받으러 와야 했느냐고 묻는 것도 잊었다.
친구는 돈이 없다는 사람에게 큰소리를 치는 것 같았다. 소주나 한 잔 하고 가자며 친구는 안으로 들어오라 했다.
몸이 불편한 사내와 몸이 더 불편한 아내가 차려준 밥상을 받으며 불쑥 친구는 그들에게 행복하냐고 물었다. 그들은 행복하다고 대답하는 것 같았고 친구는 그러니 다행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믿을 수 없다는 듯 언 반찬 그릇이 스르르 미끄러졌다. 흘끔흘끔 부부를 훔쳐볼수록 한기가 몰려와 나는 몸을 돌려 눈 내리는 삼거리 쪽을 바라보았다. 눈을 맞은 사람들은 까칠해 보였으며 헐어 보였다.
받지 않겠다는 돈을 한사코 식탁 위에 올려놓고 친구와 그 집을 나섰다. 눈 내리는 한적한 길에 서서 나란히 오줌을 누며 애써 먼 곳을 보려 했지만 먼 곳은 보이지 않았다.
요란한 눈발 속에서 홍시만 한 붉은 무게가 그의 가슴에도 맺혔는지 묻고 싶었다. - [바람의 사생활](2006년)
#. 이병률 시인(1967년생) : 충북 제천 출신으로 1995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 현재 [문학동네] 계열 [달]의 대표로, 영화 제작자로, 방송작가로, 세계를 떠도는 여행가로 활동 중이며, 펴낸 책들이 대부분 베스트셀러가 됨 (산문집 [끌림]이 100만 부 팔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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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읽으며 이 시와 비슷한 내용을 어디서 본 것 같아 인터넷을 뒤지니 [좋은생각] '생활문예대상' 공모 대상 수상작에 닮은 내용이 나오더군요. 다만 하나는 시요, 하나는 수필인데 다행히 시인의 시가 대상 수상작보다 10년 뒤 나왔으니 베낀 건 아닙니다. ('친구의 유언 제10회 생활문예대상' 검색하면 나옴)
이와 비슷한 얘길 들어선 지 확실히 수필보단 시가 더 땡깁니다. 아무래도 함축성 때문인 듯. 오늘 시는 예전 [TV문학관]을 보는 듯 장면 하나하나를 마치 독자가 관찰자인 듯 빨려 들게 만듭니다. 따로 해설이 필요 없는 작품입니다. 저는 이 시를 읽으며 화자의 친구가 빚을 받으러 가는 설정에 그 친구는 돈을 빌려 간 사람의 처지를 진작부터 알고 있지 않았을까 합니다. 그래서 돈을 찾기 위함이 아니라 뭔가 도움 베풀 기회를 주러 일부러 찾아갔다는 합리적 의심을 합니다.
“불쑥 친구는 그들에게 행복하냐고 물었다. 그들은 행복하다고 대답하는 것 같았고 친구는 그러니 다행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왜 친구는 부부에게 행복하냐고 물었을까요? 남편은 몸이 불편하고 아내는 남편보다 더 불편하고 또 무척 가난한데 왜 그런 질문을 했을까요? 당연히 ‘불행하다’ ‘살기 힘들다’ ‘괴롭다’ ‘죽지 못해 산다’ 이런 대답을 기대했을까요?
“믿을 수 없다는 듯 언 반찬 그릇이 스르르 미끄러졌다. 흘끔흘끔 부부를 훔쳐볼수록 한기가 몰려와 ~~~” 참 이해할 수 없는 노릇입니다. 해서 화자는 몸 돌려 바깥쪽을 바라봅니다. 외면하려는 몸짓일까요? 눈을 맞고 있는 바깥쪽의 사람들은 까칠해 보이고 헐어 보이는데 이 안에 있는 가난한 사람들이 행복하다는 사실이 이해 안 됩니다.
“받지 않겠다는 돈을 한사코 식탁 위에 올려놓고 친구와 그 집을 나섰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은 계속 이어집니다. 돈을 받으러 간 사람이 도로 자기 돈을 내놓고 돌아오다니. 여기서 제목인 ‘외면’을 생각합니다. 돈을 빌려 갔더라고 그가 나보다 더 어렵다면 도와줘야 한다는 사실을 우린 외면하고 살아왔기에.
“요란한 눈발 속에서 홍시만 한 붉은 무게가 그의 가슴에도 맺혔는지 묻고 싶었다” 그 집을 나와 한적한 길에 서서 친구와 나란히 오줌을 누며 애써 먼 곳을 보려 하는데 뜨거운 김이 땅 위에서 스멀스멀 올라옵니다. ‘홍시만 한 붉은 무게’는 가난한 사람에게 기울이는 친구의 뜨거운 마음이면서, 그런 사실을 외면하고 산 화자의 부끄러움도 담긴 표현으로 읽습니다.
끝내면서 이 시인이 [이별이 오늘 만나자고 한다]란 시집을 펴냈는데, 거기 서문에 나오는 구절이 참 예뻐 옮겨봅니다.
"집이 비어 있으니 며칠 지내다 가세요 바다는 왼쪽 방향이고 슬픔은 집 뒤편에 있습니다 더 머물고 싶으면 그렇게 하세요 나는 그 집에 잠시 머물 다음 사람일 뿐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