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용운 스님(1879년 ~ 1944년) : 일제강점기 저항시인([님의 침묵] 펴냄)이며, 불교 개혁 승려([조선불교유신론] 편찬)이며, 독립운동가('기미독립선언' 때 민족대표 33인의 한 분). 속명은 '정옥(貞玉)', 법명은 '용운(龍雲)', 호는 '만해(萬海)'
<함께 나누기>
처음 백담사 방문은 1979년 8월 여름방학 때였습니다. 동료교사 두 분과 함께 한 여행이었지요. 거기서 책에서만 뵙던 한용운 선사를 만났습니다. 지금처럼 ‘만해기념관’은 물론 ‘시비(詩碑)’도 기념될 만한 유물도 없던 시절, 거기 머무는 스님에게 저기가 선사께서 머물던 곳이라는 말만 듣고 찾아갔습니다.
선사께서 1905년 출가한 절, [조선불교유신론]을 쓰고 시집 [님의 침묵]을 탈고한 절, 그분께서 머물었다는 요사채에서 선사의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우리 셋은 서로를 바라보며 뭔 소린지 하여 두리번거렸습니다. 어쩌면 바람소리일 수도 계곡 물소리일 수도 있었지만, 우리는 그날 선사의 목소리를 들었다고 여겼지요.
그리고 1988년 11월 23일, 그곳에 절대로 머물러서는 안 될 인간이 무려 2년 동안 머뭅니다. 바로 전두환. 그 뒤로 아예 백담사를 제 기억에서 지워버렸습니다. 그러다가 몇 년 전 다시 찾았지요. 선사도 없고 선사의 말씀도 없고 선사의 의기도 없고. 관광지로 변한 절. 오직 보이는 건 개울에 쌓은 작은 돌탑들뿐.
오늘 시는 1919년 3월 1일 ‘기미독립운동’이 실패로 돌아간 뒤 발표된 작품입니다. 허니 그 운동이 작품의 배경이 되었겠지요. 이처럼 시를 인물 또는 역사적 사건과 연결시킴은 시의 의미를 축소시키는 위험을 준다 하여 피하는 추세입니다.
그럼에도 편히 이해하도록 그렇게 시도해 봅니다. 선사에게 '님'과 '당신'은 동격이었지요. 어떤 땐 부처님으로, 어떤 땐 절대자로, 어떤 땐 조국으로, 어떤 땐 연인으로 다양한 의미를 품는다고 합니다. ‘조국’으로 대입시켜 읽으면 가장 이해가 쉽습니다.
“당신이 가신 후로 나는 당신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 까닭은 당신을 위하느니보다 나를 위함이 많습니다”
당신은 나를 떠났고 나는 당신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당신이 떠남은 당신 의지가 아니라 내가 당신을 붙잡지 못하고 빼앗겼기 때문입니다. 당신 빼앗긴 부끄러움을 조금이라도 덜기 위해서는 당신을 절대 잊어선 안 됩니다. 그래야 내가 그나마 살아갈 수 있기에.
“나는 갈고 심을 땅이 없으므로 추수(秋收)가 없습니다”
당신을 빼앗긴 뒤 나는 갈고 심을 땅을 잃었습니다. 원래는 내 땅이었건만 이젠 남의 땅이 되어 아무것도 마음대로 심을 수 없습니다. 어떤 곡물도 채소도 과일도 심을 수 없으니 내가 거둘 게 하나 없습니다. 나는 졸지에 빈털터리 거지가 되고 말았습니다.
“거지는 인격이 없다. 인격이 없는 사람은 생명이 없다 / 너를 도와주는 것은 죄악이다”
먹을 게 없어 당신을 빼앗은 놈에게 쌀도 보리도 아닌 조나 감자라도 꾸러 갔더니 그놈이 내게 말했습니다. 집(나라)을 빼앗긴 너는 거지나 다름없다. 인격이 없는 놈이 무슨 사람 구실을 하느냐 하는 말에 한 마디 대응 못하고 돌아서 왔습니다.
“나는 집도 없고 다른 까닭을 겸하여 민적(民籍)이 없습니다”
내 집을 빼앗은 놈은 나더러 “민적 없는 자는 인권이 없다. 인권이 없는 너에게 무슨 정조냐.” 하고 멸시하고 무시했습니다. 순간 그놈에게 대들며 항거하던 차, 놈에게 대한 격분이 나의 못남으로 빚어진 일이라는 부끄러움이 일던 그때 당신을 보았습니다.
“영원(永遠)의 사랑을 받을까, 인간 역사의 첫 페이지에 잉크칠을 할까, 술을 마실까 / 망설일 때에 당신을 보았습니다”
영원의 사랑을 받으려면 죽음밖에 없고, 치욕스런 역사를 잉크로 뭉개버리고 싶고, 술이나 마시며 절망에 빠질까 하던 차에 당신을 보았습니다. 아아, 부끄러운 내 모습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며 '그러지 마라', '일어서라', '다시 되찾아라'라고 꾸짖는 당신을 보았습니다.
선사님에겐 두 가지 특별한 점이 있었다지요. 평소에 사람 대할 때는 인자롭다가 적 앞에선 눈이 하도 부리부리하여 그 눈을 마주칠 수 없어 호랑이눈(虎眼)을 지닌 분이라 했고, 친한 이들과 얘기를 나눌 때는 조곤조곤하면서도 나지막한 목소리로 친근감을 주지만 적에게 분노를 내뿜을 때는 불같은 사자후를 터뜨렸다고 하지요.
최악의 친일 발언과 행적을 드러내는 인간들이 득세하는 오늘날 선사께서 환생하여 이 꼴을 보신다면 어떠실까요? 분노로 이글거리는 호랑이눈에서 불빛이 쏟아져 그놈들의 눈을 멀게 하고, 사자후를 터뜨려 그놈들의 귀를 멀게 하였으면...
*. 한용운 선사의 사진과 시집 [님의 침묵] 사진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 퍼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