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우씨의 詩詩하게 살자(189)

제189편 : 하재일 시인의 '돌다리'

@. 오늘은 하재일 시인의 시를 배달합니다.


돌다리

하재일


짜장면 배달부가 그릇을 찾으러 와도

선생님께선 꼭 문 앞까지 나가서 배웅하신다


화장실 청소하는 늙은 아주머니께도,

당직실을 지키는 위탁업체 경비원 할아버지께도,

파릇파릇한 공익근무 요원인 청년에게도,

먼저 말을 걸며 똑같이 허리를 굽히신다


그만큼의 거리를 지키며

그만큼의 목소리 높이로

그만큼의 그림자를 각도를 유지하며


개울가 다리 위에서 경계를 지운 세 사람이

크게 웃으며 지나갔다는, 옛날 여산(廬山)의 다리를

나는 매일매일 건너다니는 느낌이다


선생님께서 놓으신

시냇가의 경계 없는 돌다리를 생각한다

- [코딩](2017년)


#. 하재일 시인(1961년생) : 충남 보령 출신으로 1984년 [불교사상] 주최 '만해불교문학상’ 수상을 통해 등단. 경기도에서 고등학교 국어교사로 근무하다 명퇴했는데, 현재 경기도 고양시에 살면서 시를 씀




<함께 나누기>


오늘 시를 이해하려면 '호계삼소(虎溪三笑 : 호계란 계곡에서 세 사람이 웃다)’란 한자성어를 알아야 합니다. 이 고사성어의 주인공은 중국 동진(東晋)의 혜원 스님인데, 여산에 절을 짓고 불도에 용맹정진하였습니다.

그때 절 아래 '호계'라 불리는 계곡이 있었는데 그 중간 즈음에 돌다리 하나 놓였습니다. 혜원 스님은 손님이 찾아와 쉬다 가더라도 배웅할 땐 이 돌다리까지만 와서 작별하기로 작정한 뒤로 한 번도 돌다리를 넘어가는 일이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유학자이자 시인인 ‘도연명’과 도교의 유명한 ‘육정수’ 도사가 함께 혜원 스님이 있는 절을 방문했습니다. 셋은 마음이 맞아 즐겁게 얘기하다 돌아갈 즈음 배웅하려 나왔다가 서로의 이야기에 빠져 세 사람은 그만 깜빡 돌다리를 지나버렸습니다.

뒤늦게 그 사실을 알고 셋은 서로 얼굴을 마주 보며 누가 먼저랄 것 없이 껄껄 웃었습니다. 그래서 여산 소재 ‘호계’ 돌다리에서 세 사람이 웃었다 하여 ‘호계삼소(虎溪三笑)’란 한자성어가 생겨났습니다.


이 한자성어는 사실(史實)과 조금 다르답니다. 일단 주인공 세 사람의 생존 연대가 맞지 않기에. 하지만 후인은 이 성어를 즐겨 인용했습니다.

첫째, 불교와 유교와 도교의 거장 세 사람이 사이좋게 어울렸다는 점에서 종교 화합을 인용할 때 썼고, 다음으로 오늘 시에서와 같이 마음의 경계를 무너뜨린다는 뜻으로 썼습니다. 즉 호계에 놓인 돌다리는 우리가 마음속에 세운 경계의 담장이 됩니다.


우린 종종 '내가 세운 규칙을 절대로 벗어나지 않겠다', '나는 그 사람과 추구하는 바가 다르니 절대로 만나지 않겠다' 등의 경계석을 세웁니다. 가만 한번 생각해 봅시다. 이 돌다리 때문에 우리 사회에 얼마나 깊은 갈등의 골이 생겼는가를.

따라서 돌다리는 마음에 영원히 간직하고 가야 할 경계의 담장이 돼선 안 되고, 꽉 막힌 세상의 굳건한 장막이 되므로 때에 따라선 걷어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시에서 스승(필자의 진짜 스승일 수 있고, 아니면 사회에서 만난 존경하는 분일 수 있음)의 예를 들면서 ‘호계삼소’를 끌어옵니다. 선생님은 짜장면 배달부에게도, 화장실 청소부에도, 건물 경비원에도 공익근무요원에도 깍듯이 대하며 허리 굽혀 인사를 합니다.

선생님에게 그분들은 모두가 같은 사람이요, 존중받아야 할 사람이기 때문에 신분과 권력에서 오는 벽을 인정하지 않고 평등하게 대합니다.

헌데 우리는 어떻습니까? 똑같은 사람으로 평등하게 대합니까? 권력 있고 돈 많은 유명인사와 무명의 서민에게도? 똑같은 거리로 다가가 인사 건네며, 똑같이 다정한 목소리로 대화를 나누며, 똑같은 기울기로 허리 굽혀 인사했습니까?


“개울가 다리 위에서 경계를 지운 세 사람이 / 크게 웃으며 지나갔다는, 옛날 여산(廬山)의 다리를”


종교도 다르고 추구하는 바도 다른 세 사람이 서로를 존중하는 마음에서 '돌다리'라는 경계를 넘어섰습니다. 이 세 분처럼 우리도 그렇게 살 수 없을까요? 진보든 보수든 피 터지게 싸우더라도 돌아서 나오면 서로의 어깨를 두들겨줄 날이 언제 올까요?


“선생님께서 놓으신 / 시냇가의 경계 없는 돌다리를 생각한다”


이 선생님은 실존하는 선생님이기보다는 스승의 이상형을 그려놓은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요즘 세상에서는 이런 분을 볼 수 없으니까요. 전엔 이런 분을 가끔 볼 수 있었건만 지금은 눈을 씻고 봐도 보이지 않습니다. 어쩌면 그런 스승 보고 싶은 마음에 이 시를 썼을지도.



*. 첫째 그림은 중국 송나라 화가 석각의 '호계삼소도'이며, 둘째 사진은 장벽 가운데 최고 장벽이었던 베를린 장벽 붕괴 장면으로, 둘 다 구글 이미지에서 퍼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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