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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위에 내리는 비 Aug 01. 2024

목우씨의 詩詩하게 살자(161)

제161편 : 김진완 시인의 '악물(惡物)'

@. 오늘은 김진완 시인의 시를 배달합니다.


      악물(惡物)
                         김진완

  지금도 가마이 생각해보모 내가 왜 그랬나 싶은 기 쳐녀때 밭을 매다 오줌이 누고 싶어가 들어간 기 죄받으러 들어간기라 눈알이 쌔까만 기 사슴새끼였든기라 뭐 이리 이쁜게 다 있노 싶어가 대바구니에 담아 집에 안왔드나 그리 안하는 긴데 촌에 머 묵을 끼 있나 고마 누룽지 팅팅 뿔은 거 줘봐야 쳐다보기나 하나 젖도 안 떨어진 그기 을매나 울어쌓든지...... 지 에미 또 저거 찾아 애터지이 산길 헤맬꼬 싶은 기 안되겠다 싶대 꼬내 해가 있다가 날이 밝자마자 그 자리로 도로 안 놔뒀드나 얼매나 울었든지 그 참엔 소리도 안 나오는기라 죄받는다 죄받아 고마 어무이 말 듣고 내 그리 안하는 긴데 모리긴 해도 몬 살았지 싶어 지금도 가마이 생각해보모 내 이리 고생하는 기 다 그기 악물이 되가 앙갚음하는 거 아인가 싶기도 하고 말다

  난 앞발을 쳐들며 당장 뛰어나올 듯한 삼천 원짜리 호랑이 족자를 벽에 걸었다
  들뜬 벽지가 호랑이를 자꾸 밀었다.
  - [모른다](2011년)

  #. 김진완 시인(1967년 ~ 2023년) : 경남 진주 출신으로 1993년 [창작과비평]을 통해 등단. 풍자시를 많이 썼으며, 우리 사회를 살짝 비트는 표현이 씁쓸함과 동시에 재미도 준다는 평을 들으며, 경상도 사투리를 많이 씀
  한창 좋은 시 많이 쓸 나이(56세)에 작년 3월 하늘로 가심




  <함께 나누기>

  오래전부터 우리나라엔 '노루를 잡아먹으면 3대가 재수 없다.'라는 금기(禁忌)가 전해옵니다. 그래서 집으로 들어온 노루는 해치지 말고 그대로 다시 들판으로 보내는 게 불문율의 하나였습니다. 이 금기에서 노루는 같은 과에 속하는 사슴과 고라니도 포함하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시 속의 사슴도 마찬가집니다.
  그럼 시의 제목인 '악물(惡物)'은? 원래 악물은 성질이 흉악한 사람이나 동물을 가리키는데 오늘 시에선 새끼 사슴이 됩니다. 왜냐면 악물은 그 자체로는 악물이 아니라도 사람이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해를 끼치는 동물이 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시는 경상도 사람이라면 대부분 해석이 될 겁니다. 혹 다른 지역 사람이라도 문맥으로 유추하면 웬만큼 다 알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그래도 혹 어려운 분들을 위하여 1연 부분만 따로 떼 일부러 해석을 달아봅니다.

  “지금도 가만히 생각해 보면 내가 왜 그랬나 싶은고 하니, 처녀 때 밭을 매다 오줌 누고 싶어 들어간 게 (결국) 죄 받으러 들어간 일이 아닐까 생각한다. (내 눈에 띈 녀석이) 눈알이 새카만 사슴 새끼였다. 뭐 이리 이쁜 게 다 있나 싶어 대바구니에 담아 집에 안 왔더냐. 그리 해선 안 되는 건데 촌에 뭐 먹을 게 있겠나. 그만 누룽지 팅팅 불은 걸 줬지만 쳐다보기나 할 뿐 젖도 안 떨어진 그게 얼마나 울어대든지. 제 에미 또 저거 찾아 애터지게 산길 헤맬까 싶어 안 되겠다 싶더라. 그냥 그대로 있다가 날이 밝자마자 그 자리에 도로 놔뒀지. 얼마나 울어대던지 나중엔 소리조차 나오지 않았으니... 죄 받는다, 죄 받아. 그냥 어머니 말 듣고 내 그리 안 하는 건데 모르긴 해도 살지 못했지 싶어. 지금도 가만히 생각해 보면 내가 이리 고생하는 것이 다 그 새끼 사슴이 악물이 되어 앙갚음하는 거 아닌가 싶기도 하다.”

  제대로만 읽으면 내용 이해에는 문제없을 겁니다.
  화자가 처녀 때 밭을 매다 오줌이 누고 싶어 들어갔다가 눈알이 새카만 새끼 사슴을 봅니다. 측은지심이 일어 애처롭게 생각해 데려와 먹을 것 주고 했는데 새끼 사슴은 아무것도 먹지 않습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다음날 도로 그 자리에 데려다주고 왔는데 느낌에 아무래도 그 새끼 사슴이 변을 당한 것 같습니다. 애초에 데려오지 않았더라면 살았을지 모르는데 데려오는 바람에 변을 당했으니 그 새끼 사슴이 악물이 되어 나의 삶에 마가 끼게 된 게 아닌가 합니다.

  마지막 두 행(제2연)으로 갑니다.

  “난 앞발을 쳐들며 당장 뛰어나올 듯한 삼천 원짜리 호랑이 족자를 벽에 걸었다 / 들뜬 벽지가 호랑이를 자꾸 밀었다”

  새끼 사슴이 악물이 되었다면 그 악물귀신을 몰아내기 위해 부적으로 호랑이 그림을 붙여놓으려 합니다. 사슴이 두려워하는 호랑이 힘을 빌려 해결하려 하니, 일종의 양법(禳法 : 신에게 기도하여 재앙과 질병을 물리치는 법)이기도 합니다.
  헌데 벽지가 들떠 호랑이 족자를 자꾸 밀어 붙지 못하게 만듭니다. 글 그대로 보면 벽지에 습기가 차 들떠 족자가 붙지 않게 만든다는 뜻입니다. 다만 속뜻으로 들어가면 화자가 아직 새끼 사슴을 해친 그 보복을 더 받고 살아야 한다는 뜻도 포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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