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우씨의 산골일기(181)

제181화 : 제발 덜 익은 열매는 따가지 마세요

* 제발 덜 익은 열매는 따가지 마세요! *



내가 사는 달내(月川)마을은 달리 다랫골로도 불린다. 달냇골 다랫골 두 발음의 유사성에서 만들어진 이름인 듯하다. ‘다랫골’이란 이름의 유래는 다래가 많이 열린다 하여 붙여졌다. 만약 머루가 많이 열리면 '머룻골'이 되었을 터.

요즘 웬만한 산골에도 좀처럼 야생다래를 볼 수 없는데 다래 열리는 마을이라니 얼마나 낭만적인가. “살어리 살어리랏다 청산에 살어리랏다. 머루랑 다래랑 먹고 청산에 살어리랏다” 하는 「청산별곡」을 굳이 떠올리지 않더라도.

「청산별곡」에 나오는 머루도 마침 열리고 있다, 바로 우리 집 뒤에. 산이 그리 깊지 않건만 그런 산치고는 야생의 열매, 야생화가 제법 많이 보인다. 다래 ㆍ 머루뿐 아니라 으름과 깨금(표준어로는 ‘개암’)도 보이고, 산도라지 ㆍ 더덕도 심심찮게 본다.


(다래)


19년 전 여름 이 마을에 이사 온 뒤 길가에도 다래가 열린다는 이웃 어른의 말씀을 듣고 가을이 되자 다래 따기 위해 마을 들어오는 입구부터 샅샅이 훑었다. 제법 찬찬히 둘러보았건만 좀체 보이지 않았다. 괜히 속았다는 마음에 왜 다랫골이란 헛이름 붙였는가 하고 원망했다.

헌데 다음 해 봄 아내가 마을 할머니 따라 산나물 뜯으러 산에 갔다 올 때 자루가 꽉 차 있었다. 자루에 담긴 나물을 보니 다래순이 가장 많지 않은가. 아내 말을 들어보니 산속에 들어가자 온통 다래덩굴 천지라 했다. 다래순은 살짝 데쳐 말렸다 묵나물로 만들면 겨울에 입이 신난다.


그럼 왜 나는 보지 못했을까? 그 의문은 쉽게 풀렸다. 며칠 전 이 마을에 놀러 온 이들이 돌아가는 길에 우리 집 앞에서 차를 잠시 멈추었다. 자기들도 전원주택에 관심 있어 우리 집을 구경하고 싶다 하며. 다 구경하고 돌아갈 때 인사 나누다 우연히 차 안을 들여다보게 되었다.

얼핏 보니 뒷좌석을 꽉 메운 게 다래덩굴이 아닌가. 그리고 거기엔 덜 익은 다래가 달려 있었고. 왜 덜 익은 걸 따 갖고 가느냐 했더니, 내 말에 가시가 돋친 걸 눈치챘는지 슬쩍 얼버무리더니 그냥 가버렸다.


(머루)

그랬다. 길가에도 흔히 보이던 잘 익은 다래를 다랫골에서 볼 수 없었던 까닭은 놀러 온 이들이 채 익기도 전에 따가기 때문이다. 어디 다래뿐이랴, 머루와 으름도 온전히 자랄 틈을 안 준다. 왜 덜 익은 걸 따가는가 하여 인터넷을 뒤지니 덜 익은 게 효소 만들 때 약성(藥性)이 좋다나.

지난봄에는 등산복 차림의 배낭을 둘러맨 사람이 산에서 내려와 물 좀 달라고 들어오기에 배낭에 뭐가 들어 있느냐 했더니 더덕을 캤다는 게 아닌가. 열어본 그 속에는 일이 년밖에 안 된 더덕 100여 뿌리가 들어 있었다. 어린 더덕을 캐 가면 다음이 문제다. 열매 맺지 못해 씨가 마르므로.



시골에 놀러 온 도시인들이 길가에, 혹은 산속에 있는 야생의 열매를 따고 약초를 캐 가고픈 마음을 충분히 이해한다. 그러나 그게 익었을 땐 문제없으나 익기도 전에 따가는 건 심각하다. 익으면 씨앗이 떨어져 다음 해 싹을 틔울 수 있지만 씨앗 맺기 전에 따가면 불가능하다.

또한 산 속이나 길가는 몰라도 버젓이 사람 사는 집 안의 나무에 달린 열매는 최소한 주인의 양해 아래 따가야 한다. 만약 도시의 주택에 감이 열려 있으면 그 집주인의 허락을 받지 않고 따갈 수 있을까? 또 주인이 그걸 봤을 때 가만있을까?


(으름)



작년 길가까지 뻗은 우리 집 100년 된 감나무에 제법 큰 영지버섯이 달려 있었다. 감나무 아랫부분이 썩어 고목이 되는 바람에 영지버섯도 달렸으리라. 조금만 더 크면 따야지 하며 놔뒀는데 며칠 뒤에 보니까 없어졌다. 놀러 온 이가 따가는 걸 동네 할머니 한 분이 보고 야단치니까 총알 같이 차를 몰고 달아나더라나.

올해 감나무 그 자리에 작년처럼 영지가 다시 자리 잡았다. 허나 얼마나 오래 붙어 있을지 의문이다. 집 앞 대문 쪽에 이런 안내표지판을 붙여 놓을까. “이 영지버섯은 병든 주인이 먹을 예정이므로 따가지 마시오.”라고.


(감나무 영지버섯)



마을로 들어오는 길목 한 구석에 다래가 많이 열린 곳이 있다. 오늘 보니까 손 닿는 위치에 있는 건 하나도 남지 않았다. 계곡 아래로 눈을 주니 거기만 조금 남았을 뿐. 그것도 얼마나 갈까. 하도 안타까워 지나가는 마을 어른에게,

“이 다래들은 이 마을의 상징입니다. 제발 익을 때까지만 놔두세요.”하고 쓰인 팻말을 붙이면 어떨까 했더니 그러면 그게 다래인지 모르는 사람조차 알게 돼 더 따간다며 반대하신다.

그 말에 아! 했다. 감탄사라 해도 ‘허탈’의 감탄사. 올해도 다랫골에 다래는 없는 비극이 되풀이되리라.


*. 이 글은 예전에 쓴 글을 다듬어 다시 내놓습니다. 사진은 구글 이미지에서 퍼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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