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우씨의 詩詩하게 살자(186)

제186편 : 홍영철 시인의 '모두가 추억이다'

@. 오늘은 홍영철 시인의 시를 배달합니다.


모두가 추억이다

홍영철


버리지 마라 모두가 추억이다.

세월이 가면 모래도 진흙도 보석이 된다.

너의 꿈은 얼마나 찬란했더냐

부는 바람도 내리는 비도 그치고야 말 듯이

아픔도 슬픔도 언젠가는 지칠 때가 올 것이다.

- [여기 수선화가 있었어요](2012년)


#. 홍영철 시인(1955년생) : 대구 출신으로 1978년 [매일신문]과 [문학사상]을 통해 등단. [문학사상] 편집부에 근무하는 등 신문, 잡지, 방송, 출판 일을 꾸준히 함

(동명이인으로 복싱선수 출신의 시인도 있음)




<함께 나누기>


제가 십 년 전까지 부대찌개를 먹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짬빵(달리 꿀꿀이죽)'이 떠올라서. 모르시는 분을 위하여 언급하자면 당시 미군이 먹다 남긴 음식찌꺼기로 원래는 '꿀꿀이' 먹이로 보내던 걸 돈 벌려고 빼돌려 미군부대 주변 사람들에게 팔던 음식입니다.

짬빵은 아무것도 모르고 먹으면 그런대로 먹을 만했습니다. 아니 먹을 만한 게 아니라 삼끼세때 제대로 된 밥 먹을 수 없는 사람에겐 배불리 먹을 수 있는 값싼 음식이었습니다.


한 바께스(양동이) 가득 담아 온 짬빵은 바로 먹지 못하고 반드시 골라내는 작업을 한 뒤 끓여야 했습니다. 그 속엔 별의별 게 다 들어있으니까요. 감자덩이, 고깃덩이, 빵조각이 먹을 거라면, 담배나 이쑤시개 같이 먹어선 안 되는 것도 들어 있었습니다.

당연하겠지요. 미군들이 먹고 난 식탁에서 나온 모든 음식물을 다 끌어 모은 음식물 쓰레기였으니까요. 가끔 최악의 쓰레기가 나올 때도 있었습니다. 바로 희끄무레한 빛깔의 긴 골무처럼 생긴 고무주머니. 커서야 그게 무엇인 줄 알게 되자 며칠간 밥을 못 먹었습니다. 그 뒤 부대찌개는 제 사전에서 지웠습니다.

희끄무레한 빛깔의 긴 골무처럼 생긴 고무주머니 정체는 짐작만 하시길.


헌데 오늘 시인은 ‘모든 추억은 버려선 안 된다’, ‘버려도 좋은 추억은 없다’, ‘그 추억 만들기 위해 들인 시간을 생각해 보라’고 합니다.


“버리지 마라 모두가 추억이다”


글벗님들께도 아픔을 주고 슬픔을 주고 괴로움을 준 저와 비슷한 추억 한둘은 다 가지고 계실 터. 그건 정말 버리고 싶은데 버리지 말라니. 거기에 시인은 덧붙입니다. “세월이 가면 모래도 진흙도 보석이 된다”라고. 아무리 하찮은 추억도 시간이 지나면 보석이 되니 버리지 말라 합니다.


“너의 꿈은 얼마나 찬란했더냐”


젊었을 때 찬란한 미래를 꿈꾸지 않은 사람 있을까요? 다들 거창한(?) 꿈을 세우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허나 그 꿈을 이룬 사람은 얼마나 될까요? 그러면 모두 다 슬퍼해야 함에도 그렇지 않습니다. 왜냐면 시간이 지나면 그 꿈의 성공 여부와 별개로 들인 공이 더 소중함을 아니까요.


“부는 바람도 내리는 비도 그치고야 말 듯이 / 아픔도 슬픔도 언젠가는 지칠 때가 올 것이다”


지금 당장은 아픔이요 슬픔이겠지만 부는 바람에 비 그치고 해 돋아나듯이 그 아픔과 슬픔이 자양분 되어 다른 결실로 다가옵니다. 그래서 추억은 모래도 진흙도 보석으로 만드는 마법이라 하는가 봅니다. 그때는 비록 보잘것없었어도 시간이란 조미료가 들어가면 멋진 추억이 되기에.


저는 이제 부대찌개를 먹습니다. 생각하면 찢어지게 가난했던 시절 굶어 죽지 않기 위해 먹어야만 했던 아픈 추억이지만, 그 덕분에 이렇게 살아남았지 않았느냐고. 그래서 힘들 때 버틸 힘을 얻었노라고. 그러기에 버릴 추억은 없다고.


한 편 더 배달합니다.


- 너도 참 아프겠다 -


사당동 네거리와 이수교 사이

길 한가운데 늘어선 화단 속에

한때는 푸르게 빛났을 풀도 다 마르고

한때는 붉게 타올랐을 꽃도 다 스러졌는데

검은 가시덤불 속에서

죽은 듯 살아서 고개 떨군 채

바람 따라 떨고 있는 시든 장미 한 송이

오늘은 너도 참 사람만큼 아프겠다.

- [여기 수선화가 있었어요](2012년)



*. 첫째 사진은 언제나 추억 하면 생각나는 황순원 님의 소나기([우리학교신문] 2021.05.28)에서, 둘째 꿀꿀이죽 사진은 구글 이미지에서 퍼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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