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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위에 내리는 비 Mar 06. 2024

목우씨의 詩詩하게 살자(76)

제76편 : 이화주 시인의 '장래 희망 외(1편)'

@. 오늘은 이화주 시인의 동시 두 편 배달합니다.


  <1>
         장래 희망
                           이화주

  우리 아들, 장래 희망이 뭐니?
  몰라요.

  이런, 이런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
  생각해 본 적 없는데요.

  아니, 의사나 아이돌이나 뭐 그런…?
  에이 그런 생각 한 적 없어요.

  뭐? 없다고? 와, 친구들도?
  아빠 시대와 달라졌다고요.
  오늘 생각한 것이 내일이면 바뀌는 세상인데 · · · · · ·.
  - [토끼 두 마리가 아침을 먹는다](2022년)

  #. 이화주 시인(1948년생) : 경기도 가평 출신으로, 1982년 [강원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 강원도 오지만 돌며 초등교사로 근무하다 전교생 19명인 횡성군 ‘유현초등학교’를 끝으로 퇴직




  <함께 나누기>

  딸애가 초등학교 다닐 때 일입니다.
  하루는 하교 시간이 늦어져 무슨 일이 있는가 하여 아내가 딸을 찾으러 학교로 갔습니다. 1학년이지만 학교가 아파트 바로 아래 있던지라 혼자 가고 혼자 올 수 있어 걱정은 안 했습니다만 그래도 혹시나 하여 갔다는데...

  교실로 갔을 때 세상에! 담임 선생님께서 딸을 무릎에 앉히고 그림을 그리고 계셨답니다. 딸은 선생님 무릎에 앉아 그림을 보고 있었고. 제가 그 얘기를 듣고 딸에게 물었습니다. ‘너는 장차 무슨 일을 하고 싶니?’ 딸의 대답이 단박에 나왔습니다. 그림 그리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짐작이 맞았음을 느끼며 쓴웃음을 지었습니다. 그러면서도 크면 변하겠지 하며 그냥 넘겼습니다. 딸은 결국 미대를 갔고, 그 선생님은 나중에 울산 초등교사 그림그리기회 회장을 역임했단 소식을 들었습니다.

  시로 들어갑니다.

  어른들은 시에서처럼 아이에게 종종 장래 희망을 묻습니다. 예전에는 대통령이 되겠다, 경찰관이 되겠다며 구체적인 답을 했는데 요즘은 그렇지 않은가 봅니다. 제가 만약 지금 초등학생 부모라면 이런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아 분명한 답을 요구했을 겁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어릴 때 희망은 나중에 얼마나 자주 바뀌던가요? 물론 제 딸처럼 끝까지 밀고 나간 경우도 있지만. 이젠 압니다. 부모가 ‘무엇이 되어라’ ‘무엇이 되었으면 좋겠다’라고 아이를 유도하는 말보다 내 아이가 누릴 행복을 먼저 생각해야겠다고.
  그때 아이가 내놓은 희망이 조금 흡족하지 않더라도 부모가 바꿔주는 것보다 ‘열심히 하면 네 꿈을 이룰 수 있을 거야.’라 말해줌이 필요하다고.


  <2>
        아기 새와 둥지
                                이화주

  엄마!
  우리 집에는
  왜 문이 없어?

  우리 집에는
  백 개도 넘는 문이 있단다.
  온통 열려 있을 뿐이지.

  그 순간
  사과꽃 향기가
  노크도 없이 놀러 왔다.
  - [토끼 두 마리가 아침을 먹는다](2022년)

  <함께 나누기>

  예전에 읽은 한문 수필 제목이 생각나지 않습니다만 이런 내용은 기억납니다.
  한 선비가 산골에 초가삼간을 지어 살고 있는데 벗이 찾아옵니다. 그 벗은 소위 출세하여 한양에 고래등 같은 집을 짓고 살던 참이었습니다. 출세한 벗이 선비네 집을 보니 너무 안타깝습니다. 더욱 대문조차 없어 더욱 초라하여 한 마디 덧붙입니다.
  “자네, 대문이라도 달게. 짐승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말은 이렇게 했으나 속마음은 대문조차 없으니 사람 사는 집 같지 않아 집이라는 모습을 갖춰라는 뜻을 담았습니다.

  벗의 마음을 헤아린 선비가 이리 말합니다.
  “아 자네가 일부러 대문 달지 않은 내 뜻을 읽지 못했구먼.”
  그러면서 덧붙입니다.
  “대문이 있으면 마당이 정말 작고 초라하지만 대문이 없으니 얼마나 넓은가. 저 산 아래를 내려다보게. 어마어마하게 넓은 저 땅이 모두 다 내 땅일세. 그리고 자네 집처럼  하인 하녀야 없지만 짐승들이 수시로 드나드니 이 집 가족이 얼마나 많은가. 그러니 얼마나 좋아.”

  혹 초등학생을 둔 젊은 부부 가운데 학교 담임 선생님께서 특별히 자기 아이 남달리 아끼는지 눈여겨보시길. 우리 딸처럼 1학년 때 장래 희망을 결정지을 수 있으니까요.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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