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우씨의 詩詩하게 살자(181)

제181편 : 안현미 시인의 '곰곰'

@. 오늘은 안현미 시인의 시를 배달합니다.


곰곰

안현미


‘주름진 동굴에서 백일 동안 마늘만 먹었다지

여자가 되겠다고?


백일 동안 아린 마늘만 먹을 때

여자를 꿈꾸며 행복하기는 했니?


그런데 넌 여자로 태어나

마늘 아닌 걸

먹어본 적이 있기는 하니?’

- [곰곰](2006년, 2018년 재간)


#. 안현미(1972년생) : 강원도 태백 출신으로 2001년 [문학동네]를 통해 등단. 현재 남산예술센터에서 근무하고 있는데, 어려운 가정에서 자란 삶을 시로 형상화 한 작품이 많음




<함께 나누기>


제가 수업 중에 가끔 유머랍시고 썰 풀면 아이들이 책상을 두들겼습니다, 마구. 너무 재미있어서? 아뇨 워낙 썰렁해서. 그 하나가 ‘곰곰이’입니다. 교과서엔 ‘곰곰이’ 자주 나옵니다. 그럴 때마다 ‘곰곰이 생각하다’를 '곰 두 마리가 생각하다'는 식으로 해석합니다.

다음으로 ‘철없는’이란 낱말이 나오면 ‘철없는 아이들은 어디로 가야 하지?’ 하고 물으면 머뭇거립니다. 그러면 이리 답하지요. '철없는 애들은 포항제철 가까이 가서 살아야 한다. 거기 가서 철 많이 먹도록.' 그 뒤 이어지는 야유는 짐작하시겠죠.


시로 들어갑니다.


오늘 시에서 곰곰은 '곰곰이'라는 부사와 관련 없고, '곰+곰'처럼 곰 두 마리를 겹쳐놓은 형태입니다. 그럼 그 뜻은? 여자가 되고 싶어 하는 곰과, 여자가 되고 난 뒤 후회하는 곰으로 새깁니다.

단군신화에서 호랑이와 곰은 환웅 대왕을 찾아와 사람으로 만들어 달라고 애원합니다. 짐승보다 사람이 살아가기 편하다고 여겼을까요? 대왕은 과제를 내줍니다. 동굴에서 백일 동안 쑥과 마늘만 먹고 견디면 사람이 되게 해 주겠다고. 여기까지가 신화의 줄거리입니다.


"백일 동안 아린 마늘만 먹을 때 / 여자를 꿈꾸며 행복하기는 했니?"


신화(역사)와 시(문학)의 차이점이 드러납니다. 신화에선 하필 마늘을 왜 내세웠을까가 주된 관심사라면, 시에선 곰은 여자를 꿈꾸며 마늘을 먹을 때 행복했느냐고 묻습니다. 신화 연구에 없는 '심리'가 들어갑니다.

이 질문에 대한 곰의 답은 어떨까요? ①무조건 행복했다 ②행복과 불행이 반반 섞였다 ③전혀 행복하지 않았다 어쩌면 시인은 3연을 보아 ③번에다 답했는지 모르겠습니다. 허나 일반적 답은 ①번이 되어야지요. 여자가 될 수 있다는 기대감에 쓴 쑥과 아린 마늘을 먹었으니까요.


"그런데 넌 여자로 태어나 / 마늘 아닌 걸 / 먹어본 적이 있기는 하니?"


여자가 된 걸 후회하는 대목입니다. 사람이 되더라도 남자가 되었으면 몰라도 여자이기에 후회한다는. 하기야 단군신화 창작자는 곰이 반드시 여자여야 했습니다. 그래야 환웅 대왕과 결혼해 단군 할아버지를 낳을 수 있으니까요.

헌데 시인은 여기서 딴지를 겁니다. 남자보다 천대받는 여자가 될 줄 알았으면 곰도 사람이 되길 꿈꾸지 않았을 거라고. 본의 아니게 여자로 태어나 참고 견뎌야 하는 일이 그렇게도 많고, 여자에게만 고통을 요구할 경우가 많으니까 나온 표현이라고.


그래서 여자에게 묻는 말, ‘너는 마늘 아닌 걸 먹어본 적이 있기는 하니?’ 참 많은 의미를 담았습니다. 여자는 반드시 마늘 같은 아린 삶을 살 수밖에 없다고. 그만큼 힘든 삶의 무게에 눌린 채 살아야 한다고.

헌데 요즘 나이 드니까 의문이 하나 생겼습니다. 지금도 여자들은 남자 아닌 여자로 태어난 걸 후회하고 있을까? 하고. 글벗님 가운데 남자에게만 특별히 물어봅니다. 남자로 태어나서 여자보다 행복하다고 여기는지...

(남자든 여자든 댓글로 답해주시길)



*. 첫째 사진은 구글 이미지에서, 둘째는 경북 군위군 홈페이지에서 퍼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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