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3화 : 그 땅에는 달맞이꽃이 피어 있다
* 그 땅에는 달맞이꽃이 피어 있다 *
삶의 터전을 시골로 옮기면서 우리 부부가 서로에게 약속한 하나가 있다. 아침마다 ‘마을 한 바퀴 돌기’ 그러면 저절로 일찍 일어날 수밖에 없고, 운동도 되고, 돌다가 어른들 만나 마을 소식까지 들을 수 있으니 일석삼조다.
처음에는 잘 지켰으나 해가 갈수록 산책하는 날보다 하지 않는 날이 더 많았고, 올해는 더위가 하도 심해 석 달이나 멈추었다. 마을 한 바퀴 하지 않음으로써 늘어나는 건 뱃살과 게으름뿐. 이래선 안 되겠다 싶어 기온이 조금 내려간 며칠 전부터 다시 걷는다.
헌데 공부 안 하던 애가 막상 공부하려면 연필 부러진다는 말이 있듯이 막상 결심하고 나자마자 비는 왜 그리 자주 내리는지. 오늘도 날이 잔뜩 찌푸렸지만 비는 내리지 않아 집을 나섰다. 늘 마을 아래쪽으로 갔는데 오늘따라 왠지 위쪽으로 가보고 싶어 그리로 길을 잡았다.
그 길은 외남선(경주시 외동읍과 양남면을 잇는 도로) 도로를 가로질러 ‘늘밭마을’을 한 바퀴 돌아오는 행로다. 대략 40분 정도 걸리는데 도로를 가로질러야 하는 점이 조금 아쉬울 뿐 조붓한 길이 펼치는 정취가 꽤나 멋있다.
오르막길로 들어서 걸음을 옮기는데 저만치서 유채꽃이 만발한 듯 노란 물감을 흩뿌려놓은 밭이 나왔다. '봄도 아닌 이 계절에 유채꽃이라니!' 하며 가까이 가 보니, 세상에! 온통 달맞이꽃이었다. 아니 어떻게 밭 전체가 달맞이꽃뿐이라니!
그러고 보니 마을 들어오는 길목에 산이나 밭을 개간하여 집을 짓기 위해 닦아놓은 널찍한 터엔 저녁마다 달맞이꽃이 핀다. 참 아름답다. 아침이라 활짝 핀 상태에서 서서히 오므라들고 있지만 그대로도 무척 고왔다.
달맞이꽃은 낮에는 꽃봉오리를 닫고 있다가 밤이 되면 꽃봉오리를 활짝 펼친다. 그러다 아침이면 다시 수줍은 듯 꽃잎을 접는데, 지금 이 순간 모습이 부끄럼 많은 갓 시집온 새색시가 얼굴 내미는 것 같아 더욱 이뻤다.
달맞이꽃을 한자로 '월견초'라 한다. 아마도 '月見草'를 우리말로 바꾸는 과정에서 '달맞이꽃'이 되었고, 밤에 피니 밤에 떠오르는 달을 향한 그리움을 나타낸다 하여 꽃말도 '기다림'이 되었으리라 짐작한다.
또 달맞이꽃은 해방이 될 무렵 우리나라에 들어왔기 때문에 '해방초'라고도 한다. 그에 비하면 망초꽃은 참 억울하다. 나라가 망할 무렵에 들어왔다 하여 망국초(亡國草)란 이름을 줄여 망초로 부르니까. 이를 보면 사람도 시기를 잘 타야 하는데 식물도 그런 것 같다.
그리스 신화에선 달맞이꽃이 달의 신 아르테미스와 달만 사랑한 요정이 만들어내는 애절한 사랑이 읽는 이의 마음을 울린다. 게다가 최근에는 '월견자(月見子)'라 불리는 달맞이꽃의 씨에서 나온 기름, 즉 종자유(種子油)가 질병을 치료하거나 건강식품으로 효과가 있다고 알려졌다.
