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장 무렵 집 근처 노점에서 산 호박잎 스무 장에 오백 원이다 호박씨야 값을 따질 수 없다지만 호박씨를 키운 흙의 노고는 적게 잡아 오백 원 해와 비와 바람의 노고도 적게 잡아 각각 오백 원 호박잎을 거둔 농부의 노고야 값을 따질 수 없다지만 호박잎을 실어 나른 트럭의 노고도 적게 잡아 오백 원 그것을 파느라 저녁도 굶고 있는 노점 할머니의 노고도 적게 잡아 오백 원 그것을 씻고 다듬어 밥상에 올린 아내의 노고도 값을 따질 수 없다지만 호박잎을 사 들고 온 나의 노고도 오백 원 그것을 입 안에 다 넣으려고 호박쌈을 먹는 내 입이 찢어질 듯 벌어졌다 - [호루라기](2006년)
#. 최영철 시인(1956년생) : 경남 창녕 출신으로, 1986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 소설가인 아내 조명숙과 함께 김해 생림면 예술인촌 '도요림'에 살며 전업시인으로 생활
<함께 나누기>
누구든 집중 수련 과정이 필요하다 봅니다. 제게 글 쓰기 수련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가 2003년 여름방학 때로 생각합니다. 그해 여름, 문무대왕면(옛 양북면)에 천만 원 주고 사서 천만 원 들여 고친 주말주택에 가 머물며 글을 썼습니다. 아내는 울산 아파트에 살고 저 혼자 글 쓴답시고 거기 머물렀습니다. 그땐 당연히 혼자 밥 해 먹고 혼자 반찬 만들어야 했습니다. 한 달 동안의 반찬, 믿기지 않겠지만 호박잎쌈과 달걀찜뿐이었습니다. 댓 평 남짓한 텃밭에 심은 호박은 얼마나 잘 자라던지요.
해서 밥 할 때 솥에는 언제나 새우젓 넣어 푼 달걀 한 종지와, 호박잎 몇 장이 익어갈 때면 밥솥에서 솔솔 흘러나오던 구수한 내음. 지금 그렇게 하라면 하지 못할 듯. 한 달 동안 호박잎쌈과 달걀찜만으로 어떻게 살 수 있을까요? 그런 특별한(?) 수련을 통해 좋은 글 쓸 능력 길렀다는 게 아니라 남들에게 글 내놓더라도 부끄러움을 잊을 낯가죽을 단련하게 되었습니다.
시로 들어갑니다.
"파장 무렵 / 집 근처 노점에서 산 호박잎 / 스무 장에 오백 원이다" 실제 그 돈으론 살 수 없을 겁니다. 따라서 오백 원은 돈의 가치가 아니라 노동과 정(情)의 가치를 합친 액수. 화자는 오백 원을 줬지만 아무리 계산해도 거의 공짜에 가깝습니다. 왜냐면 거론한 셈법에 따라 계산하면 훨씬 이익이니까요.
"그것을 입 안에 다 넣으려고 / 호박쌈을 먹는 내 입이 / 찢어질 듯 벌어졌다" 호박잎을 둘러싼 흙, 해, 비, 바람, 트럭, 노점 할머니, 나의 노고가 각각 오백 원씩이니 모두 합치면 삼천오백 원. 거기에 호박씨 값과 농부와 아내의 노고를 뺐으니 더하면 두 배쯤 될 터. 이러니 분명 이익치고도 완전 이익인 셈이라 입이 찢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왜 제목이 '본전 생각'일까요? 보통 '본전 생각난다'고 하면 처음 투자한 돈(혹은 노고)에 비해 손해 봤을 때 쓰는 말인데 여기선 반대의 뜻이 담겼습니다. 들인 돈(본전)에 비해 너무 큰 이득을 봤다는 뜻으로. 단지 돈 계산으로 그렇기보다는 거기에 담긴 노력과 정이 넘쳐 입이 찢어졌을 터. 가끔 우리 사는 세상에는 더하기 빼기로는 계산 안 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단지 수학적 계산으로는 말이 안 되는. 텃밭에 쌈 싸 먹고 삼겹살 올려먹을 때 필요해 상추를 심습니다. 사실 상추씨값, 거름값, 물값 더하면 심지 않고 사 먹는 게 훨씬 싸게 듭니다.
거기엔 텃밭 가꾸는 이의 노동값도 햇빛의 도움도 빗값도 다 제외한 상태니 합치면 사 먹는 게 낫습니다, 분명. 허나 텃밭 들를 때마다 하루하루 쑥쑥 자라는 모습, 햇빛과 비를 받아먹는 고운 자태, 가끔 나비와 벌이 머물다 갈 때는 더욱. 그렇게 세상엔 돈으로 환산되지 않는 노고들이 ‘천지삐까리’입니다. 본전 따지지 않아도 되는 그 노고와 정이 우리를 살맛나게 만듭니다.
그건 그렇고 이젠 혼자 애호박국도 끓일 수 있으니 한 달 간 다시 글 수련 떠나야 하나? 애호박국에 호박잎쌈, 통멸치젓, 달걀찜이면 충분할 것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