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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위에 내리는 비 Apr 03. 2024

목우씨의 詩詩하게 살자(92)

제92편 : 양선희 시인의 '대략난감'

@. 오늘은 양선희 시인의 시를 배달합니다.


        대략난감
                           양선희

  저 라일락은 봄밤에 나를 부르는 나무야. 꽃향기를 맡으면 근심이 다 사라져.

  볼 때마다 빛의 기교에 경탄을 더하게 돼.

  저 직박구리는 꽃을 먹는 새야. 내 창가에 가지 쭉 뻗은 나무에 벚꽃 꿀을 따먹으러 와.

  저 구멍은 딱따구리 집이야. 여기 집 구하러 왔을 때 저 나무에 집을 짓고 있었어.

  저 어린이놀이터 축대 밑에는 청설모가 살아. 가을에 잣송이를 갖다 놓으면 나와서 물고 들어가.

  저 플라타너스에 까치집 보이지? 까치가 나뭇가지 꼭대기에 집을 짓는 곳은 바람이 사납게 불지 않는대.

  저 양지 바른 곳은 고양이 놀이터야. 볕이 좋을 때마다 아파트 지하에서 나온 녀석들이 일광욕을 하며 졸아.

  저 텃밭의 푸성귀들 정말 싱싱하지?

  저 목련나무와 오리나무 사이에 빨랫줄 보이지? 풍향을 알 수 있는 곳이지.

  저 청년들은 이웃이야. 캄보디아에서 왔어. 쉬는 날에는 운동장에서 축구를 해.

  저 아주머니는 통장이야.

  저 풍경들 다 갈아엎고, 이제 새 아파트를 올린다고 하네.
  - [사상의 꽃들 5](2019년)

  #. 양선희 시인(1960년생) : 경남 함양 출신으로 1987년 계간 [문학과비평]을 통해 등단. 현재 원주에 살면서 시인으로, 소설가로, 방송작가로 열심히 활동함



  <함께 나누기>

  새로 생겨난 사자성어가 제법 됩니다. ‘내로남불’부터 ‘여소야대’ ‘낙장불입’ ‘어이상실’ ‘대략난감’ 등. 물론 이런 단어는 사전에는 나오지 않지만 엄연히 우리 생활에 파고들어 쓰입니다. 뿐인가요, 텔레비전에도 등장하구요.
  그 가운데 ‘대략난감’은 ‘대체로 난감하거나 당황스러운 상황’에 쓰이는 표현입니다. 이 말이 시의 글감으로 쓰일 줄은 전혀 예상 못했습니다. 좋은 시를 쓰려면 세상 돌아가는 사정에도 밝아야 하나 봅니다.

  시로 들어갑니다.

  오늘 시는 한 행이 하나의 연이 되었습니다. 그러니 만약 낭송한다면 한 시행 읽듯이 읽어선 안 되고, 한 연 읽듯이 천천히 쉼을 두고 읽어야 합니다. 그런데 시를 끝까지 다 읽고 나면 의문이 들 겁니다. ‘왜 이 시 제목을 대략난감이라 했지?’ 하고.
  그렇습니다. 마지막 행(연)을 제외하곤 대충 훑어볼 때 전혀 난감한 상황이 아닙니다. 오히려 평화로운 분위기입니다.
  맨 앞에 나온 시행을 한 번 볼까요?

  “저 라일락은 봄밤에 나를 부르는 나무야. 꽃향기를 맡으면 근심이 다 사라져 // 볼 때마다 빛의 기교에 경탄을 더하게 돼”
  라일락은 꽃보다는 향기가 더 돋보입니다. 그래서 낮보다는 밤에 어울리는 꽃이라 하지요. 라일락꽃 향기를 마시면 온갖 근심이 다 사라집니다. 그렇다고 꽃이 덜 이쁜 것도 아닙니다. 라일락꽃 빛깔에 반하는 사람도 제법 되니까요.
  이런 식으로 직박구리는 꽃을 먹는 새인데, 창가 가지 쭉 뻗은 나무에 벚꽃 꿀을 따먹으러 옵니다. 또한 나무에 난 구멍은 딱따구리의 집입니다. 당연한 말씀. 딱따구리는 구멍 난 곳에 부리를 집어넣어 작은 벌레를 잡아먹으니까요.

  계속하여 청설모, 까치, 고양이, 텃밭의 푸성귀, 빨랫줄처럼 동물과 식물, 사물이 이어지다가 10행(연)에 이르러 비로소 사람이 등장합니다. 그래도 “저 청년들은 이웃이야. 캄보디아에서 왔어. 쉬는 날에는 운동장에서 축구를 해”와 같은 시행은 앞 시행들의 평화로움과 연결됩니다. 그런데,

  “저 아주머니는 통장이야 // 저 풍경들 다 갈아엎고, 이제 새 아파트를 올린다고 하네”
  여태까지 거의 유토피아에 가까운 세계가 나열되다 갑자기 통장이란 인간이 등장하면서 확 바뀝니다. 분명 앞에까지는 모든 게 다 갖춰져 있고, 어느 것 하나 모자라는 게 없습니다. 사람 역시 행복하지 않은 이가 없습니다.
  그런데 어둠이 손을 내밉니다. 왜냐면 통장 아주머니의 말, “저 풍경들 다 갈아엎고, 이제 새 아파트를” 올리게 되었기 때문에. 새 아파트를 올린다는 건 낡디 낡은 아파트를 헐어버림을 뜻합니다. 집주인에겐 부를 가져다주겠지만 세 든 사람이나 거기 깃든 동물에겐 좋지 않습니다.

  짐승도 인간도 집 잃어버릴 위기에 처했습니다. 그래서 시인도 제목을 ‘대략난감’이랴 했을 겁니다. 모두 12행(연)에서 단 하나의 행(연) 때문에 대략적으로 난감한 상황이 되었습니다. 정말 어처구니없게.
  낡은 곳을 재개발한다는 뉴스가 쏟아지는데 거기 세 든 사람들과 이미 둥지 튼 새들은 어떻게 될까요? 안타깝지만 대략난감한 일은 우리 사회 곳곳에 벌어지고 있습니다. 정말 대략난감합니다.


(한 외국 가난한 이들의 집단 거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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