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우씨의 산골일기(180)

제180화 : '빠루'와 '노루발못뽑이'

* ‘빠루’와 ‘노루발못뽑이’ *

- 언어의 경제성 측면에서 -



시골살이 하려면 만능 일꾼이 되어야 합니다. 아니면 어느 정도라도 처리하는 '대충 일꾼'이라도 되든지. 농기구는 죄다 다뤄야겠지요. 아 물론 경운기ㆍ트랙터ㆍ콤바인 같은 고급(?) 농기계는 귀농인 아닌 귀촌인에겐 필요 없을 터.

그래도 삽ㆍ톱ㆍ호미ㆍ 낫ㆍ곡괭이 같은 기구는 능수능란하게 다뤄야 하고, 예초기ㆍ엔진톱ㆍ그라인더ㆍ 잔디깎기ㆍ전지 가위도 함께. 여기에 한 가지 더 붙입니다. 바로 '빠루'지요. 이 녀석은 지렛대 원리를 이용해 힘들이지 않고 돌을 빼내거나 땅을 좁고 깊게 파거나 그밖에 여러 부문에서 아주 쓸모 많습니다.

저는 시골살이 하려는 분들에게 꼭 두 가지 사라고 권합니다. 빠루와 쇠갈퀴. 이 둘은 정말 필요합니다. 헌데 '빠루', 이 말을 들먹이는 순간 우리말이 아님이 단박에 느껴지지요. 네 그렇습니다. 일본어, 아니 영어를 일본식으로 읽다 보니 생겨난 말입니다.



이 빠루가 한 달 전쯤 정치권에서 도마에 올랐지요. 올 6월 말에서 7월 중순까지 진행된 [국민의힘] 당대표 선거 중에 불거진 나경원 의원의 소위 ‘빠루 사건’. 2019년 민주당이 주요 개혁법안을 패스트트랙으로 지정하려 할 때 ‘자유한국당('국민의힘')’이 육탄저지 나서면서 벌어진 사건입니다.

이때 두 당 의원들끼리 몸싸움까지 일어났는데, 당시 나경원 원내대표가 이 과정에서 '빠루'를 집어드는 장면이 뉴스를 탔습니다. 제가 빠루 사건을 꺼냄은 그때의 정치 얘기를 하려 함이 아니라 바로 일본어 ‘빠루’를 우리말로 순화한 말 때문입니다.


(쇠갈퀴도 시골살이 필수품 - 농기구 가게에선 '레기'라 함)

혹 빠루를 [국립국어원]에서 순화하여 만든 우리말을 아십니까? 아마 대부분 모를 겁니다. 저처럼 시골살이 하는 사람에겐 빠루가 꼭 필요하니까 종종 씁니다만. 원래 빠루는 ‘crowbar’란 영어에서 ‘bar’만을 떼어 일본식 영어로 '바루(バール)'라 했는데 우리나라로 들어오면서 예사소리 '바'가 된소리인 빠루로 바뀌었다고 합니다.

우리가 예삿소리나 거센소리로 쓰고 말하는 영어가 일본어에선 발음할 때 된소리로 쓰고 말하는 경우가 드물지 않습니다. ‘뻰끼’도 그런 말 가운데 하나지요. 영어 ‘페인트(paint)’를 일본식으로 된소리 넣어 뻰끼라 하다 보니 예전엔 우리나라 사람들도 너도나도 '뻰끼'라 했지요.


이렇게 영어도 일본어도 아닌 ‘빠루’가 [국립국어원]의 우리말 순화 과정에서 ‘노루발못뽑이’로 바뀝니다. 이 순화는 처음부터 몇 가지 문제를 안았습니다. 노루발처럼 생긴 기구란 뜻으로 만들었는데 우리 국민 대부분 '노루발'을 본 적 없으니까요.



다음으로 빠루 대신 노루발못뽑이라 한번 소리 내 읽어보십시오. 불편함을 매우 느낄 겁니다. 소리 내기가 훨씬 어려워졌으니까요. 결정적인 결함은 2음절에서 6음절로 길어졌습니다. ‘최소의 노력으로 최대의 효과를 얻는다’는 경제 원칙이 낱말 만들 때 적용되는데 이를 ‘언어의 경제성’이라 합니다.

