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윤호 시인(1964년생) : 강원도 정선 출신으로 1990년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 현재 전업시인으로 오직 시만 쓰며 사는데, 그래서 ‘시의 순교자’란 얻은 별명을 얻음.
<함께 나누기>
도시 사는 한 40대 직장인의 글을 읽었습니다. 그는 짬짬이 자기 가족 넷만 해외여행 다녀왔을 뿐, 고향에 홀로 계신 어머니랑 함께 한 적 없었답니다. 일단 어머니는 연세가 많아 해외 나가기 어려울 거라는 점과 택시를 타든 숙소에 들든 식당을 이용하든 넷은 적당한데 다섯이면 불편하리란 생각에서.
그러면서도 미안한 마음은 남아 이번에 가깝고도 비교적 편한 일본 후쿠오카 여행하기로 계획하고 혹 함께 갈 수 있는지 전화했답니다. 첫 말에, “아이구 마, 됐다. 내사 여행 안 좋아한다. 너거들끼리 댕겨와라. 그라고 인자 오디 나댕길 맨큼 심도 없다.”
대충 예상했던 답이라 그래도 넌지시 아이들 내세우며 손주들이 할머니랑 여행하기를 원한다는 말을 던졌다 합니다. 이 말에도 거절하면 포기하려고. 헌데 어머니 말이 조금 달라졌다고 합니다.
“아이구 내사 마 멀리 가면 심만 드는데... 안 갔으면 싶은데... 우짜노, 아아들이 가자칸다니.”
부랴부랴 여권 만든다, 어머니가 여행 중 입을 옷 마련한다, 그렇게 서두른 결과 마침내 규슈의 한 료칸 - 온천 딸린 여관 -에 도착했답니다. 그때부터 어머니의 세상, 어머니의 여행이 되었답니다. 그리고 아들은 가장 행복한 어머니의 얼굴을 마주 대했고.
시로 들어갑니다.
“내가 ‘아니오’라 할 때 / 넌 ‘안이요’라 듣는다”
나는 부정의 말을 하는데 너는 부정의 말로 듣지 않고 밖의 반대인 ‘안’으로 알아듣습니다. 아닙니다, 알아듣는 게 아니라 받아들입니다. 여기서 나는 ‘아니오’라 답할 때는 ‘아니오!’라 답하는, 옳고 그름을 분명히 하는 사람이 아니라 부정적인 말을 습관처럼 하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어린이가 말을 배울 때 가능한 부정의 말을 쓰지 않게 가르치라 하지요. 부정적인 답이 나오는 질문 던지지 말라고. 어릴 때부터 ‘아니오’란 말이 입에 붙으면 커서도 잠재의식 속에 부정의 마음이 쌓여 주변 상황을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마음이 생긴답니다.
“더 깊은 긍정”
‘아니오’를 ‘안이요’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부정할 줄 몰라서 하지 않는 게 아니라 그 자리에서는 굳이 부정할 필요가 없음을 깨달은 사람이겠지요. 부정을 부정하면 긍정이 됩니다. 이때의 긍정은 무조건 허허 하며 웃어넘김이 아니라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을 담습니다.
앞에서 어머니는 ‘나는 힘이 없어 여행 못 간다.’고 했지만 아들은 그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보다, 어머니가 왜 나의 제의를 거절했는가(부정했는가)를 먼저 헤아리는 마음, 그게 더 깊은 긍정이겠지요.
“내가 ‘잘 가’라고 하면 / 넌 ‘가지 마’로 들을까”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려 할 때 내가 ‘잘 가!’라 하면 말 그대로 받아들여 말하기 무섭게 돌아서가는 너를 본다면 내 마음은 어떨까요? 비록 나는 ‘잘 가’라 인사했지만 그 속에 담긴 ‘가지 마’란 속뜻을 깨달을 때라야 사랑의 꽃이 더욱더 활짝 핍니다.
“암호로 건너는 한 세상”
옛날 GOD가 부른 「어머님께」에 나오는 노랫말, ‘어머니는 짜장면이 싫다고 하셨어.’ 이 말에 담긴 암호를 풀지 못하면 어머니는 정말 짜장면을 싫어하는 사람으로 기억에 남게 됩니다. 자식에게 많이 먹게 하려는 속뜻을 모른다면.
사랑할 땐 ‘나는 니가 마 억수로 좋다’, ‘내 아를 낳아 도’ 하는 식의 직설적인 표현도 좋지만, ‘아침에 눈 떴을 때 너의 얼굴을 매일 볼 수 있으면 참 좋겠다.’는 식의 고백도 좋지 않을까요. 이러면 사랑하는 사람 사이엔 둘만의 암호가 존재한다고 하겠지요.
“내가 ‘잘 지내고 있어’ 하면 / 넌 ‘어서 와’로 듣는다”
전화로 대화하다가 ‘나는 잘 지내고 있어’ 이 말에 담긴 의미를 그 문장만 풀이하지 말고 말할 때 풍기는 소리의 빛깔과 무늬도 함께 파악해야 합니다. ‘내가 잘 지내고 있어’가 잘 지내고 있다기보다 ‘힘드니까 네가 좀 와줬으면 좋겠어.’로 해석해야 할 때도 있기에.
오늘 배달하는 시의 핵심이 담긴 시행은 “내가 ‘잘 지내고 있어’하면 / 넌 ‘어서 와’”입니다. 즉 열린 마음으로 들어줄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지요. 이렇게 될 때 다른 사람의 고통을 ‘내 것’처럼 이해하는 마음이 생겨날 겁니다.
한가위 명절에 혹 부모님이나 나이 든 형제자매 만나면 한 번 인사 삼아 어디 놀러 가자고 해보십시오. 답은 뻔할 겁니다. “아이구 마, 요새 힘이 없어서.” 또는 "뭣땀새 돈 많이 들여 그런 데 갈끼고" 하고 말하면 마지못한 듯 따라나서는 대답 이끌어낼 질문거리 준비하시길.
사랑은 어쩌면 암호로 돼 있어 속뜻 샅샅이 훑어야 이해할 경우도 생기니까요.
*. 첫째 사진은 KBS1 [인간극장] '106세 엄마와 나(2015.05.04~8)'에서, 둘째 사진은 [브라보 마이 라이프](2017. 05.16)에 실린 '80세 엄마와 특별한 동행'에서 퍼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