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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위에 내리는 비 Mar 13. 2024

목우씨의 詩詩하게 살자(80)

제80편 : 김승희 시인의 '작은 영생의 노래'

@. 오늘은 김승희 시인의 시를 배달합니다.


     작은 영생의 노래
                                김승희

  어느 나라에서는 사람은 세 번에 걸쳐 죽는대요
  첫 번째는 심장이 멈출 때
  두 번째는 흙 속에 몸을 매장할 때
  세 번째는 나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다 세상을 떠날 때

  사람은 쉽게 죽어 사라지는 게 아닌가 봐요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다 죽기까지는
  시간이 많이 필요하지요
  심장도 많이 필요하고요
  그때까지는 살아있는 거라고요

  공갈 젖꼭지 같은 것은 아니고요
  아무 생각 없을 때도 몸에서 계속 자라나는
  머리카락이나 손톱 발톱이나 폐처럼
  그렇게 당신은 내가 살아있는 동안
  면면히 자라나는 작은 영생, 잠시의 영원이라고요
  - [단무지와 베이컨의 진실한 사람](2021년)

  #. 김승희 시인(1952년생) : 광주 출신으로 1973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 '불의 여인’, ‘언어의 테러리스트’, ‘초현실주의 무당’이란 별명을 갖고 있으며, 제5회 ‘소월시문학상’ 수상자이며, 서강대 교수로 재직하다 퇴직




  <함께 나누기>

  1981년, 아버지가 돌아가신 날 장례를 치르면서 저는 몹시 당황했습니다. 왜냐면 눈물이 나오지 않아서지요. 울어야 되는데, 사람들이 다 보고 있는데, 장남이 눈물 없이 문상객들을 맞이할 수 있느냐는 자책이 이어졌습니다.
  그렇게 맏상주가 울지 않는 장례가 끝나고 저는 다시 학교 있는 울산으로 올라갔고 한 주일 근무하다 집에 왔습니다. 그리고 아버지 계신 방문을 열고 무심코 “아버지 다녀왔...” 하다가 정신이 들었습니다. 아버지의 방에는 주인이 계시지 않았던 겁니다.

  그때 얼마나 울음이 솟구치든지... 그렇게 소리 내 울었던 적은 그 이전에도 그 이후에도 없었습니다. 지나고 나서 생각하니 아버지는 일주일 전 돌아가심이 분명하지만, 적어도 일주일은 더 사신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1연으로 들어갑니다.

  남미의 어느 나라에서는 인간은 세 번에 걸쳐서 죽는다고 합니다. ‘심장이 멈출 때’, ‘땅속에 묻힐 때’, ‘모든 사람의 기억에서 사라질 때’. 그러니까 숨이 멎었다고 하여 끝난 게 아니란 말입니다. 모든 사람의 기억에서 사라질 때라야 비로소 죽음이라 할 수 있단 뜻입니다.
  그렇게 되려면 얼마나 기다려야 할까요. 그래서 시인은 제목을 ‘작은 영생’이라 붙였는지 모르겠습니다. 누군가 단 한 사람이라도 기억 속에 남아 있다면 그는 살아 있는 게 되고, 그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사람은 쉽게 죽어 사라지는 게 아닌가 봐요 /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다 죽기까지는”
  숨이 끊어지면 끝인 줄 아는 우리에게 이런 영생의 의미는 확실히 놀랍고도 신선합니다. 정말로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잊을 때까지는 시간이 많이 필요하며, 그때까지는 살아있는 게 되니까요.

  “그렇게 당신은 내가 살아있는 동안 / 면면히 자라나는 작은 영생, 잠시의 영원이라고요”
  ‘몸에서 계속 자라는 머리카락이나 손톱 발톱처럼’ 자연스럽게 돋아나고 있는 당신을 향한 마음이 살아있는 한 당신은 내 마음에 살아 있습니다. 이 시간은 신이 주시는 영생의 시간이 아니라 우리 인간이 만든 시간이기에 작은 영생의 시간이 됩니다.

  프랑스의 화가이면서 시인인 마리 로랑생은 「잊혀진 여인」이란 시를 소개합니다.

  “권태로운 여자보다 더 불쌍한 여자는 슬픈 여자
  슬픈 여자보다 더 불쌍한 여자는 불행한 여자
  불행한 여자보다 더 불쌍한 여자는 버려진 여자
  버려진 여자보다 더 불쌍한 여자는 떠도는 여자
  떠도는 여자보다 더 불쌍한 여자는 쫓겨난 여자
  쫓겨난 여자보다 더 불쌍한 여자는 죽은 여자
  죽은 여자보다 더 불쌍한 여자는 잊혀진 여자
  잊혀진다는 건 가장 슬픈 일”

  이 시에서 죽은 여자보다 잊혀진 여자가 더 슬프다고 했습니다. 아직도 누군가 잊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적어도 죽은 사람보다 낫다는 의미로 받아들입니다.

   *. 사진 둘은 칠레 벌판에 볼 수 있는 장지인데, 구글 이미지에서 퍼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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