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우씨의 詩詩하게 살자(178)

제178편 : 김춘기 시조시인의 '아프다 아프리카'

@. 오늘은 김춘기 시조시인의 시조를 배달합니다.


아프다 아프리카

김춘기


하늘 덮는 사하라 먼지, 물새 떠난 빅토리아폭포


킬리만자로 흰 모자 벗는다 동아프리카 갈라진다 청나일강 목이 탄다

대물림이다, 평생 가난

창궐한다, 에이즈

종교끼리 피 흘린다 이데올로기로 내전이다 독재가 독재 몰아낸다 굶주림이 밥이다

진흙에 마가린 넣은 흙과자가 간식이다 병원은 걸어서 백 리 밖에라도 있으면 다행이다


아프다, 검은 아프리카 지중해에 뜬 시신들

- [윗세오름 까마귀](2023년)


#. 김춘기 시조시인(1954년생) : 경기도 양주 출신으로 2008년 [국제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 경기도에서 교편 잡다가 명퇴 후 현재 제주도로 내려가 생활하는데 시인인 아내 김영옥과 함께 [윗세오름 까마귀]란 부부시집을 펴냄

(동명이인으로 돌아가신 경남 고성 출신의 김춘기 시조시인도 계심)




<함께 나누기>


언젠가 ‘아프리카 커피 농장 어린이 노동 현실’이란 강연회에 갔는데 그때 강사가 이런 질문을 던지더군요. 아프리카란 말의 어원을 아느냐고. 사람들이 다들 머뭇거리니까 웃으며 덧붙이더군요. 아프리카의 어원을 우리말에서 찾을 수 있다고.

웃는 모습을 보고 번뜩 머릿속으로 스쳐가는 어원이 생각나 손들고 답했습니다. ‘혹 아프니까 아프리카란 이름 붙지 않았느냐’고. 강사가 손뼉을 치면서 ‘엄지 척’을 하더군요. 청중들은 다들 웃음 터뜨리고. 저는 대답을 그리 했지만 속으론 편치 않았습니다.


시조로 들어가기에 앞서 글벗님들은 의문이 들 겁니다. 오늘 올린 저 작품이 시가 아니라 시조냐고? 저도 솔직히 지은이가 시조시인이라 밝히지 않았으면 이게 시조라고 생각지 못했을 겁니다.

요즘 현대시조가 하도 변형을 많이 해서 까다롭긴 해도 고시조의 3장 형태로 만들면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데 오늘 시조는 그렇지 않습니다. 굳이 고시조 형태로 말하면 일종의 사설시조이기에 그렇습니다. 하기야 사설시조는 옛날에도 특별한 시조 대우받았으니까요.


그러니까 초장과 종장만 4음보 음수율을 지킬 뿐 중장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당장 봐도 길이만 5행이니 음보로 따지면 30음보쯤 될까. 그래서 저도 정형성을 지녔다는 현대시조와 운율이 자유로운 현대시의 경계가 어디인지 헷갈릴 때가 많습니다.


“하늘 덮는 사하라 먼지, 물새 떠난 빅토리아폭포”


아프리카의 특징을 얘기할 때면 북회귀선을 지나는 사하라 사막과 동부 아프리카의 빅토리아 폭포, 이 둘이 상징이나 마찬가지지요. 사막의 끝없는 모래와 모래폭풍, 그리고 폭포의 거대한 물줄기를 앞세워 그에 대한 경외감을 표현하는 시인가 했는데...


“킬리만자로 흰 모자 벗는다 동아프리카 갈라진다 청나일강 목이 탄다”


킬리만자로의 만년설이 서서히 녹아 흘러야 물이 일정하게 공급되는데 지구온난화로 이미 (흰 모자 벗을 정도로) 많이 녹았습니다. 또 아프리카에 들이닥친 가뭄으로 빅토리아폭포도 마르고 청나일강도 말라 곡식은 물론 야생동물도 살 수 없는 땅이 돼 가고 있습니다.


“대물림이다, 평생 가난 / 창궐한다, 에이즈”


아프리카는 가난에서 벗어나려고 몸부림치건만 벗어날 수 없는 구조적 모순에 처해 있습니다. 거기에 코로나19와 유사하지만 더 위험한 ‘엠폭스 바이러스’가 다시 창궐해 무서운 속도로 아프리카를 밟으며 퍼져가고 있습니다.


“종교끼리 피 흘린다 이데올로기로 내전이다 독재가 독재 몰아낸다 굶주림이 밥이다”


아프리카에는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전쟁 못지않은 무슬림과 기독교의 분쟁으로 내전을 겪고 있는 나라가 여럿입니다. 또 거기에 대부분의 아프리카 국가는 독재자가 정권을 잡아 국민 복지보다는 정권 유지에 혈안이 된 터.


“진흙에 마가린 넣은 흙과자가 간식이다 병원은 걸어서 백 리 밖에라도 있으면 다행이다”


참 읽기가 불편하지요. 아이들 간식이 진흙에다 마가린 넣은 흙과자라니. 더더욱 아프면 병원이 멀어 치료받아 보지 못합니다. 검색하러 ‘아프리카’ 치면 딸리는 키워드는 ‘가난’, ‘에이즈’, ‘전쟁’, ‘독재’, ‘굶주림’만 뜨니 더 말할 필요 없겠지요.


“아프다, 검은 아프리카 지중해에 뜬 시신들”


종장이 이 시조의 절정을 이룹니다. 흔히 쓰는 ‘아프니까 청춘이다’가 아니라 ‘아프니까 아프리카다’ 언제쯤 아프지 않는 아프리카를 보게 될까요? 언제쯤 아프리카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요? 언제 안 아픈 아프리카의 소리가 들려올까요?



*. 두 번째 사진은 아프리카의 성녀로 알려진 영화배우 오드리 헵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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