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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우씨의 詩詩하게 살자(185)

제185편 : 최문자 시인의 '고백'

@. 오늘은 최문자 시인의 시를 배달합니다.


고백

최문자


향나무처럼 사랑할 수 없었습니다.

제 몸을 찍어 넘기는 도낏날에

향을 흠뻑 묻혀주는 향나무처럼

그렇게 막무가내로 사랑할 수 없었습니다.

- [사과 사이사이 새](2012년)


#. 최문자 시인(1943년생) : 서울 출신으로 1982년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 협성대 문창과 교수를 거쳐 제6대 협성대학교 총장을 역임했으며, 퇴직 후 배재대 석좌교수로 재직.




<함께 나누기>


장미꽃, 아카시아꽃, 칡꽃, 백리향, 천리향, 만리향, 등꽃... 이런 꽃에 코를 갖다 대면 참 향긋한 내음이 스며듭니다. 물론 이런 꽃 말고도 워낙 많아 일일이 거론하기 곤란하지만 다들 알다시피 향기 고운 꽃이 참 많지요.

헌데 나무도 향기가 날까요? 아 물론 없는 건 아닙니다만 아주 드뭅니다. (피톤치트 제외) 한 예로 오늘 시의 글감이 향나무를 볼까요? 이름이 향기 나는 나무라 돼 있으니 향기가 남이 분명할 겁니다. 다만 향나무에 아무리 코를 가까이 갖다 댄들 그 고운 향이 나지 않습니다.


역설적이지만 향나무 향을 맡으려면 도끼로 내리치든지 톱으로 잘라야 합니다. 즉 나무를 죽여야만 향이 배어나옵니다. 그러니까 살아 있을 땐 향을 맡을 수 없는데 자르든지 꺾든지 해야 향기를 맡을 수 있다니. 향기 나는 꽃보다 참 억울한 향기 나는 나무입니다.

오늘 만나는 최문자 시인은 제가 처음 배달합니다. 해마다 같은 시인을 3/4쯤 배달하고, 1/4쯤 새로운 시인 소개하는데 최문자 시인도 거기에 해당합니다. 이 시인은 제가 고른 게 아니라 글벗이 소개해줬습니다. 몇 편 읽으니 개신교 신자로 하느님(하나님)께 간증하는 내용의 시가 많았습니다.


오늘 시도 그렇습니다.


“향나무처럼 사랑할 수 없었습니다.”


향나무처럼 사랑하고 싶다는 희망을 안고 나갈 줄 알았는데 거꾸로 잡았군요. 향나무처럼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고. 나에게 상처만 주는 그대에게 앙탈 부리지도, 저주의 말 하지도, 독설 퍼붓지도 않고 오직 주기만 하는 향나무 사랑을 따라갈 자신이 없다는 뜻으로 읽습니다.


“제 몸을 찍어 넘기는 도낏날에 / 향을 흠뻑 묻혀주는 향나무처럼”


인간에게 고기를 제공하기 위해 가축을 도살할 때 예전에는 도끼를 사용했습니다만 지금은 안 됩니다. 자칫하면 고통이 오래가기에. 다만 나무는 아직도 톱이나 도끼를 사용합니다. 고통 느끼지 못한다고 여겨선지. 그래도 향나무는 자기 몸을 찍는 도낏날에 향기 흠뻑 묻혀줍니다.

이 구절만 보면 ‘원수까지도 사랑하라’는 성경 구절보다 향나무의 사랑은 차원이 다른 사랑입니다. 원수를 사랑하는 일도 힘들지만 그 원수가 저지르는 온갖 해악을 달게 받아들이다니... 인간세에 이런 사랑 베푸는 사람을 찾아볼 수 있을까요?


“그렇게 막무가내로 사랑할 수 없었습니다”


향나무는 자신을 상처 입히고 괴롭히는 사람에게 오히려 자신의 향기를 남겨주려 하지만, 그렇게까지 성스럽지 못한 자신의 한계를 반성함은 스스로를 원망하고 비난하는 일보다 몇 배나 더 힘듭니다. 해서 화자는 진심으로 고백합니다. '막무가내로 사랑할 수 없다'라고.

아마 이 시를 읽고 또 읽으면 ‘막무가내’란 시어가 목에 가시 걸린 듯 생각날 겁니다. 신은 우리에게 막무가내의 사랑을 요구하는데 우리는 그러지 못하기에 부끄럽고 후회하게 돼 고백할 수밖에 없다고.


또는 시를 다양하게 읽는 측면에서 본다면 비록 향나무 같은 사랑을 베풀 능력이 없음을 고백하지만, 향나무의 무한 사랑을 본받고자 계속 노력하겠다는 뜻으로 읽어도 되지 않을까 합니다.


오늘 시 제목을 다시 한번 봅니다. 「고백」

학자들은 인간을 동물과 구별하는 요소로 '사회적', '유희적', '도구적', '정치적', '경제적'으로 나눴습니다만 자신의 행위를 반성하고 고백하는 일이야말로 가장 호모사피엔스다운 자질이 아닐까요?


한 편 더 배달합니다.


- 팽이 -


세상이 꽁꽁 얼어붙었습니다 하나님,

팽이 치러 나오세요

무명 타래 엮은 줄로 나를 챙챙 감았다가

얼음판 위에 휙 내던지고, 괜찮아요

심장을 퍽퍽 갈기세요

죽었다가도 일어설게요

뺨을 맞고 하얘진 얼굴로

아무 기둥도 없이 서 있는

이게,

선 줄 알면

다시 쓰러지는 이게

제 사랑입니다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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