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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위에 내리는 비 Aug 05. 2024

목우씨의 詩詩하게 살자(163)

제163편 : 박성우 시인의 '남겨두고 싶은 순간'

@. 오늘은 박성우 시인의 시를 배달합니다.


     남겨두고 싶은 순간
                                    박성우

  시외버스 시간표가 붙어있는
  낡은 슈퍼마켓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오래된 살구나무를 두고 있는
  작고 예쁜 우체국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유난 떨며 내세울 만한 게 아니어서
  유별나게 더 좋은 소소한 풍경,

  슈퍼마켓과 우체국을 끼고 있는
  버스정류장 의자에 앉아 사진을 찍었다

  아 저기 초승달 옆에 *개밥바라기!

  집에 거의 다 닿았을 때쯤에야
  초저녁 버스정류장에
  쇼핑백을 두고 왔다는 걸 알았다

  돌아가 볼 방법이 아주
  없는 건 아니었으나, 나는 곧 체념했다

  우연히 통화가 된 형에게
  혹시 모르니, 그 정류장에 좀
  들러 달라 부탁한 건, 다음날 오후였다

  놀랍게도 형은 쇼핑백을 들고 왔다
  버스정류장 의자에 있었다는 쇼핑백,
  쇼핑백에 들어있던 물건도 그대로였다

  오래 남겨두고 싶은 순간이었다
  - [남겨두고 싶은 순간들](2024년)

  *. 개밥바라기 : 태양 달 다음으로 밝은 천체인 금성의 순우리말. 저녁에 떠 있을 때는 '개밥바라기', 새벽에 떴을 때는 ‘샛별’이라고도 함.

  #. 박성우 (1971년생) : 전북 정읍 출신으로 2000년 [중앙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 우리나라 최초로 청소년 시집 [난 빨강]을 펴냈으며, 아내 권지현도 [세계일보] 신춘문예 통해 등단한 시인으로 문단에 드문 부부 시인.
  오직 시만 쓰는 전업시인으로 살고자 우석대 문창과 교수직을 사직하고 전북 정읍시 산내면 장금리로 내려와 산다고 함




  <함께 나누기>

  요즘 여행 관련 유튜브를 가끔 보다 보니 외국인이 우리나라 여행 왔다가 느낀 좋은 점을 거론한 몇 가지를 나열해 봅니다.

  첫째는 야간에도 마음껏 돌아다닐 수 있다, 둘째는 어디 가든 깨끗한 화장실을 공짜로 이용할 수 있다. 셋째는 카페나 식당 같은 곳에서 휴대폰이나 노트북을 놔두고 화장실 등 어디든 갔다 올 수 있다, 넷째 물건을 잃어버리더라도 찾을 가능성이 아주 높은 나라다. 이 점은 생각 못했는데 휴대폰이나 지갑등을 잃어버려도 찾을 가능성이 높은 나라 맞지요.

  올 4월 포항에서 중증 치매 앓는 노인이 잃어버린 현금 68만 원과 카드가 든 지갑을 주워 파출소로 찾아다 준 초등학교 어린이들 이야기. 그 노인에게 꼭 필요한 돈이었는데 특히 신용카드를 잃어버리면 누가 사용했는지 판단 능력이 없었는데 어린이들이 찾아줬으니...

  오늘 시는 어렵지 않아 따로 해설이 필요 없을 겁니다.

  화자는 시외버스 시간표가 붙어있는 낡은 슈퍼마켓 앞과 오래된 살구나무 서 있는 작고 예쁜 우체국 앞에서 사진을 찍습니다. 아마도 화자는 번쩍이는 화려함보다 소소한 풍경에 눈을 더 주는 듯. 해서 슈퍼마켓과 우체국을 끼고 있는 버스정류장 의자에 앉아 사진을 찍습니다.

  참 아름답습니다만 사진 찍기에 흠뻑 빠져 있으니 그 말은 또 다른 부분에 소홀할 수 있음을 암시합니다. 더욱 화자로 하여금 정신 빼앗기게 만드는 요소가 하나 더 나옵니다. 초승달 옆에 돋아난 개밥바라기를 봤으니.

  이러니 자신이 갖고 다니던 귀중품을 잃어버릴 요소를 다 갖춘 셈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집으로 돌아와서야 버스정류장에 쇼핑백을 두고 왔다는 걸 깨닫습니다. 포기하려다 다음날 오후 우연히 통화가 연결된 형에게 혹시 모르니 그 정류장에 들러 쇼핑백을 찾아보라고 부탁합니다.
  아마 부탁하면서도 하루가 지났으니 찾지 못하리라 여겼을 테지요. 헌데 형은 쇼핑백을 찾아왔고 그 속에 든 물건 하나 손댐 없이 고스란히 돌아왔습니다.

 “오래 남겨두고 싶은 순간이었다”

  그렇습니다. 이런 일 겪으면 참 잊히지 않지요. 귀중품이 많이 들어서가 아니라 추억이 깃든 물품이 들어있었을 터라. 누구에게나 이런 경험 한두 번 있을 테지요. 글벗님들에게도 오래 남겨두고 싶은 순간이 있었을 터. 댓글로 남겨주시면 고맙겠습니다.



  *. 첫째 그림은 챗 GPT로 만들었으며, 두 번째는 '따뜻한 하루'라는 봉사단체 홈에서 퍼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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