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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우씨의 詩詩하게 살자(184)

제184편 : 김윤현 시인의 '채송화'

@. 오늘은 김윤현 시인의 시를 배달합니다.


채송화

김윤현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 일이라면

나지막하게라도 꽃을 피우겠습니다

꽃잎을 달고 향기도 풍기겠습니다

우리 모두가 살아가는 세상에는

제 이름을 달지 못하는 꽃도 많습니다

토담 위라도 불만이 있을 리 없지요

속셈이 있어 빨강 노랑 분홍의 빛깔을

색색이 내비치는 것은 더욱 아닙니다

메마르고 시든 일상에서 돌아와 그대

마음 환하게 열린다면 그만이겠습니다

몸을 세워 높은 곳에 이르지 못하고

화려하지 않아도 세상 살아갑니다

- [들꽃을 엿듣다](2007년)


#. 김윤현 시인(1955년생) : 경북 의성 출신으로, 동인지 [분단시대]를 통해 등단. 대구 영진고에서 근무하다가 퇴임했으며, '들꽃 시인'이란 별명이 붙을 정도로 들꽃을 글감으로 한 시를 많이 씀.




<함께 나누기>


어떤 한 부분을 두고 우리나라 시인 가운데 '최고'라는 평을 붙이면 ‘네가 시인을 뭐 그리 많이 안다고 그런 말을 하느냐?’는 분들 계실까 봐 좀체 쓰지 않습니다. 함에도 들꽃을 관찰하고 들꽃을 글감으로 한 시를 가장 꾸준히 써온 시인이 누구냐 하면 저는 스스럼없이 김윤현 시인을 추천합니다.

오늘 배달하는 '채송화' 시를 들꽃시 가운데 가장 좋아합니다. 당연히 예전에 배달했겠지요. 다만 제 내장하드에서 가출했을 뿐. 언제나 채송화를 들먹이면 60년쯤 된 추억이 되살아납니다. 그러니까 초등학교 4학년 때라 짐작합니다.


어느 날 선생님께서 채송화 한 뿌리 뽑아와 우리에게 보여주면서 말했습니다.

“봐라, 이 채송화를 거꾸로 꽂아놓을 테니 앞으로 어떻게 되는가를.”

그리고 며칠 지나 놀라운 광경을 보았습니다. 어떤 식물도 거꾸로 꽂으면 죽는다고 알고 있는 우리에게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세상에, 화분에 거꾸로 심었건만 채송화가 살아났던 것입니다. 그리고 선생님은 우리에게 직접 뿌리가 내린 모습도 보여주었지요.


그때 선생님은 우리에게 채송화처럼 어떤 척박한 환경에서든 굳건히 뿌리내리고 살아라는 교훈을 심어주려 하셨을지도...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 일이라면 / 나지막하게라도 꽃을 피우겠습니다"


들꽃은 장미 모란 양귀비 하는 꽃에 비해 사람들 관심사에서 좀 떨어져 있습니다. 그 가운데서 채송화처럼 키 작은 들꽃은 더욱더. 허나 채송화 한 송이가 피어도 장미꽃이 무더기무더기 피어도 우주 한 귀퉁이를 아름답게 장식함은 마찬가집니다.


"우리 모두가 살아가는 세상에는 / 제 이름을 달지 못하는 꽃도 많습니다"


그렇습니다. 수많은 꽃들이 피었다 사라지지만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꽃은 몇 안 됩니다. 대부분 '이모꽃' - 이름 모를 꽃 -입니다. 사람도 그렇지요. 역사에 한 줄 이름 남긴 사람보다 무명의 들꽃으로 살다 떠난 사람들이 훨씬 더 많음을.


"토담 위라도 불만이 있을 리 없지요"


그저 내가 속한 무리에서 작은 자리 나마 차지해 한쪽에 앉아 묵묵히 맡은 일을 할 수 있음이 고마울 뿐. 삐까번쩍하게 살고 싶은 욕심도 잠깐 가졌습니다만 그게 손에 닿지 않는 안드로메다 성운에 가 있기에 진작 포기했습니다.


"메마르고 시든 일상에서 돌아와 그대 / 마음 환하게 열린다면 그만이겠습니다"


그대를 유혹하기 위해 빨강 노랑 분홍의 가지가지 빛깔을 내비치는 건 아닙니다. 그저 지나치는 걸음에 잠깐이나마 눈길 주신다면 더없는 영광일 뿐. 거기에 저를 봄으로 하여 그대 마음 기쁘다면 더욱 좋겠고...


"몸을 세워 높은 곳에 이르지 못하고 / 화려하지 않아도 세상 살아갑니다"


꼭 높은 자리에 이르러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재물을 쌓아야, 누구나 이름 대면 고개 끄덕이는 사람이 되어야 보람 있는 삶일까요? 누구 하나 눈길 주지 않더라도 묵묵히 제 홀로 피어 우주를 아름답게 만드는 들꽃처럼 우리도 그렇게 살다가고 싶습니다.



*. 첫째 사진은 우리나라에서 흔히 보는 채송화, 둘째는 'rose moss'라 불리는 서양채송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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