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애경 시인(1956년생) : 서울 출신으로 1982년 [중앙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 이 시인의 별명이 ‘맛詩 요리사’인데 그만큼 시를 맛있게 잘 쓴다는 뜻이며, 한국영상대 교수로 근무하다 퇴직
<함께 나누기>
저랑 인연을 맺을 뻔한 여인들을 떠올려 봅니다. 모두 선을 보고 거절했거나 거절당한 여인들입니다. 요즘 식으로 말하면 소위 '여사친'들. ㅇㅇ시장에서 건어물가게 부모님 도우면 일하던 아가씨, 부모님이 ㅇㅇ극장 옆에서 큰 세탁소 운영하던 아가씨, ㅇㅇ대학 간호학과 다니던 아가씨...
물론 세 여인은 지금 용어로 여친이 아니라 그냥 선을 봐 소개받은 분들이라 이름도 얼굴도 기억나지 않습니다. 다만 부모님 직업만 기억나는 건 썩 끌리지 않아서인 듯. 아니면 제가 자본주의에 예속된 속물적 인간이라 그런지도...
시로 들어갑니다.
“뭐가 그렇게 결국 달라졌을까 / 그 남자와 내가 함께 살았더라면”
뭐가 달라졌을까요, 그(혹은 그녀)와 결혼했더라면. 글벗님들도 아마 한두 번 맺어질 뻔한 상대가 있었으니 그 기분 아실 터. 만약 그리 맺어졌더라면 ‘갈증이 가시어 서늘하게 가라앉았을까요, 또한 나날이 행복했을까요?’
“할 말이 있을 것 같지 않았는데 / 아니 아직 잊지 않았다”
평소엔 떠오르지 않는 얼굴이건만 가끔, 아주 가끔 떠오르는 사람이 있습니다. 내 볼에 젊은 빛 사라질 무렵이라서 그런지 더더욱. 그래서 수신자 없음을 알면서도 책상 앞에 졸음에 무거워진 머리를 늘어뜨린 채 쪼그려 앉아 그대에게 몇 자 적어봅니다.
“그대 우연히 마주치더라도 / 내 인사말은 떨려 나오지 않겠고”
혹 그대를 길에서 우연히, 아주 우연히 마주치더라도 내 인사말은 떨려 나오지 않고 담담히, 아주 담담히 목례만 올리겠지요. 그러기에 뒤돌아가는 내 등 쓸쓸해 보이지 않을지 몰라도 사실 속마음은 그렇지 않음을. 담담함을 위장했으니 돌아선 얼굴에 아쉬움이 흐를 듯.
“지금 와서 생각하는데 / 이상하지 / 그대도 나를 사랑했고 / 지금도 어느 정도 그럴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내가 좋아한 만큼 그대도 나를 좋아했으리라 생각함은 당연한 일. 그러기에 그 애틋함 아직 남아 있고. 오랜 시간 지나 그대를 다시 봄에도 그때 그 둥글던 얼굴의 선은 변하지 않았더군요. 아직 기억 속에 남아있음 다행으로 여겨야 할지.
앞에서 거론한 세 여인들, ‘ㅇㅇ시장 건어물가게’, ‘ㅇㅇ극장 옆 세탁소’, ‘ㅇㅇ대학 간호학과’. 세 여인 가운데 한 명과 결혼했으면 현재보다 살림은 나아졌을지 혹시 모르나 한 가지 확신하는 바는 있습니다.
샤워하러 들어갈 때 속옷 함부로 던져놓는다고, 먹다 남은 김 제대로 통에 안 담았다고, 감자칩 먹다 겉봉 제대로 오므리지 않았다고, 변기 안에 오줌 제대로 안 쌌다고 잔소리하는 할매랑 산다는 사실은 분명할 겁니다. ㅠㅠ
*. 둘째 사진은 길에서 마주치는 연예인을 찾다가 [한국경제](2014.10.24)에서 퍼왔는데, 탤런트 이요원 씨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