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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위에 내리는 비 Mar 07. 2024

목우씨의 詩詩하게 살자(77)

제77편 : 이병률 시인의 '외면'

@. 오늘은 이병률 시인의 시를 배달합니다.


                 외면
                                      이병률

  받을 돈이 있다는 친구를 따라 기차를 탔다. 눈이 내려 철길은 지워지고 없었다.

  친구가 순댓국집으로 들어간 사이 나는 밖에서 눈을 맞았다. 무슨 돈이기에 문산까지 받으러 와야 했느냐고 묻는 것도 잊었다.

  친구는 돈이 없다는 사람에게 큰소리를 치는 것 같았다. 소주나 한 잔 하고 가자며 친구는 안으로 들어오라 했다.

  몸이 불편한 사내와 몸이 더 불편한 아내가 차려준 밥상을 받으며 불쑥 친구는 그들에게 행복하냐고 물었다. 그들은 행복하다고 대답하는 것 같았고 친구는 그러니 다행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믿을 수 없다는 듯 언 반찬 그릇이 스르르 미끄러졌다. 흘끔흘끔 부부를 훔쳐볼수록 한기가 몰려와 나는 몸을 돌려 눈 내리는 삼거리 쪽을 바라보았다. 눈을 맞은 사람들은 까칠해 보였으며 헐어 보였다.

  받지 않겠다는 돈을 한사코 식탁 위에 올려놓고 친구와 그 집을 나섰다. 눈 내리는 한적한 길에 서서 나란히 오줌을 누며 애써 먼 곳을 보려 했지만 먼 곳은 보이지 않았다.

  요란한 눈발 속에서 홍시만 한 붉은 무게가 그의 가슴에도 맺혔는지 묻고 싶었다.
  - [바람의 사생활](2006년)

  #. 이병률 시인(1967년생) : 충북 제천 출신으로 1995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 현재 [문학동네] 계열 [달]의 대표로, 영화 제작자로, 방송작가로, 세계를 떠도는 여행가로 활동 중이며, 펴낸 책들이 대부분 베스트셀러가 됨 (산문집 [끌림]이 100만 부 팔림)




  <함께 나누기>

  시를 읽으며 이 시와 비슷한 내용을 어디서 본 것 같아 인터넷을 뒤지니 [좋은생각] '생활문예대상' 공모 대상 수상작에 닮은 내용이 나오더군요. 다만 하나는 시요, 하나는 수필인데 다행히 시인의 시가 대상 수상작보다 10년 뒤 나왔으니 베낀 건 아닙니다.
  ('친구의 유언 제10회 생활문예대상' 검색하면 나옴)

  이와 비슷한 얘길 들어선 지 확실히 수필보단 시가 더 땡깁니다. 아무래도 함축성 때문인 듯. 오늘 시는 예전 [TV문학관]을 보는 듯 장면 하나하나를 마치 독자가 관찰자인 듯 빨려 들게 만듭니다. 따로 해설이 필요 없는 작품입니다.
  저는 이 시를 읽으며 화자의 친구가 빚을 받으러 가는 설정에 그 친구는 돈을 빌려 간 사람의 처지를 진작부터 알고 있지 않았을까 합니다. 그래서 돈을 찾기 위함이 아니라 뭔가 도움 베풀 기회를 주러 일부러 찾아갔다는 합리적 의심을 합니다.

  “불쑥 친구는 그들에게 행복하냐고 물었다. 그들은 행복하다고 대답하는 것 같았고 친구는 그러니 다행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왜 친구는 부부에게 행복하냐고 물었을까요? 남편은 몸이 불편하고 아내는 남편보다 더 불편하고 또 무척 가난한데 왜 그런 질문을 했을까요? 당연히 ‘불행하다’ ‘살기 힘들다’ ‘괴롭다’ ‘죽지 못해 산다’ 이런 대답을 기대했을까요?

 “믿을 수 없다는 듯 언 반찬 그릇이 스르르 미끄러졌다. 흘끔흘끔 부부를 훔쳐볼수록 한기가 몰려와 ~~~”
  참 이해할 수 없는 노릇입니다. 해서 화자는 몸 돌려 바깥쪽을 바라봅니다. 외면하려는 몸짓일까요? 눈을 맞고 있는 바깥쪽의 사람들은 까칠해 보이고 헐어 보이는데 이 안에 있는 가난한 사람들이 행복하다는 사실이 이해 안 됩니다.

  “받지 않겠다는 돈을 한사코 식탁 위에 올려놓고 친구와 그 집을 나섰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은 계속 이어집니다. 돈을 받으러 간 사람이 도로 자기 돈을 내놓고 돌아오다니. 여기서 제목인 ‘외면’을 생각합니다. 돈을 빌려 갔더라고 그가 나보다 더 어렵다면 도와줘야 한다는 사실을 우린 외면하고 살아왔기에.

  “요란한 눈발 속에서 홍시만 한 붉은 무게가 그의 가슴에도 맺혔는지 묻고 싶었다”
  그 집을 나와 한적한 길에 서서 친구와 나란히 오줌을 누며 애써 먼 곳을 보려 하는데 뜨거운 김이 땅 위에서 스멀스멀 올라옵니다. ‘홍시만 한 붉은 무게’는 가난한 사람에게 기울이는 친구의 뜨거운 마음이면서, 그런 사실을 외면하고 산 화자의 부끄러움도 담긴 표현으로 읽습니다.

  끝내면서 이 시인이 [이별이 오늘 만나자고 한다]란 시집을 펴냈는데, 거기 서문에 나오는 구절이 참 예뻐 옮겨봅니다.

  "집이 비어 있으니 며칠 지내다 가세요
  바다는 왼쪽 방향이고
  슬픔은 집 뒤편에 있습니다
  더 머물고 싶으면 그렇게 하세요
  나는 그 집에 잠시 머물 다음 사람일 뿐이니

  당신은, 그 집에 살다 가세요"

   *. 사진은 모두 구글 이미지에서 퍼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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