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영광 시인(1965년생) : 경북 의성 출신으로, 1998년 [문예중앙]을 통해 등단. 현재 고려대 미디어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하다가 퇴직
<함께 나누기>
우리가 정해진 시간보다 늦어 후회할 때 ‘만시지탄(晩時之歎)’이란 한자성어를 사용합니다. '만시'는 늦을 ‘晩’ 때 ‘時’로 정한 시간보다 늦었다는 뜻이요, 어조사 '之' 탄식 '歎'입니다. 이때 시간은 몇 년, 몇 달, 몇 주일, 몇 일, 몇 시간, 몇 초에 이르기까지 참 다양합니다.
좀 긴 시간의 예를 보면 우리나라 출산율이 세계 최저가 되지 않게 오래전부터 젊은이들이 살아갈 사회로 만들었어야 함에도 그러지 못했으니 만시지탄이요, 짧은 예로야 주식 투자하는 사람이 단 몇 초 사이에 팔지 못하거나 사지 못해 손해를 봤다든지, 취업 면접 보는 사람이 제시간에 오지 못해 불합격되었다든지 이런 사례도 만시지탄이 되겠지요.
시로 들어갑니다.
1연에서 화자는 누구에겐가 돈을 빌려주고 빚을 받으러 갔는데 집이 텅 비었습니다. 이웃의 말을 들으니 ‘조금 전’에 이사 갔다고 합니다. 아마도 오래전 일이었을 겁니다. 당시엔 휴대폰으로 연락할 수 없는 처지였을 터. 이사 가면 그쪽에서 집 전화 알려주기 전엔 방법이 없을 때라 연락 못해 돈을 떼이게 되었습니다.
2연에서 화자는 아버지가 위중하단 전화를 받고 온 힘을 다해 내달렸건만 도착했을 때는 이미 늦은 뒤였고. 어머니에게서 아버지가 ‘조금 전’에 돌아가셨다는 말 들었을 때 얼마나 후회되었을까요? 조금만 더 일찍 왔더라면 임종을 봤으련만.
“나는 조금 전을 이겨본 적이 없다”
살다 보면 ‘조금만 더 일찍 왔더라면’ 하고 후회할 때가 종종입니다. 아니 어떤 이에게는 종종이 아닌 '자주'일 수도 있고. ‘조금 전’을 이겨 본 적이 없는 사람은 ‘조금 뒤’에 밀려오는 숱한 슬픔과 좌절과 아픔을 겪게 됩니다. '조금 전'이 준 상처로 하여.
“조금 전에게 지면 늘 / 조금 뒤가 온다”
조금만 더 일찍 오지 못해 '조금 전'에게 진 사람은 잘 압니다. 뒤이어 후회의 쓰나미가 밀려듦을. 문제는 조금 늦어 기회 놓친 사람은 또다시 그런 실수를 되풀이한다는데 있습니다. 실수하면 다시 그런 잘못 범하지 않아야 함에도.
“태연히 웃는 얼굴 / 모가지를 비틀어버리고 싶은 / 조금 뒤가 온다”
나는 '조금' '아주 조금' 늦었던 일로 안절부절못하지만 ‘조금 전’은 그런 나를 보고 웃습니다. 아니 비웃습니다. 순간 ‘조금 전’의 모가지를 비틀고 싶지만 ‘조금 뒤’가 따라오기에 그 짓도 못합니다. 부끄러워서, 아니 내 잘못이 더 커서.
그런데 시의 내용과 달리 조금 늦어서 행운을 얻은 사람도 꽤 됩니다. 비행기를 놓쳐 발을 동동 굴렀는데 그 비행기가 날아가다 사고를 당했다든지. 주변에서 조금 늦어 오히려 좋은 기회를 얻었다는 얘기도 흔히 들으니 꼭 조금 전 일로 조금 뒤가 잘못된다고 할 순 없겠네요.
*. 사진 첫째는 [한국경제](2020.07.28), 둘째는 [중앙일보](2023.03.16)에서 퍼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