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우씨의 詩詩하게 살자(192)

제192편 : 윤재철 시인의 '다시 시작했으면 좋겠네'

@. 오늘은 윤재철 시인의 시를 배달합니다.


다시 시작했으면 좋겠네

윤재철


시간을 한 두어 달만

뒤로 물렸으면 좋겠네

삼월에 딸기 먹고

오월에 참외 먹는

이 시간을 두어 달만 뒤로 물려

오월 난만한 햇빛 속에 딸기 먹고

칠월 더위 한창일 때 참외를 먹고 싶네


시간을 한 두어 달만

뒤로 물려 다시 시작했으면 좋겠네

비닐하우스도 걷고

비닐하우스 속 그 독한 농약 냄새도 걷고

과일 하나 놓고라도

제대로 된 시절을 느껴보고 싶네

제대로 된 햇빛과 바람을 먹어보고 싶네


서로가 하루 먼저 하다 보니

한 달 두 달이 당겨지고

그것을 반색하고 먼저 먹어보는 호사가

이제는 당연한 듯

먼저먼저 빨리빨리

거꾸로 가는 시계를

이제는 제대로 제자리에 돌려

다시 시작했으면 좋겠네

- [세상에 새로 온 꽃](2004년)


#. 윤재철 시인(1953년생) : 충남 논산 출신으로 1982년 동인지 ‘오월시’에 시를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 '실천문학사' 편집부에서 일하면서 [실천문학] 복간에 애썼으며, 중등학교 교사로 근무하다 퇴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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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나누기>


45년 전 제가 부산 모 여중에 근무할 때 일입니다. 그때 그 학교에선 봄에 가정방문을 꼭 했습니다. (이유는 생략)

어느 해 한 학생의 집을 방문했는데 교무수첩에 적힌 정보로 학생의 아버지가 당시 가야동에서 큰 병원 원장님이셨습니다. 거실에 들어가 소파에 앉자 다과를 내놓은데 책에서만 봤지 한 번도 먹어보지 못한 과일이 나왔습니다. 바로 파인애플.

그때 학생의 어머니가 파인애플 잘라낸 한 조각 건네면서 하신 말씀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선생님, 이거 한 번도 안 드셔보셨지요? 참 맛있습니다.”


지금이야 돈 들고 마트에 가면 (당시 가정방문했던) 삼월이라도 파인애플 먹을 수 있습니다만 그때는 정말 아주 부잣집 아니면 불가능. 실제 먹어본 적도 실제 본 적도 없었지만 파인애플이 봄이란 계절에 먹을 수 없다는 상식은 알았습니다.

그때 얼마나 좋았든지 학부형이 건넨 ‘한 번도 안 드셔보셨지요.’에 담긴 의미를 제대로 헤아리지 못하고 정말 황홀(?)하게 먹었습니다.


예전에 과일은 계절과 꼭 연결돼 있었습니다. 봄엔 딸기, 여름엔 참외, 가을엔 사과, 겨울엔 밀감 하는 식으로. 그런데 지금은 아니지요. 딸기를 겨울에 먹을 수 있고, 참외를 봄에 먹을 수 있고, 파인애플은 아무 때나 돈만 주면 사 먹을 수 있으니까요.

이걸 비닐하우스에서 재배하면 다 가능합니다. 특별히 과일나무에 달린 과일 아니라 채전에서 나는 일 년생 과일이라면. 그래서 나이 대에 따라 시간에 대한 공통된 기억을 갖기 어렵다고 합니다. 즉 나이 든 이들이 느끼는 계절감과 젊은 이들이 느끼는 계절은 다르기에.


계절과 과일의 관계에서 형성된 고착된 이미지대로 사람마다 기억하는 3월, 5월, 7월은 다 다른 색으로 그려질 것입니다. 서로 만나서 얘기 나누더라도 같은 또래, 같은 지역, 같은 경제 정도에 따라 다르기에 각기 다른 빛깔의 같은 도형 속 퍼즐에 맞출 수 있을까요?


시로 들어갑니다.


“시간을 한 두어 달만 / 뒤로 물렸으면 좋겠네”


화자는 두어 달 시간을 물렸으면 하고 바랍니다. (비닐하우스 재배) 딸기를 삼월에 먹는데 노지에서 자연스럽게 익는 오월에 먹으면 어떻겠느냐고. 예전에야 딸기를 오월에 먹고 참외를 칠월에 먹었습니다만 지금은 빨리 내놓아야 비싸게 팔리니 두 달이나 빨리 먹게 되었습니다.


“시간을 한 두어 달만 / 뒤로 물려 다시 시작했으면 좋겠네”


화자에겐 그게 좀 못마땅한가 봅니다. 인위적으로 빨리 자라게 하지 말고 자연스럽게 자라게 해 주면 어떻겠느냐고. 비닐하우스를 걷으면 하우스 속 그 독한 농약 냄새도 걷어지고, 자연의 햇빛과 바람 맞으며 제 때 자란 과일을 먹고 싶다고.


“서로가 하루 먼저 하다 보니 / 한 달 두 달이 당겨지고”


화자는 이제는 너무나 당연한 일을 되돌려놓자고 합니다. 조금 더 일찍 재배하여 조금 더 일찍 먹고 싶어 하는 마음을 조금만 더 미루자고. 단순히 읽으면 과일에 국한되지만 속뜻엔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시간을 편리함이란 말을 내세워 인위적으로 당기려는 풍토를 비판합니다.


“먼저먼저 빨리빨리 / 거꾸로 가는 시계를 / 이제는 제대로 제자리에 돌려 / 다시 시작했으면 좋겠네”


남들보다 앞서려면 조금 더 빨라야 합니다. 그게 지금 이 시대에선 가장 합리적이고 정상적인 접근입니다. 함에도 시인은 빨리 가려 서두려면 오히려 거꾸로 가는 시계가 된다고 일침 놓습니다. 그래서 제 자리로 돌려놓고 다시 시작하자고.

문명이 발달하면서 모든 게 '빨리 한층 더 빨리'로 치닫습니다. 빨리 움직여야 살기 편하고 좀 더 행복을 누릴 수 있다고 여깁니다. 헌데 빨리 하면 나의 일이 그만큼 줄어들어 쉴 시간이 많아야 하는데 아무리 빨라져도 나는 오히려 더 바빠집니다. 참 이해할 수 없습니다.


남보다 조금 더 빨리 일하여 더 많이 벌고, 조금 더 빨리 움직여 남들에게 인정받으려는 그 마음이 오히려 우리의 행복과 자유를 앗아가는 건 아닌지 생각해 볼 때입니다.


*. 사진은 겨울딸기밭 사진인데 [경북일보](2006.01.10)에서 퍼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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