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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위에 내리는 비 Aug 02. 2024

목우씨의 詩詩하게 살자(162)

제162편 : 김태정 시인의 '물푸레나무'

@. 오늘은 김태정 시인의 시를 배달합니다.


      물푸레나무
                           김태정

  물푸레나무는
  물에 담근 가지가
  그 물, 파르스름하게 물들인다고 해서
  물푸레나무라지요
  가지가 물을 파르스름 물들이는 건지
  물이 가지를 파르스름 물올리는 건지
  그건 잘 모르겠지만
  물푸레나무를 생각하는 저녁 어스름
  어쩌면 물푸레나무는 저 푸른 어스름을
  닮았을지 몰라 나이 마흔이 다 되도록
  부끄럽게도 아직 한 번도 본 적 없는
  물푸레나무, 그 파르스름한 빛은 어디서 오는 건지
  물속에서 물이 오른 물푸레나무
  그 파르스름한 빛깔이 보고 싶습니다
  그것은 어쩌면
  이 세상에서 내가 가장 사랑하는 빛깔일 것만 같고
  또 어쩌면
  이 세상에서 내가 갖지 못할 빛깔일 것만 같아
  어쩌면 나에게
  아주 슬픈 빛깔일지도 모르겠지만
  가지가 물을 파르스름 물들이며 잔잔히
  물이 가지를 파르스름 물올리며 찬찬히
  가난한 연인들이
  서로에게 밥을 덜어주듯 다정히
  체하지 않게 등도 다독거려주면서
  *묵언정진하듯 물빛에 스며든 물푸레나무
  그들의 사랑이 부럽습니다
  - [물푸레나무를 생각하는 저녁](2004년)

  *. 묵언정진(默言精進) : 말하지 않은 채 몸을 깨끗이 하고 마음을 가다듬음

  #. 김태정 시인(1963 ~ 2011년) : 서울 출신으로 1991년 [사상문예운동]을 통해 등단. 해남으로 옮긴 후 그곳을 기점으로 소위 '민중서정시'를 썼으나 48세를 일기로 요절.


  <함께 나누기>

  시골에 살면 물푸레나무를 다 압니다. 아니 몰라도 물푸레나무의 쓰임은 다 압니다. 농기구 자루로 그만큼 좋은 나무가 없기 때문이지요. 즉 단단하면서도 가벼운 나무라 도끼, 괭이 자루로는 그저그만이지요.
  그리고 물푸레나무는 심마니 등 산에서 밤을 지새워야 할 사람들이 꼭 알아둬야 할 나무이기도 합니다. 생가지라도 불이 잘 붙어서 비 온 뒤나 눈 속에서 길을 잃었을 때 이 나뭇가지를 태워 추위를 이겨낸다고 하니까요.

  시로 들어갑니다.

  “물푸레나무는 / 물에 담근 가지가 / 그 물, 파르스름하게 물들인다고 해서 / 물푸레나무라지요“

  물푸레나무란 특이한 이름을 얻게 된 배경입니다. 가지를 꺾어 물속에 넣어두면 물빛이 푸르게 변한다 하여 붙였으니까요. 이 점을 활용하여 천연염색의 하나인 숯 염색할 때 물푸레나무를 쓰면 아주 아름다운 색이 나온답니다.

  “물푸레나무를 생각하는 저녁 어스름 / 어쩌면 물푸레나무는 저 푸른 어스름을 / 닮았을지 몰라”

  시인을 민중의 정서를 노래하는 ‘서정시인’이란 접미사를 붙이는데 바로 이 시행에서 엿볼 수 있습니다. 물푸레나무의 푸르스름한 빛과 저녁 어스름의 빛깔을 연결시키는 표현 기법이 아주 돋보입니다.

  “이 세상에서 내가 갖지 못할 빛깔일 것만 같아 / 어쩌면 나에게 / 아주 슬픈 빛깔일지도 모르겠지만”

  푸르스름한 천연의 빛깔, 그 빛깔을 좋아합니다만 내가 갖지 못한 빛깔이기에 가장 슬픈 빛이 됩니다. 푸른빛은 ‘나의 젊음은 파랗게 개인 가을 하늘같다.’는 문장에서 보다시피 젊음 또는 희망을 상징하는데, 시에도 이런 의미일까요? 내가 가지지 못한 빛깔, 즉 자신의 삶에서 희망이 보이지 않아 쓴 표현인지 뜻을 헤아리기 어렵습니다.

  “가난한 연인들이 / 서로에게 밥을 덜어주듯 다정히 / 체하지 않게 등도 다독거려주면서”

  화자가 물푸레나무를 보면서 가난한 연인들의 사랑을 떠올림은 그런 사랑을 하고 싶다는 말이겠지요. 많이 가지지 않아서, 서로의 결핍을 알아서, 서로에게 부족한 부분을 채워가는 눈물겨운 사랑을.
  마침내 누가 먼저 나눠주려 했는지 알 수 없고 알 필요도 없는 나눔의 사랑. 그런 사랑이 물푸레나무를 통해서 전달됩니다.



  *. 사진은 구글 이미지에서 퍼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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