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하빈 시인(1957년생, 본명 ‘장지현’) : 경북 김천 출신으로 1997년 [시와시학]을 통해 등단. 교사로 근무하다가 명퇴한 뒤, 현재 팔공산 자락에 ‘다락헌’이란 이름의 글방을 지어 머물며 시를 쓰면서, 올 2월에 대구시인협회 회장을 맡음.
<함께 나누기>
시간에 대한 개념이 나이에 따라 다르다고 합니다. 젊을 때는 하루하루는 잘 가는데 한 달 일 년이 잘 안 간다 하고, 나이 드니까 반대로 하루하루는 잘 안 가는데 한 달 일 년을 얼마나 잘 가는지. 고개 한 번 돌리면 한 해가 저문다고 합니다. 헌데 같은 나이라도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다른 듯. 바쁘게 사는 사람에게 하루는 금방이요, 느긋하게 사는 사람에게 하루는 길고. 시로 들어갑니다.
“밥숟가락 들었다 놓는 사이 / 하루가 지나갔다”
요즘 일어나 아침 먹고 마을 한 바퀴, 오전 시 공부 잠깐, 점심 후 텃밭 둘러보기, 저녁 후 실내자전거 타기로 하루가 흘러갑니다. 거기에 바깥나들이 있다면 얼마나 바쁜지 정말 하루가 후딱입니다. 이를 시인은 '밥숟가락 들었다 놓는 사이에 하루가 지나갔다'라고 표현합니다. '밥숟가락', 가만 보면 요즘 특별한 일 없으면 하루 일과 중 밥 먹기가 가장 큰 시간 비중을 차지하니 이 표현이 맛납니다.
“하얗게 피어난 밥 한 공기 / 시래깃국 말아 후루룩 넘기는 / 아침상 물리자마자”
아침상 대하는 화자의 자세입니다. 밥 한 공기 시래깃국에 말아 후루룩 넘기는 모습으로 보아 화자는 도시보다 시골살이를 하는 듯. '후루룩 넘기는'에서 하루의 시간이 빨리 지나간다는 뜻으로 새깁니다. 시계의 시침은 도시가 빠르게 돌지만 하루의 시간은 시골이 더 빠르다고. “쪽문으로 들어온 이웃집 멍멍이 / 개똥 차반 차려놓고 가는 / 따뜻한 저녁 맞는다”
아침식사 후 오전오 후 일과가 빠지고 바로 저녁으로 이어짐에 주목합니다. 그만큼 하루의 시간이 짧다는 의미지만, 하루라는 시간 속에 급박히 흐르는 뭔가에 매이지 않고 산다는 뜻도 포함합니다. 거기에 '따뜻한'도 한몫하고.
“식탁 귀에 놓인 앉은뱅이달력 / 당기면 하루가 오고 / 밀치면 하루가 갔다”
앉은뱅이달력, 아무렇게나 그냥 표현한 시어 같으나 시인의 독창성이 돋보이는 대목입니다. '앉은뱅이책상' '앉은뱅이의자'란 말은 흔히 쓰지만 앉은뱅이달력은 이 시 말곤 보지 못했으니까요. 앉은뱅이달력의 이미지가 눈에 쉽게 그려진다면 그것이 큰 달력에 비해 쉬 넘길 수 있으니 하루가 빨리 지나감을 보여줌에 적합한 시어가 되겠지요.
“허공의 까치밥 쳐다보는 사이 / 한생이 지나갔다”
이 시행에 잠시 눈길 주다가 얼른 책갈피에 담았습니다. 이제 감나무에 감이 붉게 익어갈 즈음이지만 아직 홍시는 멀었고, 까치밥 남길 시간은 좀 더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만 까치밥만 남기고 홍시 다 딸 즈음이면 한 해 마감의 달력도 떨어집니다. 한 해가 가고, 한 해가 또 가면 한생이 지나갑니다.
그럼 시인은 단지 나이 드니 시간이 매우 빨리 지나간다는 뜻으로 이 시를 썼을까요. 그보다는 나이 들면 시간이 빠르게 흐르니, 하려고 작정한 일을 미루지 말고 하란 뜻으로 읽습니다.
*. 하루의 시작은 일출에서 하루의 마감은 일몰로 보아, 첫 사진은 일출이요 둘째 사진은 일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