이처럼 노오란 달맞이꽃은 어느새 아름답고, 낭만적이고, 유용한 식물처럼 우리에게 자리 잡았다. 그래서 가수는 달맞이꽃을 노래했고 (주병선과 전유진의 '달맞이꽃'), 시인은 시로 읊었고 (문정희의 '달맞이꽃'), 수필에선 글감으로 많이 애용돼 온 게 사실이다.
헌데 과연 달맞이꽃은 아름답기에, 질병 치료에 효과 있기에 우리 주변에 그냥 보고 즐겨도 좋은 꽃일까? 그리고 슬픈 사랑의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기에 그 꽃을 볼 때마다 아련함을 떠올려야 할 것인가?
무엇이든 속을 들여다보면 뜻밖의 사실이 드러난다. 달맞이꽃은 토종 아닌 외래식물이다. 단순히 외래식물이기에 기피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지 않는다. 외래식물 가운데 사랑받는 화초도 많으니까. 허나 달맞이꽃을 꽃만 보지 말고 생태 엿보면 달라진다.
다음은 달맞이꽃을 정원에 심었다 낭패본 이가 쓴 글을 보자.
“보기에도 좋고 몸에도 좋다 하여 정원에 예쁜 달맞이꽃을 심었다. 꽃은 때 맞춰 피어 달콤한 향을 뿜으며 정원을 가득 채웠다. 헌데 두어 달 지날 무렵 이상한 일이 생겨났다. 달맞이꽃 근처에 있는 다른 화초들이 하나둘 시들더니 말라버린 게 아닌가. 까닭을 몰라 고민하다가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달맞이꽃을 제거했더니 다시 살아났다. 그때사 달맞이꽃이 범인임을 알게 되었다.”
이 글의 진위 여부는 차치하고 분명한 사실은 달맞이꽃이 만발한 묵정밭에는 오직 달맞이꽃뿐이다. 다른 들꽃을 찾아보려도 찾을 수 없다. 이를 어떤 이는 달맞이꽃이 풍기는 향기에 다른 식물에 좋지 않은 요소가 들어있어서라고 하고 또 어떤 이는 왕성한 번식력에서 찾는다.
번식력의 측면에서 보면 전엔 분명 길가에 드문드문 보였는데 이제는 보이지 않는 곳이 드물다. 표현을 달리 하면 징그러울 정도로 많다. 앞에 언급한 내용대로 작년까지는 집터로 닦아놓은 밭에 드문드문 보이던 달맞이꽃이 올해는 다른 풀 하나 자리할 틈 없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다.
또 달맞이꽃은 뿌리가 깊게 박혀서 웬만큼 자라면 어른들도 뽑기에 힘이 부치고, 가축들도 이 풀은 입에 대지 않아 먹이로 쓸 수도 없다. 달맞이꽃의 폐해를 진작부터 느껴 행동으로 옮긴 지자체가 있음도 다 그런 이유에서다. [연합뉴스] 기사 (2007.05.28)를 보자.
“천연기념물 제431호인 충남 태안 '모래언덕(砂丘)'이 되살아나고 있는데, 모래언덕 초지에 달맞이꽃이 마구 잠식해 연약한 사구식물과 자생식물들을 몰아내 멸종위기에 놓였다. 그래서 태안군과 환경보호 단체에서 '달맞이꽃과의 전쟁'을 벌여 그 계획이 효과를 봐 모래언덕에 다시 토종식물이 자리 잡게 되었다.”
여러 식물이 어울려 조화를 이루며 자라는 풀밭과 한 종류만 독차지한 풀밭은 한 번 흘낏 보는 이에겐 별것 아닌 듯 보이나, 날마다 보는 이에겐 자못 심각하다. 달맞이꽃이 노랑물감으로 온 밭을 스프레이로 뿌려놓은 듯이 노랑세상 만들더라도 말이다.
아직 생태교란식물에는 들어가지 않으나 달맞이꽃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지켜볼 때가 왔지 않나 싶다. 단순히 보고 즐기는 꽃에서 말이다.
*. 이 글은 한 달 전쯤 쓴 글이며, 마지막 사진은 화초로 개량한 황금달맞이꽃인데, 도롯가에 심어 도시 미관을 살린 예로 [전북투데이](2021.06.04)에서 퍼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