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우씨의 詩詩하게 살자(173)

제173편 : 박소란 시인의 '불행한 일'

@. 오늘은 박소란 시인의 시를 배달합니다.


불행한 일

박소란


불행을 응원한다 불행의 편에서

더 더 더 불행해져라 입술을 잘끈 깨물면서,

하마터면 진짜로 그럴 뻔한다


무너진 빌딩 뒤집힌 자동차 우연처럼 불탄 사람들

우연처럼

타다 만 사람들, 아침이면

불행은 어쩔 줄 몰라하며 구형 TV 앞에 엉거주춤 서서

폴리스라인이 함부로 뒤엉킨 뉴스를 보는데


그 침울하고 핏기 없는 얼굴은 도무지 남 같지가 않고


간밤 나는 병들어 뒤척이는 한 사람 곁에 누워

가늘고 불규칙한 숨소리를 오래 들었다

소리가 거의 완전히 잦아들 때까지


그만, 이제 그만,

기도하는 불행의 뒷모습을 몰래 지켜보았다

집 안에는 언제나 냉기가 감돌고

불행은 불행답게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아 웃고 싶지 않아

읽다 만 책이 수북한 책상에 엎드려 대체로 혼자 지내지만

때가 되면 말끔한 정장을 차려입고 출근을 한다 일을 한다

불행의 일을


어제는 정류소 벤치에 갓난쟁이처럼 잠든 사람을 깨워

그리던 엄마 품으로 돌려보냈다며

그곳은 너무 멀어 두 번 다시 돌아올 수 없다며


체념과 안도와 피로를 골고루 머금은 표정으로

불행은 나지막이 이야기한다

나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고, 침대 앞에 엉거주춤 서서


병과 싸우는 한 사람과 엉터리 심판 같은 불행을 번갈아 흘깃거린다

막연한 어떤 날짜를 헤아린다

두려움과 약간의 설렘에 휩싸여


불행, 하고 부르면

그는 그게 자기 이름인 줄도 모르고


불행, 힘내,

나는 차마 소리 내어 말하지 못하고

속으로만 웅얼거린다 거기 누군가 무심코 응, 답할 때까지

- [수옥](2024년)


#. 박소란 시인(1981년생) : 서울 출신이나 삶의 대부분을 마산에서 보냈으며, 2009년 [문학수첩]을 통해 등단. 현재 프리랜스 에디터(한 군데 소속돼 있지 않고 자유롭게 활동하는 기자)로 활동 중이며, [세계일보]에 ‘박소란의 시 읽는 마음’을 연재하고 있음.




<함께 나누기>


이 시는 너무 길어 SNS에 싣기엔 불편합니다. 또 한 행 한 행 따져가며 해설하려니 더욱 벅찹니다. 그래도 좋은 시라 택했습니다. 다만 너무 길어질까 대충 몇 시행만 두고 써 내려가렵니다. 우선 첫 시행부터 충격적인 표현으로 시작합니다.


“불행을 응원한다 불행의 편에서 / 더 더 더 불행해져라 입술을 잘끈 깨물면서”


이 시행을 보면서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은 누구일까?’ 그에 대해 언급을 한 글을 읽은 적 있어 잠시 옮겨봅니다.


도저히 삶의 무게를 다 짊어지지 못하고 생을 마감하기로 한 사람은 분명 불행한 사람이겠지요. 사내는 결국 삶을 이어갈 힘을 잃고 자신이 사는 아파트에서 뛰어내리기로 결심하고 옥상으로 올라갑니다. 잠시 망설이다 입을 악문 채 뛰어내립니다.

그때 그 아파트 앞 도로로 한 여인이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짝사랑하던 남자로부터 결혼 승낙을 받아 매우 들뜬 마음으로 자기 아파트로 찾아가던 중이었습니다. 헌데 하필 사내가 떨어진 곳이 바로 그 여자 머리 위. 워낙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바람에 여자는 즉사했고, 사내는 완충작용으로 살아났습니다.


