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우씨의 詩詩하게 살자(172)

@. 오늘은 이산하 시인의 시를 배달합니다.

나에게 묻는다
이산하

꽃이 대충 피더냐.
이 세상에 대충 피는 꽃은 하나도 없다.
꽃이 소리 내며 피더냐.
이 세상에 시끄러운 꽃은 하나도 없다.
꽃이 어떻게 생겼더냐.
이 세상에 똑같은 꽃은 하나도 없다.
꽃이 모두 아름답더냐.
이 세상에 아프지 않은 꽃은 하나도 없다.
꽃이 언제 피고 지더냐.
이 세상의 꽃들은 모두
언제나 최초로 피고 최후로 진다.
- [악의 평범성](2021년)

#. 이산하 시인(1960년생, 본명 '이상백')은 경북 포항 출신으로 1982년 동인지 [시운동]을 통해 등단. 부산 혜광고(3년) 재학 시절, 대구 대건고(2년) 안도현과 함께 우리나라 고교 대상 백일장을 절반씩 나눠가질 정도로 뛰어난 문재(文才)를 보임.
1987년 '제주 4.3 사건'을 다룬 장시 「한라산」 필화사건으로 구속된 뒤 절필했다가 30년만인 2018년에 시를 발표하면서 문단에 복귀했는데, 현재 대장암으로 투병 중이며 시인들이 앞장서서 치료에 보태 쓰라고 미리 조의금을 모은다고 함



<함께 나누기>

시는 평범한 일을 특별한 일로 바꾸는 마법이라 합니다. 또 다른 이는 평범한 질문에 특별한 대답을 하는 예술이라 정의했고. 오늘 시는 참 평범하게 썼습니다. 특별히 눈에 띄는 표현 없이. 마지막 3행이 없었더라면 아주 평범하여 우리 인식 밖의 시가 되었을 겁니다.
헌데 여기서 시가 마법을 부립니다. 아주 평범함을 아주 특별함으로 바꾸는 마법. 저도 이 지점에서 홀렸습니다. 모두 다섯 개의 질문에 대답하는 형태의 시입니다. 소위 문답법이라 하는데 스스로 묻고 스스로 답합니다.

그리고 이 시 이해에서 신경 써야 할 부분은 바로 제목입니다. '나에게 묻는다' 어느 누구에게도 아닌 나에게 던지는 물음. 사실 질문을 남들에게 던지고 그 답의 옳고그름을 판단해 정리하는 일이 더 편합니다. 허나 시인은 그 질문을 자신에게 던집니다.
세상에 대충 태어난 게 있을까요? 그래서 대충 취급받으며 살고픈 게 있을까요? 내 가치가 남들보다 못하니 그렇게 알고 살아야겠다는 게 있을까요? 네 없습니다. 평범한 질문(愚問)을 통해 아주 현명한 답(賢答)을 얻어냈습니다. 우문현답입니다.

시로 들어갑니다.

“꽃이 대충 피더냐 / 이 세상에 대충 피는 꽃은 하나도 없다”

대충 피는 꽃은 없습니다. 여기서 ‘대충 핀다’를 ‘대충 산다’로 바꿔봅니다. 그러면 ‘대충 살려고 피어난 꽃은 없다’로 됩니다. 그렇습니다. 대충 피려고, 대충 살려고 싹을 틔우고 잎이 나고 꽃몽우리가 생기고 꽃을 피울까요? 아니 생명 탄생의 신비를 대충하는 꽃이 있을까요?

“꽃이 어떻게 생겼더냐 / 이 세상에 똑같은 꽃은 하나도 없다”

그렇지요, 세상에 똑같은 꽃은 하나도 없습니다. 같은 장미라 해도 조금씩 아주 조금씩 모양도 빛깔도 다르게 생겼습니다. 이맘쯤 읽었으면 우리 글벗님들은 눈치 챘을 겁니다. 꽃이 꽃만 가리키지 않고 우리네 사람도 비유하고 있음을.
그러면 1~2행은 이리 해석됩니다. 대충 살려고 피어난 꽃이 없듯이 ‘대충 살려고 태어난 사람도 없다.’ 3~4행도 마찬가집니다. 똑같이 생긴 꽃이 하나 없듯이, ‘똑같이 생긴 사람도 하나 없다.’ 일란성 쌍둥이조차 조금씩 다르다고 하니까요.

“꽃이 모두 아름답더냐 / 이 세상에 아프지 않은 꽃은 하나도 없다”

꽃이 모두 아름답더냐란 질문에 대한 답은 우선 ‘그렇지 않다’입니다. 그러다가 답이 혹 잘못되지 않나 하는 의심이 듭니다. 이 세상에 아픔을 겪지 않고 피는 꽃이 없고 아픔을 겪지 않고 사는 꽃도 없습니다. 다 비바람을 맞으며, 뇌성벽력을 들으며 그렇게 피고 그렇게 삽니다.

“꽃이 언제 피고 지더냐 / 이 세상의 꽃들은 모두 / 언제나 최초로 피고 최후로 진다”

제가 이 시행 읽는 순간 이 구절만 따로 떼 책갈피에 넣어뒀습니다. 다음에 어느 자리에선가, 또는 어느 글에선가 써먹고 싶어서. 세상에 존재하는 꽃 하나하나는 모두 이 우주에 최초로 꽃을 피우고 최초로 지게 됩니다.
우리도 마찬가집니다. 나보다 훨씬 잘난 사람도 나보다 훨씬 높은 자리에 앉은 사람도 내 삶의 자취에 들어서지 못합니다. 내 삶의 역사는 나로 시작하여 나로 끝맺습니다. 그리고 내가 만든 역사는 어느 누구의 삶보다 결코 뒤처지지 않습니다.

꽃도 사람도 세상에 대충 태어난 것은 없고, 태어나면서 살면서 아픔을 삼켜가며 다 살아갑니다. 그렇기에 내가 살아가는 과정도 참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나는 한 떨기 아름다운 꽃으로 피어났기에 아름답게 끝맺어야 하기에.



keyword
작가의 이전글목우씨의 詩詩하게 살자(1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