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우씨의 詩詩하게 살자(180)

제180편 : 이종문 시조시인의 시조 '밥 도'와 '밥'

@. 오늘은 이종문 시조시인의 시조 두 편을 배달합니다.

(밥을 글감으로 한 두 편의 시조는 지향점이 조금 다르지만 함께 묶어 배달합니다)



[1] 밥 도

이종문


나이 쉰다섯에 과수가 된 하동댁이

남편을 산에 묻고 땅을 치며 돌아오니

여든둘 시어머니가 문에 섰다 하시는 말

- [정말 꿈틀, 하지 뭐니](2010년)


*. 과수(寡守) : 과부(寡婦)와 같은 뜻



[2] 밥

이종문


밥을 삼켰어요, 흑, 흑, 우는 밥을, 어깨를, 들먹이며, 흐느껴, 우는 밥을, 내 입엔 들어가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치는, 밥을!

- [정말 꿈틀, 하지 뭐니](2010년)


#. 이종문 시조시인(1955년생) : 경북 영천 출신으로 1993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 계명대 한문교육과 교수로 재직하다가 퇴임했는데, 특히 능청스러운 반전과 해학과 풍자로 쓴 시조가 읽는 맛을 준다는 평을 들음



<함께 나누기>


[1]


화자의 어머니는 치매 환자입니다. 치매 형태는 다양하게 나타나는데 그 하나가 현재 처한 상황을 전혀 인식 못하고 당신이 원하는 바를 막무가내 요구합니다. 또한 당신이 한 일을 잊어먹고 다시 요청하기도 합니다. 한 예로 밥을 먹었는데 돌아서자마자 다시 밥 달라고 하는 일.

택호가 하동댁인 여인이 쉰다섯에 남편을 산에 묻고 땅을 치며 웁니다. 아직 살 날이 많이 남았는데 남편 없이 살아야 하니 기막힌 일이지요. 헌데 남편을 묻고 돌아온 며느리 앞에 치매 걸린 시어머니가 ‘밥 도!’라 합니다. 여기서 '밥 도'는 ‘밥 다오!’의 경상도 사투리입니다.


참 억장이 무너질 일입니다. 당신 아들 죽어 며느리가 과부가 되었건만 현실을 인식 못하는 치매환자라 나올 법한 말이지만. 하동댁은 아무리 슬퍼도 애달아도 배고픈 시어머니를 위해 부엌으로 내려가야 할 운명인가 봅니다. 참 막막한 인생.

어떤 평론가는 이 시조에서 유머 감각이 보인다고 했습니다. 도저히 웃음이 나오지 않을 듯한 상황에서도 피식 웃게 만드는 여유. 그런 유머가 슬픔을 극복하고 살아가는 힘이라고. 일리 있는 말 같지만 치매환자를 가족으로 둬 본 사람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겁니다. 저도 마찬가집니다.



[2]


이 시를 보고 ‘이게 시조야?’ 하실 분이 계실까 봐 고시조의 3장 4음보 형태로 재구성해 봅니다.


“밥을 / 삼켰어요, / 흑, 흑, / 우는 밥을, /

어깨를, / 들먹이며, / 흐느껴, / 우는 밥을, /

내 입엔 / 들어가지 않으려고, / 발버둥을, / 치는, 밥을! /”


이 정도로 시조를 자유자재 쓴다면 시조의 달인이란 말을 붙여도 되지 않을까요? 전혀 시조 같지 않은데 완전 시조 형태를 유지했으니... 3장 형태가 아닌 이렇게 한 줄로 이어 적음도 다 노림이 있습니다. 호흡을 급박하게 이어감으로써 밥의 숨가쁜 발버둥을 느끼게 하려고.

숨가쁘게 전개시키면서 쉼표를 쉼 없이 늘어놓음도 그냥 지나치지 말고 눈여겨볼 대목입니다. 쉼표 붙은 시구마다 잠시 잠시 쉬었다 읽으라고. 그게 더 숨가쁨을 일으키게 하는지 모르겠지만.


이 시조의 숨가쁨은 사실 첫 구절 '밥을 삼켰어요'로부터 시작합니다. 밥을 꼭꼭 씹어야 영양에도 건강에도 좋은데 그냥 삼켰습니다. 다음 숨가쁨은 밥이 내 입에 한사코 들어가지 않으려 울고 발버둥 침에서 나타납니다. 당연히 밥이 우는 게 아니라 밥 먹는 화자가 울겠지만.

그럼 화자는 밥을 먹으면서 왜 울고 싶을까요? 앞 시조 「밥 도」에 나오는 하동댁이 시인의 어머니(또는 아내)라면 쉽게 이해하겠는데 그런 암시는 보이지 않습니다. 다만 밥과 연관된 어떤 사람을 떠올리며 먹다 보니 울고 싶은 심정이 생기지 않았을까 합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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