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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위에 내리는 비 Mar 08. 2024

목우씨의 산골일기(163)

제163화 : 길고양이를 위하여

         * 길고양이를 위하여 *



  나는 개(반려견 포함)를 썩 좋아하지 않는다. 예전에 풍산개 태백이를 키우긴 했으나 집 지키는 개로 키웠을 뿐 사랑해서 키운 건 아니다. 반려묘라 이름 붙은 고양이는 물론 길고양이도 꺼려한다. 밤에 울어대는 소리에 진절머리 친다.
  그에 비해 야생동물은 좋아한다. 그래서 내 글에 고라니, 너구리, 까치, 꿩이 자주 등장함도 다 그런 이유다. 길 가다 혹 고라니나 너구리를 쫓는 개를 보면 그 개가 밉고, 길고양이가 닭이나 작은 새를 공격하면 호통친다.




  길고양이를 처음부터 미워했던 건 아니다. 오디철이 되면 떨어진 오디가 한 군데 모이도록 깔아놓은 그물 위나 깨끗이 깎아놓은 잔디 위에 똥 싸는 걸 보기 전엔. 허나 이런 작은 이유로 길고양이를 싫어하면 좀스럽다 여길지 몰라 다른 큰 이유 하나 더 붙인다.
  창고문을 열다가 갑작스레 뛰쳐나온 녀석에게 놀라 뒤로 넘어졌는데, 아주 다행히 엉덩방아만 찧었을 뿐 병원 갈 부상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혹 엉치뼈라도 다쳤으면... 그 뒤 녀석이 나타나기만 하면 몽둥이 들고 내쫓았다. 확실히 효과가 컸다. 우리 집 근처에 길고양이가 사라졌으니.

  그런데... 길고양이에게 빚진 일이 생겼다. 4 년 전 한 달 가까이 중남미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 집 구석구석을 둘러볼 때였다. 그동안 센바람 불지 않았고 큰비도 내리지 않았다는 이웃 사람 말에 안도했지만 그래도 혹시나 이곳저곳 살펴보다가 황토방 아궁이 문을 열었다.




  헌데 잔뜩 어질러져 있고 어디선가 배어 나오는 고약한 내음. 그러자 뭔지 모르게 머리 뒤끝을 당기는 찝찝함... 세상에, 고양이 한 마리가 죽어 있었다. 아마도 떠나기 전 낮에 몰래 창고에 들어왔다 문이 닫히는 바람에 24일 동안 쫄쫄 굶어 죽은 듯.

  평소에야 아침에 열었다가 저녁에 닫았으니 아궁이 열기로 하룻밤 따뜻하게 보내고 다음날 아침 문 열면 나가면 됐으니 녀석도 그리 했으리라. 허나 집을 오랫동안 비우니 열어둘 수 없었다. 거기로 바람 들어오는 거야 괜찮으나 비바람 몰아치면 창고가 엉망이 되니까.




  정말 창고 안이 엉망이었다. 얼마나 몸부림쳤던지 호미 낫 같은 농기구는 바닥에 떨어져 있고, 말리려 널어놓은 양파와 마늘 묶음조차 건드린 모양이다. 그러다 뜯겨나간 스티로폼 상자를 보았을 땐... 번연히 먹이가 아님을 알았으련만 뜯어먹은 모양이다. 먹으면서도 얼마나 괴로웠을까.

  그동안 길고양이 때문에 이리저리 피해를 많이 입었다. 똥은 약과다. 발정기만 되면 밤마다 울어대는 소리에 잠을 설치기도 하고, 음식물 쓰레기를 땅속에 묻으면 어떻게 알고 왔는지 다 파헤쳐놓고... 달걀 공급받으려 병아리 사와 닭장 만들어놓았는데 어떻게 들어갔는지 다 죽여 놓고...




  그래도 앞에 언급한 엉덩방아 찧는 사고만 없어도 미워하지 않았으련만. 그래서 녀석이 굶어 죽든, 차에 치어 죽든, 쥐약 먹고 죽든, 잘 죽었다고 고소하게 여겨야 하는데... 그냥 죽은 게 아니라 굶어 죽은 게 아닌가. 동물의 죽음 가운데 가장 비참한 죽음이다. 고통 없이 바로 죽은 게 아니라 죽을 때까지 고통을 느껴야 하는.
  먹이에 대한 본능적인 욕구, 그래서 스티로폼 상자까지 뜯었겠지만 그럴 때까지 얼마나 배가 고팠을까. 빵 한 조각 물 한 모금, 정말 간절했으리라. 미운 녀석이지만 그게 몹시도 마음 아프다. 어느 동물이든 굶어 죽은 모습은 더없이 비참하다. 그 점이 내가 길고양이에게 진 마음의 빚이다.




  그 일 있고부터 낚시 갔다 잡은 생선 가져와 그릇에 담아 밖에 두었다. 그러면 언제 와서 먹어치우는지 금방 사라진다. 낚시 가지 않을 때는 먹고 남은 음식 가운데 녀석이 먹기 가능한 것만 골라주거나 유통기한이 얼마 안 남은 라면 같은 것도 부숴 줬다.
  그러다가 마침내 사료도 샀다. 사료 있으니 다른 먹이가 없을 때 주면 돼 참 요긴하다. 그동안 드나드는 길고양이를 제대로 본 적 없다. 아직도 먹이 주는 우리를 겁내는지 현관문 소리만 나도 몸을 숨기니.

  그러고 보니 길고양이도 따지면 야생동물 아닌가. 사람에게 길들여진 반려견 반려묘보다 야생성을 더 좋아하는 내 마음을 혹 녀석이 알아차렸는지 궁금하다.

   이왕이면 밭농사 망치는 들쥐 녀석 못 오게 막는 일까지 해주면 얼마나 좋으랴. 그러면 다시 낚시 나가 신선한 생선 무한리필해 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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