살아났지만 갈비뼈가 여섯 군데, 그리고 척추도 부러져 평생 불구로 살아야 할 몸이 되었습니다. 거기에 과실치사 혐의까지 적용돼 퇴원해도 재판을 받고 교도소로 가야 할 운명.


“간밤 나는 병들어 뒤척이는 한 사람 곁에 누워 / 가늘고 불규칙한 숨소리를 오래 들었다”


이 시행에서 왜 시인이 불행을 글감으로 했는지 짐작 갑니다. 가까운 이가 병으로 심하게 앓고 있습니다. 죽음에 접근해 가는 이를 곁에서 지켜보지만 자기로선 어떻게 할 수 없는 마음에 화자는 절망밖에 떠오르지 않겠지요.


“때가 되면 말끔한 정장을 차려입고 출근을 한다 일을 한다 / 불행의 일을”


불행은 참 담담합니다. 불행은 남의 불행한 일이 자기 때문에 벌어진 일임을 모릅니다. 아니 불행은 불행을 알고 있기나 할까요? 오늘도 불행은 말끔한 정장을 입고 출근을 합니다. 누구에게 그 불행의 씨를 넘겨줄까 하고. 아주 담담히 출근합니다.


“불행, 힘내, / 나는 차마 소리 내어 말하지 못하고 / 속으로만 웅얼거린다 거기 누군가 무심코 응, 답할 때까지”


불행더러 힘내라고 용기 북돋우는 말을 하려다 차마 하지 못합니다. 그만큼 화자의 처지가 불행하다는 뜻이겠지요. 지나가는 사람더러 ‘당신은 지금 행복하십니까? 혹은 불행하십니까?’ 하고 물으면 어떻게 대답하는 사람이 더 많을까요?

‘不幸’에서 ‘아니 不’만 떼 내면 ‘幸’이 됩니다. 즉 ‘나는 결코 불행한 게 아니야!’ 하고 외치면 행이 됩니다. 그러니까 不幸과 幸은 멀리 있지 않고 바로 붙어있습니다. 不幸이 등 돌리면 幸이 됩니다. 우리 대부분은 그걸 모르고 지냅니다.


저잣거리에서 들은 얘기 하나 전합니다.


사업에 실패하고, 이것저것 해도 안 되고, 당장 먹고살 일이 막막하던 한 사내가 부두에서 겨우 막노동을 하게 되었습니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빚을 갚을 방법은 없고, 그렇다고 굶을 순 없고. 그렇게 절망하며 하루하루 버티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사내가 일 마치고 부둣가를 지나 숙소로 가고 있는데 저만치 떨어진 곳에서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걸 보았습니다. 숙소 가는 길목이라 곁을 지나치다 웬 여자가 바다에 빠졌다는 얘길 들었습니다. 자기 일 아니라 여기며 빠져나오려는데 사람들에 떠밀려 오히려 더 가까이 가게 되었습니다.


해서 눈을 아래로 내리뜨리니 여자 한 사람이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었습니다. 허나 다들 겁을 먹어선지 아무도 나서지 않고 사내도 슬그머니 그 자리를 빠져나오려는데 누군가에게 밀려 그만 바닷속으로 떨어졌습니다.

차라리 이대로 죽었으면 하는데 물 위로 머리가 솟았고 고개 들어 주위를 둘러보니 바로 곁에 여자가 보였습니다. 그때 위에서 누군가 부기를 던졌고 사내와 여자는 무사히 바다에서 빠져나왔습니다. 사내는 바다에서 나오자마자 화난 얼굴로 누군가를 찾았습니다. 바로 자신을 밀어 바닷속으로 빠뜨린 사람을.


허나 그 순간 사람들은 모두 그를 향해 손뼉 치고 환호하는 바람에 찾기를 중단했고. 그는 일약 영웅이 되었습니다. 뉴스를 타면서 사내의 딱한 처지가 알려졌고, 여러 곳에서 도움의 손길이 들어왔고, 마침내 사내는 재기에 성공했습니다.



*. 첫째 그림은 빈센트 반 고흐의 '영원의 문에서'(1890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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