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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위에 내리는 비 Mar 14. 2024

목우씨의 詩詩하게 살자(81)

제81편 : 유승도 시인의 '서울도 자연이다'

@. 오늘은 유승도 시인의 시를 배달합니다.


      서울도 자연이다
                                  유승도

  자연 속에 파묻혀 사니 좋겠네
  서울도 자연인데 뭐
  그런가?
  사람이 자연인데, 그들이 만든 도시가 자연이 아닐 리가 없잖아

  친구는 전화를 급히 끊었다 바쁜 모양이다 호랑지빠귀는 동산에 해가 올라 숲을 환하게 만들었는데도 울음을 그치지 않는다
  저 새도 바쁘구나
  - [하늘에서 멧돼지가 떨어졌다](2023년)

  #. 유승도 시인(1960년생) : 충남 서천 출신으로 1995년 [문예중앙]을 통해 등단. 1998년부터 현재까지 강원도 영월 망경대산 중턱에 버려진 오두막집을 손보아 염소 몇 마리, 고추, 두릅, 포도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음.




  <함께 나누기>

  한때 「나는 자연인이다」란 프로에 빠져 소위 본방사수 했습니다. 그러다 이 시인을 만났습니다. 십여 년 전에 나왔는데, 그 전에도 그 이후에도 아마 가족 모두가 이 프로의 주인공으로 나온 적은 없을 겁니다.
  강원도 영월 망경대산에서 아내와 아들과 함께 살아가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그때부터 시인의 시를 뒤져 읽었고, 그의 팬이 되었습니다. 그 이후 여러 방송에 소개되고, [행복이 가득한 집] 같은 잡지에도 실리고 하면서 시인의 이름이 조금씩 알려졌습니다.


  속세에 사는 한 사람이 도를 얻고자 깊은 산속 절을 찾아갑니다. 주지 스님을 만난 그는 머리 깎고 출가하겠다는 뜻을 밝힙니다. 그러자 스님이 묻습니다.
  "자네가 이 깊은 곳에 찾아와 출가하겠다는 목적이 무엇인고?"
  잠시의 망설임 없이 도를 얻겠다고 하자 스님이 다시 묻습니다.
  "자네 사는 곳에서는 도를 얻지 못하겠던가?"
  그러자 그가 이해 안 된다는 듯 되묻습니다.
  "아니 어떻게 복작복작한 세속에서 도를 얻는단 말입니까? 도란 이렇게 조용한 곳에서나 얻을 수 있지..."
  그의 말에 스님이 받아칩니다.
  "거기서 얻지 못할 도라면 여기서도 얻지 못하네."

  시로 들어갑니다.

  "자연 속에 파묻혀 사니 좋겠네"
  우리 집을 처음 방문한 분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 거의 똑같습니다.  "야, 직이네요. 이런 신선 세계에 살면 세상 근심 걱정 다 잊고 자연에 동화돼 산과 들과 나무와 풀과 함께 얘기 나누며 살겠군요."
  이 말에 대충 얼버무립니다. 물론 마음 속으론 이리 답하지만.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이라 도시의 삶과 다를 바 없습니다. 갈등도 있고, 알력도 있고, 도시로 도로 나갈까 하는 마음이 일 때도 있습니다.'

  "서울도 자연인데 뭐"
  화자의 뜻밖의 대답에 도시에 사는 친구가 잠시 침묵하다가 이해가 안 가 묻습니다. '그런가?' 하고. 이 물음 뒤에 생략된 말은 '네 말이 맞지 않아. 도시와 산골은 엄연히 다르지. 서울은 절대 자연이 될 수 없어. '

  "사람이 자연인데, 그들이 만든 도시가 자연이 아닐 리가 없잖아"
  화자의 말에 대해 순수한 자기 마음을 드러냈다고 봐도 되겠고, 경우에 따라서는 도시인들의 삶을 비꼬는 말로 봐도 되겠습니다. 허나 저는 순수함으로 읽습니다. 다만 '사람이 자연이다'란 표현 속에 사람이 진짜 자연이라는 뜻보다는 자연처럼 살아야 한다는 의미를 담은 표현으로.

  "친구는 전화를 급히 끊었다 바쁜 모양이다 호랑지빠귀는 동산에 해가 올라 숲을 환하게 만들었는데도 울음을 그치지 않는다"
  친구가 화자의 말에 어색해 전화를 급히 끊자 때마침 호랑지빠귀란 새가 울어댑니다. 이 새는 보통 낮에는 울지 않다가 밤만 되면 "히이- 오오-" 하는 지극히 가냘픈 소리로 울어대는데, 산속에서 한밤중에 울다 보니 무섭게 들려 '호랑'이란 말이 들어갔답니다.
  헌데 호랑지빠귀가 동산에 해가 올라 숲을 환하게 만들었는데도 울음을 그치지 않는 희한한 현상이 벌어집니다. 그래서 시인은 '저 새도 바쁘구나' 하는 표현을 덧붙였습니다. 저 녀석도 마치 도시인처럼 밤낮 없이 바쁘게 살아간다는 뜻으로.

  사람이 자연이라면 좀 느긋하게 살아야 하는데 서울(도시) 사람들은 너무 바빠서 자연의 일부가 되기를 거부하는 것일까요?

  도인과 자연인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어디에 살든 마음에 자연을 담고 살면 바로 자연인이요, 도를 담고 살면 도인이 아닐까요?


  * 위 아래 사진 둘은 [행복이 가득한 집](2008년 8월호)에서 퍼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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