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우씨의 詩詩하게 살자(190)

제190편 : 하종오 시인의 '동승'

@. 오늘은 하종오 시인의 시를 배달합니다.


동승(同乘)

하종오


국철을 타고 앉아 가다가

문득 알아들을 수 없는 말들이 들려 살피니

아시안 젊은 남녀가 건너편에 앉아 있었다

늦은 봄날 더운 공휴일 오후

나는 *잔무 하러 사무실에 나가는 길이었다

저이들이 무엇 하려고

국철을 탔는지 궁금해서 쳐다보면

서로 마주 보며 떠들다가 웃다가 귓속말할 뿐

나를 쳐다보지 않았다

모자 장사가 모자를 팔러 오자

천 원 주고 사서 번갈아 머리에 써 보고

만년필 장사가 만년필을 팔고 오자

천 원 주고 사서 번갈아 손바닥에 써 보는 저이들

문득 나는 천박한 호기심이 발동했다는 생각이 들어서

황급하게 차창 밖으로 고개 돌렸다

국철은 강가를 달리고 너울거리는 수면 위에는

깃털 색깔이 다른 새 여러 마리가 물결을 타고 있었다

나는 아시안 젊은 남녀와 *천연하게

동승하지 못하고 있어 낯짝 부끄러웠다

국철은 회사와 공장이 많은 노선을 남겨 두고 있었다

저이들도 일자리로 돌아가는 중이지 않을까

- [국경 없는 공장](2007년)


*. 잔무 : 남은 일

*. 천연하게 : 자연스럽게


#. 하종오 시인(1954년생) : 경북 의성 출신으로 1975년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 초기엔 다양한 서정시를 쓰다가 2004년부터 이주노동자 문제를 화두로 삼고 이를 표현하는 시를 많이 쓰며, 현재 강화군 시골에 삶.




<함께 나누기>


이 시를 이해함에 ‘시선의 폭력’이란 용어를 끌어와 봅니다. 내가 호기심을 갖고 남의 행동을 엿보는 행위를 말하는데, 그게 폭력처럼 쓰일 경우가 더러 있습니다.

예를 들어 아주 잠깐이라면 몰라도 동남아시아인(또는 흑인)이 내 앞을 지나칠 때 그의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본다든지, 아니면 지하철이나 버스 안에서 흘끔흘끔 바라본다든지 하는 행위가 다 시선의 폭력에 해당합니다. 왜냐면 같은 경우 우리나라 사람이 지나칠 땐 그러지 않기 때문에.


이 시선의 폭력이란 말에 거부감이 든다면 편견, 선입견, 더 순화된 말로 ‘호기심’이라고 하겠지만 상대방이 불편함을 느낀다면 폭력이 아닐까요. 이 시선의 폭력은 꼭 외국인을 봤을 때만 나타나지 않고 우리나라 국민이라도 장애인을 그런 시선으로 본다면 마찬가지겠지요.


오늘 시에서 화자는 남은 일을 위해 공휴일 오후에 국철을 타고 사무실로 가는 중인데, 이때 화자는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나누는 아시안 젊은 남녀 한 쌍을 발견하고 그들을 바라봅니다.


“저이들이 무엇 하려고 / 국철을 탔는지 궁금해서 쳐다보면 / 서로 마주 보며 떠들다가 웃다가 귓속말할 뿐 / 나를 쳐다보지 않았다”


여기서 화자는 동남아시아 남녀를 쳐다보지만, 그들은 화자를 쳐다보지 않습니다. 만약 그들이 한국인 젊은 남녀였어도 그랬을까요? 어쩌면 단순한 호기심일 수 있지만 그들과 나는 다르다는 의식에서 나온 행위가 아닐까 합니다. 함께 국철에 동승한 동등한 사람으로 보지 않고.


“문득 나는 천박한 호기심이 발동했다는 생각이 들어서 / 황급하게 차창 밖으로 고개 돌렸다”


우리나라 사람이었으면 곁눈 주지 않았으련만 그들이 동남아시아 젊은 남녀였기 때문에 쳐다봄을 화자는 '천박한 호기심'이라 했습니다. 어쩌면 시인은 외국인을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더라도 서양인을 볼 때와 동남아시아인 볼 때 시선의 다른 점을 표현하려 함이 아닌지...


“나는 아시안 젊은 남녀와 천연하게 / 동승하지 못하고 있어 낯짝 부끄러웠다”


저도 만약 그 국철에 타고 있었다면 제 시선 역시 천박한 호기심을 띠고 흘깃흘깃 훔쳐보았을지 모릅니다. 그게 문제라고 인식하지 못했으니. 동남아시아 젊은 남녀도 나와 마찬가지로 돈을 내고 타는 승객인데 자연스러운 동승자로 보지 못한 시선, 괜히 부끄럼이 느껴지는 시행입니다.


“국철은 강가를 달리고 너울거리는 수면 위에는 / 깃털 색깔이 다른 새 여러 마리가 물결을 타고 있었다”


이 시에서 가장 주목한 시행입니다. ‘깃털 색깔이 다른 여러 마리 새’, 무얼 비유하는지 다 아시겠지요. 왜 우리는 빛깔이 달라도 국철이 달리는 강가를 유유히 나는 새처럼, 피부색과 외모가 조금 달라도 함께 자연스럽게 어울릴 수 없을까요? 왜 그들을 바라봄에 평등한 눈빛을 보내지 못할까요?



*. 첫째 사진은 [경향신문](2024.03.17)에서, 둘째는 BBC NEWS 코리아(2021.05.14)에서 퍼왔습니다. 특히 둘째 사진은 이주노동자 숙소인데 침실만 있고 화장실이 없어 멀리 떨어진 공용 화장실로 갔다 와야 하고, 전깃불이 없고 매우 더럽다고 합니다. 게다가 여름에는 에어컨 없이 선풍기 한 대만 있어 덥고, 겨울에는 난방이 제대로 안 돼 몹시 춥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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