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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위에 내리는 비 Aug 06. 2024

목우씨의 詩詩하게 살자(164)

제164편 : 우대식 시인의 '유배'

@. 오늘은 우대식 시인의 시를 배달합니다.


      유배(流配)
                         우대식

  오늘날에도 유배라는 것이 있어
  어느 먼 섬에 *위리안치되는 형벌을 받았으면 좋겠네
  컴퓨터도 없고 핸드폰도 빼앗겨
  누구에겐가 온 편지를 읽고 또 읽고
  지난 신문 한 쪼가리도 아껴 읽으며
  탱자나무 울타리 속에 웅크리고 앉아 먼바다의 불빛을 오래 바라보고 싶네
  마른반찬을 보내 달라고 집에 편지를 쓰고
  살뜰한 마음으로 아이들의 교육을 걱정하며
  기약 없는 사랑에 대해 논(論)을 쓰겠네
  서슬 위에 발을 대고 살면서
  이 먼 위리(圍籬)와 안치(安置)에 대해 슬픈 변명을 쓰겠네
  마음을 주저앉히고
  서로 다른 신념을 지켜보는 갸륵함을 염원하다 보면
  염전의 새벽에 어둑한 불이 들어오겠네
  바닷가의 수척한 노동과 버려진 자의 곤고함을 배우다
  문득 얼굴에 새겨진 주홍글씨를 물속에서 발견하면
  삼박 사일을 목놓아 울겠네
  며칠 말미를 낸 그대가 온다면
  밥을 끓이고 대나무 낚시를 하며 서로의 글을 핥고 빨겠네
  글이란 무섭고도 간절하여 가시나무를 뚫고
  천둥처럼 울릴 것이라 믿고
  그대의 글을 읽다가
  온통 피로 멍울진 내 혓바닥을 보겠네
  유배의 길에 떨어져 흩어진 몸을 살뜰히 아껴보겠네
  - [베두인의 물방울](2021년)

  *. 위리안치(圍籬安置) : 죄인을 유배 장소에서 달아나지 못하도록 귀양지 집 둘레에 가시 많은 탱자나무 둘러치고 그 안에 사람을 가둠.

  #. 우대식 시인(1965년생) : 강원도 원주 출신으로 1999년 [현대시학]을 통해 등단. 평택 진위고에서 국어를 가르치다 명퇴한 뒤, 현재 모교인 숭실대 문창과 강사로 시 창작 교육에 애씀




  <함께 나누기>

  오늘 시를 공부하다 문득 한 분이 생각났습니다. 바로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란 수필집을 남긴 신영복 님. 우연히 이분의 강연을 듣고 식사를 함께하게 되었습니다. 우연이 거듭되려는지 바로 그분 앞에 제가 앉았습니다.
  그러니 제법 오래 얘기를 나눌 수 있었지요. 주로 저를 포함한 주변 사람들이 물었고 그러면 선생님이 대답하는 형태였는데... 누군가 이리 물었습니다. 감옥에서 20년간을 어떻게 버텼느냐고. 그때 그분의 대답 가운데 다른 내용은 기억나지 않고 농담 삼아 웃으며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가능하다면 한 3년쯤 감옥살이함도 괜찮을 겁니다.”
  사회와 완전히 단절된 곳에서 자신을 정리할 시간을 가지면 좀 더 여물어진다는 뜻으로 한 말씀입니다. 옛날 같으면 유배생활이겠지요. 그때 저는 그 말을 들으며 감옥과 유배지가 묘하게 겹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시로 들어갑니다.

  “오늘날에도 유배라는 것이 있어 / 어느 먼 섬에 위리안치되는 형벌을 받았으면 좋겠네”

  화자는 컴퓨터도 스마트폰도 없는 궁벽한 곳에서 읽을거리라곤 누구에겐가 온 손편지와 오래된 신문밖에 없는 곳에 살고 싶다고 합니다. 요즘처럼 듣지 않아도 보지 않아도 될 정보들이 SNS를 통해 마구마구 들어오는 시대에선 가끔 자연인처럼 외떨어져 살고픈 마음을 다들 한 번쯤 가져봤겠지요.
  화자도 그렇습니다. 그런 곳에 가서 아내에게 손편지로 마른반찬을 보내 달라 하고, 아이들은 공부 열심히 하느냐고 묻고, 그러고도 시간 나면 사랑론을 쓰겠다고. 또 염전의 새벽에 어둑한 불이 들어오면 바닷가의 수척한 노동과 버려진 자의 곤고함을 배우겠다고.

  “문득 얼굴에 새겨진 주홍글씨를 물속에서 발견하면 / 삼박 사일을 목놓아 울겠네”

  노동으로 얼굴 가득 새겨진 상처나 주름을 발견하면 그 노동자를 위해 3박 4일 울어주겠다는 표현에 가슴 한 편이 슬며시 저려옵니다. 그러다 며칠 말미를 낸 그대가 온다면 밥을 하고 대나무 낚시를 하며 서로의 글을 읽고 품평할 시간을 갖고 싶다 합니다.

  “글이란 무섭고도 간절하여 가시나무를 뚫고 / 천둥처럼 울릴 것이라 믿고”

  글이란 참 무섭습니다. 조선시대 유배지에 귀양 간 선비들 가운데 많은 이가 글 때문에 얻은 형벌이었지요. 그런 견디기 힘든 유배의 앞날이 보임에도 글쓰기 멈추지 않음은 언젠가 그 진심 알아줄 날 있으리란 믿음이었을 터.

  지금은 유배 가려해도 갈 수 없습니다. 다만 스스로 유배지에서 생활한다는 마음으로 살 수는 있겠지만. 한 번쯤 듣고 읽고 보는 일이 완전 통제된 곳에서 한 일주일 보내고 싶습니다. 그러면 '참된 나'를 찾을 수 있을까요?



  *. 첫째 그림은 조선 말기 풍속화가 김준근의 「정배 가는 죄인」이며, 둘째는 유배지에 머물 때의 집인데,
모두 구글 이미지에서 퍼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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