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은 김선굉 시인의 시를 배달합니다. (원시는 행과 연의 구분이 없는데, 읽기 편하도록 임의로 행 가름함에 양해를 구합니다)
나는 그때 속으로 울었다 김선굉
살다 보면 별일이 다 생긴다. 지난 일월 중순 어느 날 밤이었던가. 신년 술을 한 잔 하는 자리에서 선생님, 너무 늙으셨어요. 하면서 운 놈이 있었다. 나는 짐짓 웃었지만, 이보다 눈물겨운 일이 또 어디 있겠는가. 시골 중학교에서 수학을 가르치는 편동석 선생은 쉰다섯에 접어들고 있는 나를 두고 울었다. 오십이 넘은 남자가 오십을 조금 더 넘긴 남자를 위해 운다는 것. 울 수 있다는 것. 나는 생각한다. 어쩌면 이것은 이 땅에서 백 년 만에 일어난 일일 수도 있다. 나는 또 생각한다. 언젠가는 내가 그를 위해 울게 될 날이 있을 것 같은데, 나는 그의 무엇을 위해 울 것인가. 사실 나는 그때 속으로 울었다. 十八놈, 지도 늙어가면서 쓸데없이 우는군. 그의 눈물이 내 한 해를 연 셈이다. 이제 또 한 해가 새롭게 다가오는데, 참 아름답게 살지 않을 수 없다는 생각을 한다. - [술 한 잔에 시 한 수로](2020년)
#. 김선굉 시인(1952년생) : 경북 영양 출신으로 1982년 [심상]을 통해 등단. 구미 인동고 교장을 끝으로 퇴직한 뒤 열심히 시를 쓰고 있는데, 특히 지인을 시에 잘 등장시켜 잔잔한 감동을 주는 시를 많이 씀
<함께 나누기>
십 년 넘게 알고 지내는 글벗 가운데 한 분이 얼마 전 길 가다 우연히 저를 보았나 봅니다. 얼굴 못 본 지 한 삼 년쯤 되나. 카톡이 날아왔습니다.
“선생님, 어제 저는 너무 늙은 모습의 선생님 보고 마음이 많이 아팠답니다. 저의 미래 모습 같아서.”
전에도 이런 말을 한 번 들은 적 있는데... 이십여 년 전 교사 모임에서 알게 된 한 선생님을 칠팔 년 만에 만났는데... 대뜸 제 손을 잡더니, “선생님 왜 이리 늙으셨어요?” 하고는 눈물을 글썽글썽하는 게 아니겠습니까.
시로 들어갑니다.
“신년 술을 한 잔 하는 자리에서 선생님, 너무 늙으셨어요. 하면서 운 놈이 있었다”
위에 든 저보다 더 황당했을 겁니다. 단순히 늙었다는 인사말로 끝남이 아니라 울음까지 터뜨렸기에. 그래서 화자는 ‘나는 짐짓 웃었지만, 이보다 눈물겨운 일이 또 어디 있겠는가’ 하고 썼을 테고.
“시골 중학교에서 수학을 가르치는 편동석 선생은 쉰다섯에 접어들고 있는 나를 두고 울었다.”
앞 시인 소개에서 ‘특히 지인을 시에 잘 등장시켜 잔잔한 감동을 주는 시를 많이 쓴다’라고 했는데 이 시에도 ‘편동석’이란 분이 나오는군요. 시인의 절친 이종문 시인이 쓴 시 가운데 「효자가 될라 카머 - 김선굉 시인의 말」이 있는데, 김선굉과 이종문 두 시인은 지인을 글감으로 많이 썼습니다.
“나는 또 생각한다. 언젠가는 내가 그를 위해 울게 될 날이 있을 것 같은데, 나는 그의 무엇을 위해 울 것인가.”
아마도 두 사람은 술을 꽤나 드신 듯. 그러니 편동석 선생님이 자기보다 몇 살 더 많은 선배 교사인 화자의 늙음을 안타까워하며 울었겠지요. 그러면서 앞으로 나이 몇 살 더 많은 내가 그를 위해 울어줄 날이 올까 하며 되묻고 있지만 그를 위해 울어줄 일 없기를 바라는 마음이 더 컸을 겁니다.
“사실 나는 그때 속으로 울었다”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게 말하지만 남들에게 늙었다는 소릴 듣는다는 건 죽음에 가까워지고 있음을 뜻하니 슬펐겠지요. 허나 그보다 나를 위해, 나의 늙음을 안타까워하며, 나의 노년을 생각해 우는 사람에게 받은 감동의 눈물일 가능성이 더 큽니다.
“이제 또 한 해가 새롭게 다가오는데 참 아름답게 살지 않을 수 없다는 생각을 한다”
시인이 열심히 잘 살아야겠다고 다짐하는 구절이기도 하지만, 제게도 ‘아, 내가 좀 더 최선을 다해야겠구나.’ 하는 깨우침이기도 합니다. 그보다 우선 아르바이트로 돈을 마련해 보톡스를 맞든지, 예전 박 모 씨가 즐겨 맞던 태반주사, 백옥주사를 맞아야 하나. 심히 고민합니다.
*. 20년 전의 사진으로 마초적 사내 느낌이 물씬 풍기나, 이젠 늙은 얼굴 내보일 수 없어 예전 사진에만 매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