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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위에 내리는 비 Mar 27. 2024

목우씨의 詩詩하게 살자(87)

제87편 : 민병도 시인의 '삶이란'

@. 오늘은 민병도 시인의 시조를 배달합니다.


         삶이란
                         민병도

  풀꽃에게 삶을 물었다
  흔들리는 일이라 했다

  물에게 삶을 물었다
  흐르는 일이라 했다

  산에게 삶을 물었다
  견디는 일이라 했다
  - [삶이란](2021년)

  #. 민병도 시조 시인(1953년생) : 경북 청도 출신으로 1976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 시인은 미대를 졸업해 개인전을 20번 넘게 열었으며, 여러 권의 시조집도 펴냈으니 소위 두 마리의 토끼를 다 잡은 시인이라 하겠음.




  <함께 나누기>


  이 시가 시조인가 하는 의문부터 풀어야겠지요. 고시조 율격으로 보면 시조라 보기엔 애매합니다. 먼저 3장 형태로 만들어 볼까요?

  “풀꽃에게 삶을 물었다 / 흔들리는 일이라 했다
  물에게 삶을 물었다 / 흐르는 일이라 했다
  산에게 삶을 물었다 / 견디는 일이라 했다”

  일단 3장 6구엔 들어맞습니다만 초장ㆍ 중장ㆍ 종장의 음수율 변화가 전혀 느껴지지 않습니다. 즉 초 중 종장이 모두 ‘~에게 물었다 ~~이라 했다’란 형태의 구조입니다. 물론 초장과 중장은 일반적인 짜임과 같은데 종장마저 이렇다면...
  그렇다면 시조가 아닐까요? 현대시조의 율격 구조가 고시조처럼 엄격하지 않으니까 시조 아니라고 할 순 없겠지요. 더욱 제가 고시조 부문에선 공부한 적 있으나 현대시조는 제대로 공부 안 해 평가할 능력이 없으니...

  시조 속으로 들어갑니다.

  누군가 삶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사람마다 대답이 다 다르겠지요. 낙(樂)을 추구하며 사는 이라면 삶이란 뭔가를 즐기는 일이라 하겠고, 매사에 격정적으로 행동하는 열정을 가진 이라면 삶이란 싸우는 일이라 하겠고, 또 맥 없이 사는 이에게 물으면 그저 시간 때우는 일이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럼 저에게 묻는다면 어떻게 답할까요? 전에는 논어에 나오는 말을 인용하여 답했습니다. 즉 '학이시습지(學而時習之)면 불역열호(不亦說乎)'라고. ‘배우고 그것을 때때로 익히니 기쁘지 않겠는가.’ 삶이란 배우고 익혀가며 기쁨을 찾아가는 길이라고 대답했을 텐데 지금은 그런 말할 자신이 없습니다. 왜냐면 현재 공부를 제대로 하고 있지도 않고 얄팍한 공부를 했다 하여 그리 기쁘지도 않으니까요.

  시인은 삶이란 답을 스스로 말하지 않고 풀꽃과 물과 산의 대답에서 찾으려 했습니다. 먼저 풀꽃은 삶을 '흔들리는 일'이라 했고, 물은 '흐르는 일'이라 했고, 산은 '견디는 일'이라 했습니다.
  풀꽃은 왜 삶을 흔들리는 일이라 했을까요? 문득 도종환 시인의 「흔들리며 피는 꽃」이란 시가 생각납니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 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
  이 구절을 '꽃이 피려면 흔들리는 과정(시련과 역경)을 겪어야 필 수 있다'는 식으로 해석하는데 저는 또 이렇게 생각합니다. 꽃대가 바람이 부는데 흔들리지 않고 꼿꼿이 버티다간 부러지고 마니 유연하게 흔들림으로써 꽃대가 중심을 잡아 견딘다는 뜻으로.

  다음 물은 흐르는 일이라 했습니다. 물은 흘러가는 일이 주된 속성이니까 당연한 답이라 여깁니다만 그 속에 다른 의미도 담았습니다. 물이 흐르지 않고 고여 있기만 한다면 이끼가 끼고 썩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까 물이 물답게 되려면 계속 흘러야 합니다.
  끝으로 산은 왜 삶을 견디는 일이라 했을까요? 높은 산은 다른 곳보다 훨씬 비와 바람의 저항을 많이 받습니다. 한편 높은 산이 그런 비와 바람을 막아주며 견디기에 나무도 풀도 새도 짐승도 살아갈 수 있다는 뜻으로 새깁니다.

  오늘 누군가 글벗님들에게 삶이란 무엇인가 하고 묻는다면 대답할 준비가 돼 있습니까? 어떤 답이든 다 괜찮습니다. 다만 가장 좋고 아름다운 답은 없습니다. 그건 사람마다 그에 맞는 삶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비슷한 흐름을 지닌 시인의 시조 한 편 더 올립니다.

     - 길을 묻다 -

  물에게 길을 물었다
  낮은 곳이 길이라 했다

  바람에게 길을 물었다
  빈 곳이 길이라 했다

  길에게 길을 물었다
  가는 곳이 길이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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