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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위에 내리는 비 May 30. 2024

목우씨의 詩詩하게 살자(125)

제125편 : 최두석 시인의 '대꽃 8'

@. 오늘은 최두석 시인의 시를 배달합니다.


         대꽃 8
                        최두석

  이루어진 지 스무 해쯤 되어 보이는 대숲에는 삼십 대의 상인도 오십 대의 품팔이도 들어가 섰습니다. 철모르는 어린이도 섞였습니다. 대숲이 출렁거리더니 일제히 전진하기 시작했습니다. 서걱이는 행진의 걸음마다에 외마디 외침이 폭발했습니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귓속으로 파고드는 이 소리는 종로에서 광화문으로 곧장 달려갔습니다. 소리가 부딪친 전방 바리케이드에서는 돌연 총포가 난사되었습니다. 이에 대나무들은 쓰러지며 대꽃을 피웠어요.

  한 송이 피면
  또 한 송이 거품 뿜으며 피고
  이꽃 저꽃 저꽃 이꽃 우르르우르르 무리져 피는
  피다가 모두 죽은
  대꽃.
  - [대꽃](1987년)

  #. 최두석 시인(1956년생) : 전남 담양 출신으로 1980년 [심상]을 통해 등단. 계간 [실천문학] 편집위원으로 활동하면서 한신대 문창과 교수로 재직하다가 정년퇴직




  <함께 나누기>

  '고구마꽃과 대나무꽃' 이 두 꽃의 공통점이 뭔지 아십니까? 바로 ‘보기 힘들다’는 점입니다. 워낙 보기 힘든 꽃이기에 이런 꽃이 피면 당연히 행운이 찾아오거나 길조라 여기지요.
  이 가운데 고구마꽃은 대나무꽃보다 조금 자주 보입니다. 고구마꽃은 아예 '행운'이란 꽃말을 지니니 행운과의 연관성을 덧붙일 필요 없겠지요.  허나 식물학자들은 고구마꽃은 이상고온 현상이 지속되면 될수록 자주 보인답니다. 허니 지구온난화에 따른 부작용이란 말이지요.

  대나무꽃은 다른 꽃과는 달리 60~ 100년에 한 번 피니 그 나무 일생에 딱 한 번 볼 수 있습니다. 지조와 절개란 꽃말을 지닌 대꽃은 꽃말은 멋지지만 이 꽃 또한 땅의 양분이 줄어들면 말라죽어가면서 마지막으로 꽃을 피운답니다.

  오늘 시 형태가 조금 낯설지요. 1연은 산문시 형태로 1행으로 돼 있다면, 2연은 5행으로 행의 구분이 분명합니다. 읽으면 대충 감 잡힐 겁니다. 대나무가 꽃을 피우고 죽는 모습을 '4․19 혁명' 때 독재정권과 싸우다 장렬하게 돌아가신 민주투사와 연결시켰으니까요.

  1연으로 갑니다.

  스무 해쯤 되는 대숲에 상인도 품팔이도 모여들고 심지어 철모르는 어린이도 섞여 한 곳에 모여듭니다. 여기서 대숲은 정말 대나무숲이 아니라 많은 이들이 사는 삶의 공간입니다. 거기에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두 모였습니다.
  이어서 대숲이 출렁거리더니 일제히 전진하기 시작했습니다. 굳게 내딛는 발자국마다 “독재 타도!” 하는 외마디 외침도 터져 나왔습니다. 그러자 군경이 쳐놓은 전방 바리케이드에서는 돌연 총포가 난사되었습니다. 이에 대나무들은 쓰러지며 대꽃을 피웠지요.

  2연으로 갑니다.

  “한 송이 피면 / 또 한 송이 거품 뿜으며 피고 / 이꽃 저꽃 저꽃 이꽃 우르르우르르 무리져 피는”
  같은 시기에 조성된 대숲에서 대나무 하나가 먼저 꽃을 피우면 그 대밭에 있는 대나무들이 일제히 기다렸다는 듯이 꽃을 피웁니다. 영양 부족한 땅에 한 그루 대나무가 꽃을 피운 뒤 말라죽어가면 꽃 피우지 않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저 죽는다는 걸 빤히 알면서도 대나무들은 잇따라 황톳빛 대꽃을 피워냅니다.

  “피다가 모두 죽은 / 대꽃”
  대꽃이 민중을 상징한다면 민중 모두가 죽었다는 뜻으로 읽기보다는 죽기를 각오하고 일어섰다는 뜻으로 봐야겠지요. 늙은이 젊은이 할 것 없이, 가난한 사람 부유한 사람 할 것 없이, 많이 배운 사람 배움의 끈이 짧은 사람 할 것 없이 목숨을 아끼지 않고 일어섰습니다.

  오늘 시는 대나무꽃과 민중항쟁을 연결시킨 시인의 상상력이 잘 드러난 작품입니다.



  *. 첫째는 고구마꽃이며, 둘째는 대나무꽃으로 [뉴스 서천](2023년 7월 5일)에서 퍼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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