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우씨의 詩詩하게 살자(191)

제191편 : 장철문 시인의 '전봇대'

@. 오늘은 장철문 시인의 시를 배달합니다.


전봇대

장철문


말라깽이 전봇대는 꼿꼿이 서서

혼자다


골목 귀퉁이에 서서

혼자다


혼자라서

팔을 길게 늘여

다른 전봇대와 손을 잡았다


팔을 너무 늘여서

줄처럼 가늘어졌다


밤에는 보이지 않아서

불을 켜

서로 여기라고 손을 든다


서로 붙잡은 손과 손으로

따뜻한 기운이 번져서

사람의 집에도 불이 켜진다

- [자꾸 건드리니까](2017년)


#. 장철문(1966년생) : 전북 장수 출신으로 1994년 [창작과비평]을 통해 등단. 현재 순천대 문창과 교수로 재직 중인데 특히 아동문학 전공이라 동시도 쓰며 쉬우면서도 생각의 깊이를 담은 시를 많이 씀.




<함께 나누기>


오늘 시는 고운 동시를 모아 엮은 [전봇대는 혼자다]라는 합동 동시집에 실려 있는 작품입니다. 그러니까 '동시'란 말이지요. 또 중학 국어교과서(2-1)에도 실려 있어 중학생도 읽을 만한 시란 뜻인데 거기에 어른들도 읽어야 할 시로 뽑아 배달합니다.

평소 저는 글로든 강의로든 동시나 동화를 어린이보다 어른이 먼저 읽어야 한다고 내세웁니다. 어른들이 좋은 동시 좋은 동화를 읽으면 마음에 평화가 흐르고 동시 동화의 좋은 점을 아이들에게 들려줄 수 있으니까요.


시로 들어갑니다.


"말라깽이 전봇대는 꼿꼿이 서서 / 혼자다"


전봇대를 말라깽이로 비유함은 그 외형을 보면 누구나 갖게 되는 인상의 표현입니다. 다만 거기에 다른 의미도 담겼습니다. 전봇대가 바짝 마른 몸으로 높이 꼿꼿이 서 있으면 '고독'과 '불안'이란 함축적 의미가 달라붙습니다. 외롭고 불안하기에 뭔가에 의지하거나 함께 해야 함을.


"혼자라서 / 팔을 길게 늘여 / 다른 전봇대와 손을 잡았다"


혼자이기에 버티기 힘들어 다른 전봇대와 손을 잡았다는 뜻이지만 오히려 힘들어하는 이웃을 향해 내가 먼저 손을 뻗었다로 읽습니다. 앞과 뒤의 차이는 뚜렷합니다. 삶이 힘들어 누군가에게 기대기보단 내가 주도적으로 그의 힘듦을 덜어주려 애쓴다는 뜻이 되니까요.

내가 팔을 길게 늘여 다른 전봇대와 손을 잡습니다. 그러면 그쪽도 내게 손을 내밀 터. 둘이 손 잡자 달아오른 온기가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전해져 서로에게 따스한 기운을 전해줍니다.


"팔을 너무 늘여서 / 줄처럼 가늘어졌다"


단순히 보면 전봇대와 전봇대를 잇는 전깃줄이 가늘다는 뜻이지만 그 속엔 서로를 향해 팔을 뻗치다 보니 가늘어졌다는 뜻으로 새깁니다. 팔을 뻗음은 내가 쓰다 남은 힘을 너에게 줌이 아니라 내 피를 뽑아 너에게 수혈한다는 뜻처럼 희생의 의미까지 포함합니다.


"밤에는 보이지 않아서 / 불을 켜 / 서로 여기라고 손을 든다"


아무리 외로워도 살 만하다 여김은 깜깜한 밤에도 어두울까 봐 서로에게 불을 켜서 여기라고 손을 들어주기 때문입니다. 삶이 아무리 힘들어도 '내가 여기 네 곁에 있어. 그러니 힘내.' 이런 말 해주는 벗이 있다면 어깨 위의 짐이 한층 가벼워지겠지요.


"서로 붙잡은 손과 손으로 / 따뜻한 기운이 번져서 / 사람의 집에도 불이 켜진다"


이 시에서 가장 눈길 오래 머무는 시행입니다. 특히 이 시구 '사람의 집에도 불이 켜진다'를 읽고 얼른 책갈피에 넣어두었습니다. 전봇대를 잇는 전깃줄로 전기가 흘러 집집마다 불이 들어오는 풍경을 마치 사람과 사람이 연대하여 하나가 되는 모습처럼 묘사했습니다.


가늘지만 연결돼 더 이상 외롭지 않고, 더욱이 어두운 세상을 밝히려는 메시지를 전하는 시를 읽으면서 이번 한 주 힘차게 발을 내디딥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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