2자를 6자로 늘이는 이런 비경제적 우리말 순화가 어디 있을 까요? 게다가 발음도 쉽지 않고 이름과 모양의 연결도 힘듭니니다. 이는 우리말로 순화했다기보다 오히려 악화시킨 나쁜 예입니다. 소리내기도 힘든데다 음절조차 세 배나 길어졌으니까요.


요즘 들어 빠루를 ‘쇠지렛대’ 또는 ‘쇠지레’로 쓰자고 하는 건의가 [국립국어원] 의견란에 올라왔다고 합니다. 저는 ‘쇠지레’ 쓰기를 주장합니다. 빠루라는 정체불명의 말 대신 이미 오래 전에 써왔지만 (자주 사용하지 않아) 죽은 듯이 묻혀 있던 우리말을 살려냄도 바로 주인인 우리의 의무라 여기기에.


(여러 농기구와 그 이름)


<뱀의 발(蛇足)>



언어의 경제성을 말한 김에 한 가지 덧붙입니다.

요즘 방송을 보거나 듣다 보면 흔히 들을 수 있는 표현 하나가 나옵니다. 이는 일반인뿐 아니라 심지어 아나운서도 쓰더군요. '~하는 것 같다'는 식의 어법. 참 어이없습니다. 어떻게 이런 표현이 일상에서나 방송에서나 아무렇게 쓰이는지 참...


(가) “어제 저녁 당신 열심히 보던 드라마 어땠어?”

“재미있는 것 같았어요.”

(나) “그저께 당신 갔다는 식당 된장찌개 어땠어?”

“맛있는 것 같았어요.”


아마 예문을 읽는 순간 눈치 빠른 분들은 무엇이 문제인지 퍼뜩 와 닿았으리라 믿습니다. (가)의 답은 “재미있는 것 같았어요” 아닌 “재미있었어요”이고, (나)의 답은 “맛있는 것 같았어요” 아닌 “맛있었어요”입니다. 왜냐면 자신의 판단을 분명히 답할 수 있는 부분에서는 확실히 답하는 게 우리말 기본 어법이니까요.


다만 다음 경우엔 예외가 되겠지요. 어떤 사람을 소개시켜 주고 난 뒤 주고받는 대사의 예입니다.

“엊저녁 그 사람 만나 보니 어땠어?”

“재미있는 사람 같았어요.”

이때는 한 번 만남으로 그가 어떤 사람인지 확실히 판단 내리기 힘들어 이리 답할 수 있습니다만 명확히 답할 수 있을 때는 '~하는 것 같다'는 식으로 말해선 안 됩니다.


([경남도민일보] 2011.07.14)에서

이런 표현이 하도 많이 쓰이다 보니 학교 근무할 때 교실에서 내려다보니 비 오는 것 같아 밖에 노는 아이더러 일부러 실험삼아 이리 물어봤습니다.

(교사) : 밖에 어때? 비가 와?

(학생) : 네, 비가 오는 것 같아요.


현재 비 오는 상태를 분명히 알고 있으면서도 ‘네 비가 와요.’ 대신 ‘비가 오는 것 같아요.’라는 말이 아주 자연스럽게 흘러나왔습니다. 어떤 학자는 이런 애매모호한 답을 하는 어법이 잘못됐으니 무조건 고쳐써야 한다 했는데, 저는 여기에 언어의 경제성을 덧붙이렵니다.

즉 “재미있는 것 같았어요.”, “맛있는 것 같았어요.”, “비 오는 것 같아요.” 대신 “재미있었어요.” “맛있었어요” “비가 와요”로 답하면 무려 3~4음절 줄어드는 경제 효과는 물론 명확한 대답을 얻습니다.


앞으로 ‘빠루’ 대신 ‘쇠지레(또는 쇠지렛대)’로 하시고, ‘~하는 것 같다’는 표현 대신 ‘~한다’로 간단명료하게 대답하심이 어떠실지요.


*. 참고로 국립국어원에서 빠루를 순화한 말로 또 '배척'이 있는데, 이는 아래 사진 화살표 작은 구멍을 '배척 구멍'이라 합니다.

저 구멍에 꽂아 기둥을 조금씩 움직여 수평과 수직을 잡는 도구를 '배척'이라 했는데, 그 모양이 빠루와 비슷하다고 합니다.



**. 사진은 모두 구글 이미지에서 퍼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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