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우씨의 詩詩하게 살자(174)

제174편 : 김영남 시인의 '짐에 관하여'

@. 오늘은 김영남 시인의 시를 배달합니다.


짐에 관하여

김영남


등에

무거운 짐을 지고 나서야

길을 제대로 갈 수 있다는 걸 알았네.

강물에 떠밀리지 않고 건너 목적지에

예정대로 닿을 수 있다는 걸 알았네.

그동안 가벼운 짐을 지고서

바퀴처럼 미끄러지고 헛돈 삶

오직 나를 위한 제자리였음을

뼈아프게 깨닫네.


이제 나는

등에 큰 짐을 지고서

남을 사랑한다네.

그 무거움으로 남을 용서한다네.

- [모슬포 사랑](2001년)


#. 김영남 시인(1957년생) : 전남 장흥 출신으로 1997년 [세계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 중앙대 기획조정실에 근무하다가 퇴직한 뒤, 현재 세종시에서 [해피공군]이라는 삼계탕집을 운영




<함께 나누기>


제가 아래 내용의 글을 어디선가 읽었는데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우화 모음집' 아니면 '불교설화'에서 본 듯한데...

깊이는 얕으나 물살이 매우 센 강의 뱃사공이 배가 망가졌음에도 강 저편으로 건너가려 합니다. 왜냐하면 거기에 그의 여인이 있기 때문입니다. 수영에 자신 있는 그는 아주 가볍게 생각해 강에 뛰어들었습니다. 허나 웬걸, 센 물결엔 자신의 수영 실력이 아무 소용없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이번에는 가벼운 등짐을 지고 건너가려 합니다. 적당히 가벼우면 몸놀림이 자유롭고 그 무게가 자신을 잡아줄 거라 여겼지요. 헌데 이번에도 실패입니다. 고민하던 사내는 자신의 등에 짊어질 수 있는 한 최대로 무거운 짐을 얹고 강을 건너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무사히 건넜습니다.


오늘 시가 어쩌면 위와 비슷한 얘기를 읽고 쓴 시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다만 시인이 그 얘기를 끌어와도 시는 전혀 다른 내용으로 전개됩니다. 가만 보면 우리네 삶 자체가 짐 아닐까요? 그래서 ‘삶의 짐을 지고 걸어가다’란 표현을 흔히 하지요.


시로 들어갑니다.


“등에 / 무거운 짐을 지고 나서야 / 길을 제대로 갈 수 있다는 걸 알았네”


여기서 등에 진 짐은 생각해 보면 인생길의 짊이겠지만, 경우에 따라선 책임감, 또는 고난ㆍ역경 등 여러 함축적 의미를 지닙니다. 그렇게 보면 우리 모두는 등에 짊을 지고 길을 나섭니다. 오늘도 어떤 이는 직장에서 또 어떤 이는 노동 현장에서 짊을 풀겠지요.


“강물에 떠밀리지 않고 건너 목적지에 / 예정대로 닿을 수 있다는 걸 알았네”


가벼운 짐을 지고 가면 수월치 싶어 나섰다가 실패한 뒤 무거운 짐으로 바꾸었습니다. 그러자 목적지에 무사히 도착합니다. 화자는 고백합니다. 그동안 너무 가벼운 짐을 지고 갔기에 바퀴가 자주 미끄러져 헛돌아 목적지에 이르지 못했다고. 그건 오직 제자리 지키기 위한 삶이었다고.


“이제 나는 / 등에 큰 짐을 지고서 / 남을 사랑한다네 / 그 무거움으로 남을 용서한다네”


아, 이 구절에서 잠시 멈추었습니다. 가벼운 짐을 졌을 때는 오직 나만을 생각하는 짐이었는데 무거운 짐을 지고 나서야 남을 배려하는 삶이라고. 여기서 가벼움과 무거움의 상징적 의미를 시인은 새로 만들어냈습니다. 나만을 위한 가벼운 짐을 졌느냐, 남을 생각하여 무거운 짐을 졌느냐.

말과 행동만이 무겁고 가벼운 줄 알았는데 삶의 길을 갈 때 지는 짐도 무겁고 가벼운 게 있음을 알았습니다. 몸으로 져야 하는 짐이 따로 있고, 마음으로 져야 하는 짐이 따로 있음도 깨달았습니다. 몸의 짐은 무거운 게 힘들고 가벼운 게 편하지만 마음으로 지는 짐은 그 반대입니다.


또 사람마다 짊어지고 나서는 짐의 무게는 다 다릅니다. 누구에게나 그가 감당해야 할 짐이 있기에. 만약 내가 가벼운 짐을 진다면 다른 누군가는 무거운 짐을 져야 합니다. 시인은 그 점을 깨우치려 했을지 모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자꾸만 자신의 짐 무게를 줄일 꾀는 쓰지만 남을 위해 자신의 짐 무게 늘릴 생각은 잘하지 않으니까요. 자신이 진 짐의 무게가 가벼우면 남이 진 짐의 무게도 가볍다고 여깁니다. 그러니 남의 짐을 보는 눈은 청맹과니가 됩니다.


짐을 나눠 지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내 짐의 무게가 늘어나면 남 짐의 무게가 줄어든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삶의 뒤란이 아름다운 삶’, ‘앞의 날보다 남은 날이 더 아름다운 삶 ’ 아마 시인은 시를 통해 이런 삶을 그렸으리라 생각해 봅니다.



*. 첫째 사진은 [보은사람들 보은TV(2014.07.17)]에서, 둘째는 [경향신문](2007.04.22.) 김선두 화백의 그림에서 퍼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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