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우씨의 詩詩하게 살자(187)

제187편 : 이범노 시인의 '산골이발소'

@. 오늘은 추석을 글감으로 한 시를 해설 없이 배달합니다.


산골이발소

이범노


팔십 년 묵은 감나무 아래

통나무 의자를 놓고

머리를 깎습니다.


이빨 빠진 기계가 지나간 뒤

더벅머리 깎이는 아이들의 머리는

뒷산에 떨어지는 알밤처럼

여물었습니다.


*껄밤송이 같은 아이들이

주머니엔 알밤이 가득

*땡감을 깨물면서 머리 깎으러

모여옵니다.

달은 매일 밤 통통 여물어 가고

내일은 추석.


감은 햇볕에 데어 붉었습니다.

밤은 기쁨에 겨워

가슴을 헤치고 여물었습니다.

노란 감나무잎 날리는 바람은

시원해 좋은데,

들지 않는 기계를 놀리느라고

아저씨 이마는 땀방울이

송알송알 열립니다.


깎은 아이 웃고,

깎는 아이 눈물 짜고,

내일은 추석.

오랜만에 부산한 산골 이발소엔

여무는 가을 하늘이

한아름 다가옵니다.

- [조선일보](1964년) 신춘문예 당선작


*. 껄밤송이 : 아직 덜 익은 밤송이

*. 땡감 : 덜 익어 떫은맛이 가시지 않은 감


#. 이극로 시인 : 인터넷에 1964년 [조선일보] 동시 당선이란 내용 외엔 어떤 자료도 없으니, 혹 이 시인을 아시는 분은 댓글로 달아주시길.



<함께 나누기>


오늘 해설은 생략합니다.


글벗님들, 한가위 명절 동안 행복과 평화가 내내 머무르시길...


*. 사진은 [경향신문](2007.09.02) 에서 퍼왔는데, 전남 장흥군 소재 '수문이발관'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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