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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위에 내리는 비 Mar 29. 2024

목우씨의 산골일기(166)

제166화 : 알싸한 정구지 향!

        * 알싸한 정구지 향! *


  양남면 행정복지센터에서 우리 집에 오려면 환서리를 거쳐야 한다. 그곳엔 비닐하우스가 죽 이어져 있다. 얼마 전 아내랑 볼일 보러 시내 갔다 들어오다 거기를 지나치는데 김치향 비슷한 내음이 열린 창문을 비집고 들어왔다.

  아내에게 물었다.
  “차에 김치 실었어?”
  혹 봉지에 넣은 김치가 터져 배어 나오는 내음인 줄 알고 물은 말.
  “아이구, 참! 정구지밭을 지나왔잖아요.”
  맞다, 그렇지. 왜 잊고 있었을까?

  면사무소에서 오는 방향으로 보자면 환서리 오른쪽에는 블루베리 하우스, 왼쪽에는 정구지(‘부추’의 경상도 사투리) 하우스가 펼쳐져 있다. 그날따라 20도가 넘을 만큼 따뜻해 정구지 출하하려 하우스를 열어두다 거기서 배어 나온 내음 같은데 진짜 잘 삭은 김치 향이 난다.


(왼쪽 하우스는 모두 정구지밭임)



  집에 오자마자 텃밭 가운데 정구지 심은 곳으로 갔다. 이왕 그 향기 맡은 김에 뜯어먹을까 해서. 헌데 아직 베어 먹기엔 너무 잘다. 우리 집 전체 텃밭에 비해 정구지가 차지한 면적이 적다. 그 까닭은 첫물 정구지만 조금 부족할 뿐 더 자라면 이내 둘이 먹기에 넘치니까.
  정구지밭과 일반 남새(채소)밭에 쓰는 거름이 다르다. 씨감자 심을 때도 재거름 묻혀 심듯이, 정구지밭엔 겨울에 아예 재거름으로 덮는다. 재거름은 땅속을 따뜻하게 만들며 병충해를 막아주는 두 가지 효과가 있어 사용한다.

  중씰한 나이에 든 이라면 ‘정구지 첫물은 사위에게도 주지 않는다.’는 속담을 다 알리라. 첫물(초벌) 정구지는 겨우내 흙에 저장된 땅의 기운을 온통 받고 솟아났기에 비타민 등 영양소가 아주 풍부하다.




  그러면 더욱 사위에게 줘야 하는데 왜 주지 않는가. 첫물 정구지는 일단 양이 적어 나눠 먹기엔 부족해 자기 서방에게만 준다는 뜻이다. 그럼 왜? 정구지에서 매운맛을 내는 '황화알릴'이란 성분이 혈액순환을 원활하게 해 결과적으로 발기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그래서 정구지를 어떤 이는 한자로 ‘精久持’ 즉 남성의 사정시간을 오래 지속하게 만드는 남새라 풀어 정력에 좋다고 했다. 물론 지어낸 얘기지만 그럴듯하다. 허지만 내가 정구지 좋아함은 그런 이유라기보다 일단 입에 맞고 맛있기 때문이다.




  정구지에 딸린 사투리가 참 많다.
  강원도에선 ‘푸추 불구 분추 본추 부초 분초’로, 경기도에선 ‘졸파 푸추 부초’로, 경상도에선 ‘정구지 소풀 솔’로, 전라도에선 ‘저구지’로, 제주도에선 ‘쉐우리 세우리’로, 충청도에선 ‘불초 쪼리 쫄 분초 분추’로, 평안도에선 ‘부초 푸초 푼초’로, 함경도에선 ‘염지 부치 볼기 부초’로...
  이렇게 사투리가 다양하다는 건 지난 주 배달한 ‘개구리 사투리’에서 언급한 것처럼 그만큼 서민들에게 많이 닿아 쓰였다는 의미를 갖는다. 어떤 지역에서든 한겨울을 지나고 이른봄에 나온 정구지는 영양가와 관계없이 입맛 돋우는 남새라 귀염 받지 않았을까.


(정구지국수)



  정구지로 만드는 요리로 정구지전, 정구지무침, 정구지겉절이 등 있지만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국수에 고명으로 얹어 먹는 정구지국수다. 원래 국수 좋아하는 식성인데다 잔치국수에 얹은 정구지가 입맛을 더욱 돋우게 해 가능한 많이 넣도록 한다. 그래서 내가 주문한 국수는 산더미처럼 높다.
  다음 주 중반쯤이면 정구지 첫물 뜯어먹을 때가 되리라. 뭘로 해 먹을까? 아직 양이 적으니 '전'보다 '무침'으로 해먹는 게 나으리라. 마트에 가면 정구지가 나오지만 노지 정구지를 마트에 나오는 하우스 정구지랑 비교할 수 없다. 정구지, 그 이름만으로도 입맛 다심은 그 알싸한 향이 이끄는 마력 때문이다.

  한 달쯤 더 지나면 정구지꽃이 필 테고, 꽃이 피면 내가 좋아하는 시인 박남준의 「흰 부추꽃으로」를 정구지밭에 서서 읊조려 봐야겠다.




  “몸이 서툴다 사는 일이 늘 그렇다
  나무를 하다 보면 자주 손등이나 다리 어디 찢기고 긁혀
  돌아오는 길이 절뚝거린다 하루해가 저문다
  비로소 어둠이 고요한 것들을 빛나게 한다
  별빛이 차다 불을 지펴야겠군

  이것들 한때 숲을 이루며 저마다 깊어졌던 것들
  아궁이 속에서 어떤 것 더 활활 타오르며
  거품을 무는 것이 있다
  몇 번이나 도끼질이 빗나가던 옹이 박힌 나무다
  그건 상처다 상처받은 나무
  이승의 여기저기에 등뼈를 꺾인
  그리하여 일그러진 것들도 한 번은 무섭게 타오를 수 있는가

  언제쯤이나 사는 일이 서툴지 않을까
  내 삶의 무거운 옹이들도 불길을 타고
  먼지처럼 날았으면 좋겠어
  타오르는 것들은 허공에 올라 재를 남긴다
  흰 재, 저 흰 재 부추밭에 뿌려야지
  흰 부추꽃이 피어나면 목숨이 환해질까
  흰 부추꽃 그 환한 환생”

  *. 부추꽃 사진은 인터넷 신문 '인천in'(2021년 9월 7일)에서 퍼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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