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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위에 내리는 비 May 09. 2024

목우씨의 詩詩하게 살자(113)

제113편 : 문동만 시인의 '부라더미싱'

@. 오늘은 문동만 시인의 시를 배달합니다.


      부라더미싱
                         문동만

  늙은 부부가 한 몸으로 사는 일을
  바짓단 줄이는 일을 구경하였다
  서로 *퉁바리를 주며 손을 모아 사이좋게
  내 다리를 줄여주는 일을

  여자는 실밥을 풀고 남자는 박으며
  풀며 박으며 이으며 다리며 가는
  황혼의 *동사를 구경하였다

  등 뒤에 카세트를 틀어놓고
  배경음악의 주연으로 늙어가는 일을

  저이의 한때가 등뼈 마디마디에
  음각과 양각으로서
  실 없는 활로서
  시위를 버티는 삶의 탄성을

  늘 등을 굽히는 노동을
  제 몸을 표적으로 박는 노동을

  저이들의 솔기를 다시 뜯어
  다시 옷을 짓는다면
  어떤 누에가 되어 푸른 실을 쏟을까

  부라더미싱,
  부부가 형제가 되도록
  늙는 일이여
  달팽이처럼 느려터진 밥벌이여

  삼천 원 받는 바짓단 줄이기가
  이십 분 만에 끝났다

  공손히 줄어든 몸을 받았다
  - [구르는 잠](2018년)

  *. 퉁바리 주고받다 : 서로 잔소리를 늘어놓으며 티격태격하다
  *. 동사(同事) : 같은 종류의 일을 함

  #. 문동만 시인(1969년생) : 충남 보령 출신으로 1994년 계간 [삶 사회 그리고 문학]을 통해 등단. 현재 엘리베이터 수리기사로 일하는데, 일상적 언어로 노동자와 민중의 건강한 삶을 노래한다는 평을 들음




  <함께 나누기>

  오래전 이런 소문이 돌았지요. ‘부라더미싱’ 회사가 망했다는. 그 이유가 충격적이었죠. 워낙 물건을 잘 만들어 고장 나지 않아 망했다는. 적당히 고장 나야 다시 제품을 사들일 텐데 고장 나지 않으니 한 번 구입하고선 다시 사지 않는다는 말씀.
  이 가운데 부라더미싱이 망했다는 건 사실이 아니지만, 부라더미싱이 고장 잘 나지 않는다는 점은 다들 인정합니다. 1961년 창업하여 우리나라 봉제산업을 이끈 부라더미싱, 오늘 시인은 그 '부라더미싱'을 글감으로 시를 만들었습니다.

  시로 들어갑니다.

  화자(시인)는 바짓단 줄이려고 늙은 부부가 운영하는 옷 수선집에 들러 일하는 광경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이들 부부는 오랜 세월을 부라더미싱에 의지해 아들딸 키우고, 학교 보내며 생계를 꾸려왔을 겁니다.

  “저이의 한때가 등뼈 마디마디에 / 음각과 양각으로서 / 실 없는 활로서 / 시위를 버티는 삶의 탄성을”
  참 절묘한 표현입니다. 허리가 굽어지도록 손발 맞추며 살아온 세월을 휘어진 활시위로 표현해 삶의 탄성을 만들어 냈다고 하니. 그럼 활시위가 향하는 표적은? '늘 등을 굽히는 노동을 / 제 몸을 표적으로 박는'에서처럼 자기 몸이 바로 표적이랍니다.

  “부라더미싱 / 부부가 형제가 되도록 / 늙는 일이여”
  여기 부라더미싱에서 ‘부라더’ 뜻을 새겨봅니다. ‘brother’ 즉 오랫동안 살다 보니 '형제자매'처럼 닮았다는 뜻으로 봐도 되겠지요. 그런 말 많이 하지 않습니까, 부부는 오래 살수록 서로 닮아 형제자매와 다름없어진다고. 같은 음식을 먹어서 그런가요?

  “삼천 원 받는 바짓단 줄이기가 / 이십 분 만에 끝났다 // 공손히 줄어든 몸을 받았다”
  바짓단을 줄이는 작업이 이십 분 만에 끝나고 화자는 수선비 삼천 원을 지불한 뒤 줄어든 바지를 받아듭니다. 남 보기에 변변찮은 일일지 몰라도 그 일을 천직으로 여기며 하루하루를 소박하게 살아가는 늙은 부부 모습이 잔잔한 울림으로 다가옵니다.

  그렇지요, '달팽이처럼 느려터진 밥벌이'라 했으니 몸을 늘 구부리고 일하면서도 수입이 얼마 되지 않을 터. 어느새 늙은 부부는 형제자매처럼 닮았습니다. 어쩌면 이 닮음이 두 사람을 끈질기게 하나로 엮어나가는 삶의 밑바탕일지도.



  *. 첫째 사진은 자신도 늙은 몸으로 독거노인들에게 바지 만들어 주는 이납순 할머니(82세) 모습(오마이뉴스, 2009. 4. 5),
  둘째는 반 학생의 교복 수선해 주는 충남 천안쌍용중학교 과학교사 김철회 선생님(62세) 모습(연합뉴스, 2016. 5.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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