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우씨의 詩詩하게 살자(193)

제193편 : 조은 시인의 '느끼든 못 느끼든'

@. 오늘은 조은 시인의 시를 배달합니다.


느끼든 못 느끼든

조은


오랜만에 만난 소꿉친구가

하룻밤 자고 갔다

어디에 속하든 지능이 가장 높았던

나의 열등감을 여러 번 자극했던

친구는 내게 시집 한 권을 선물했다


내가 받아 든 시집은

한 성직자의 베스트셀러

그동안 쓴 수많은 시 때문에

그분은 내게

언제나 밋밋했다


부르르 떨다 내리는 주먹

불길한 월식과 일식

비틀비틀 가는 발자국

붉은 손자국이 있는 뺨


그런 것들에 눈길이 가는 나는

삶을 예찬하는 그분의

시에 늘 시들했다


외롭고 외롭다

그걸 느끼는 내 삶도

다르게 느끼는 친구의 삶도

- [옆 발자국](2018년)


#. 조은 시인(1960년생) : 경북 안동 출신으로 1988년 계간 [세계의문학]을 통해 등단. 현재 서울 사직동의 작고 허름한 한옥에 혼자 살면서 도시 변두리 사람들의 아픔을 노래한 시를 많이 씀




<함께 나누기>


제가 날마다 뽑아 보내는 시가 너무 어둡거나 너무 치열한 삶을 강조하는 시가 많아 불편하다고 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그 말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흔히 말하는 ‘달달한 시’는 (원하는 분이 많더라도) 참된 삶의 모습 보여주는데 부족하다고 여겨 잘 싣지 않습니다.

또 베스트셀러 소설가 베스트셀러 시인, 이런 말을 뉴스나 글에서 많이 보지요. 말 그대로 독자 입맛에 맞는 글을 써 인기 많다는 뜻입니다. 베스트셀러 문인은 살 만합니다. 아니 살 만한 정도가 아니라 어느 정도 이름나면 강의 요청도 받아 거기서 얻는 수입도 짭짤하다니까요.


시에 언급된 '내가 받아 든 시집은/ 한 성직자의 베스트셀러/ 그동안 쓴 수많은 시 때문에'란 구절에서 한 분이 퍼뜩 떠오르시겠지요. 저도 일 년에 한 번씩 이분의 시를 배달합니다. 다만 종교의 편향성을 고려해 스님이나 목사님 시도 함께 배달하는 묘수(?)를 부리지만.

오늘 조은 시인의 시가 그분의 시를 비난하거나 비판하려 함이 아님은 다 아실 겁니다. 다만 자기와 쓰는 결이 다르다는 점을 내세울 뿐.


시로 들어갑니다.


"오랜만에 만난 소꿉친구가 / 하룻밤 자고 갔다"


소꿉친구라면 한 방에 같이 잘 수 있지요. 다만 그 친구는 어디 속하든 지능이 가장 높아 화자의 열등감을 여러 번 자극했던 인물입니다. 친구는 시집 한 권을 선물했습니다. 시인에게 시집 선물은 참 좋지요. 헌데 친구가 선물한 시집이 화자의 비위를 긁습니다.


"그분은 내게 / 언제나 밋밋했다"


화자가 받아 든 시집은 한 성직자의 베스트셀러 시집. 그렇게 인기 있는 시집을 받으면서 화자가 내뱉는 말, '그분은 내게 너무 밋밋했다' '밋밋하다'는 말엔 좋은 뜻이 많으나 '맛이 밋밋하다' 할 때는 달라집니다. '음식이 제맛 나지 않고 몹시 싱겁다'는 뜻으로 쓰이니까요.


"부르르 떨다 내리는 주먹 / 불길한 월식과 일식 / 비틀비틀 가는 발자국 / 붉은 손자국이 있는 뺨"


그럼 왜 화자는 성직자 베스트셀러 시인이 쓴 시를 읽고 밋밋하다고 여겼을까에 대한 답입니다. 위에 나열한 '불길 불안 초조 절망' 등이 시 언저리에 깔려 있지 않다고 여긴 겁니다. 그래서 화자는 이리 덧붙입니다.

"그런 것들에 눈길이 가는 나는 / 삶을 예찬하는 그분의 / 시에 늘 시들했다"

제가 카톡으로 시를 보내면 댓글 써주는 이가 몇 안 되는데 그 가운데 한 분은 삶을 통달하여 도를 얻은 듯한 내용의 댓글을 보냅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다 신의 뜻이 담겼겠지요' 류의 답. 그럴 때마다 시 속에 담긴 치열함을 모르는지 아니면 진짜 득도한 분이신지...


이즈음에서 시인이 쓴 산문집에 나온 글을 인용해 봅니다.

"너무 쉽게 희망과 용서와 구원을 말하지 말자. 값싼 은혜를 남발하지 말자."

우리가 읽는 글에 가장 많이 쓰이는 단어가 '희망' 이랍니다. 달리 쓴다면 '절망을 극복하자'가 되겠지요. 우린 너무 많이 희망을 쓰는 게 아닐까요. '희망고문'이란 말을 아시지요. 현실은 절망뿐인데 희망이 있다는 식으로 세뇌시키려는 모든 움직임을.

주변을 둘러봐도 아름답고 행복한 삶은 보이지 않는데, 글에서는 다들 아름답고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 하니 미칠 노릇이지요.


"외롭고 외롭다 / 그걸 느끼는 내 삶도 / 다르게 느끼는 친구의 삶도"


화자가 외로움 느끼는 거야 쉽게 이해되지만 그 똑똑한 친구의 삶도 외롭다고 단정합니다. 단지 치열함이 빠진 밋밋한 시를 담은 시집을 선물해 줘서? 어쩌면 여기에도 화자의 열등감은 끼어들지 모르겠습니다. 그분만큼 베스트셀러 시인이 못됨을 꼬집는 듯한 친구의 선물 때문에.


제가 요즘 갖는 화두입니다.

'당장 한 끼 밥이 필요하고, 지독히도 외로운 사람에게 소확행이란 말조차 얼마나 사치인가?'



*. 첫째 사진은 조은 시인이 자기 사는 사직동 집 대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는 장면이며 [경향신문](2016.02.26), 둘째 사진은 무료급식소 앞에 길게 늘어선 노인들 모습[연합뉴스](2021. 01.26)에서 퍼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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