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5화 : 늙은 얼굴이 멋질까, 설마?
* 늙은 얼굴이 멋질까, 설마? *
[1. 오랜만에 만난 이가 한 말]
마을 한 바퀴 길에 오랜만에 한 사람을 만났다. 그는 여기 출신이나 젊을 때 다른 지역으로 나가 생활해 그를 알 수 없어야 했는데... 한때 그의 아버지가 암에 걸려 ㅇㅇ대병원으로 통원치료받으러 다닐 때 마침 직장과 가까웠던 터라 차를 태워준 인연으로 알게 되었다.
그러니까 오 년 만에 다시 만났는가. 처음에 그는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 모자 쓰고 마스크 쓰고 선글라스까지 썼으니. 다 벗고 아는 체하자 그제사 알아보고 반가워했다. 헌데 반가움도 잠시,
“아니 선생님, 왜 이리 늙으셨습니까?”
이런 말을 몇 년 전부터 여러 차례 들었다. 자꾸 들으니 충격이 덜해야 하건만 아니다. 들을 때마다 괜히 아는 척했네 하는 자괴심만 늘었으니. 오랜만에 만난 제자에게서, 예전 함께 했던 모임회원에게서, 같은 학교 근무했던 선생님에게서, 옛 성당 교우에게서. 다 만나 인사함을 후회하곤 했다.
이들 공통점은 다 여자다. 여제자, 여성회원, 여선생님, 자매님. 남자가 그런 말 하면 넘기면 되련만 하필 여자니까 더 충격이다. 평소 남성보다 여성에게 인기 많다 자부하던 터에 들은 말이니. 그럴 때마다 집에 돌아와 거울을 본다. 정말 늙었다. 아니 폭삭 삭았다.
[2. 은둔의 여왕 그레타 가르보]
한때 할리우드 영화배우를 뒤적거린 적 있는데, 그때 눈에 띈 여자배우가 ‘그레타 가르보’였다. 찾아볼 사람을 위해 미리 언급하면 스웨덴 태생의 미국 배우로, 영화사에 이름을 남긴 유명한 여배우들 가운데 꼭지점에 선다.
1905년 출생했으니 데뷔했을 때는 무성영화시대, 한창 이름 날릴 때는 유성영화시대. 그러니 그녀는 무성과 유성영화에서 함께 성공을 거둔 보기 드문 스타다. 내가 이 여배우에게 주목한 점은 한창 젊을 때 은퇴하고선 갑자기 자취를 감췄다는 점. 대부분의 스타들이 나이 들어도 계속 출연한 점과 사뭇 다르다.
어느 신문에도 잡지에도 뉴스에도 은퇴 후 흔적이 드러난 적 없다. 누구 말대로 외계인에게 납치돼 외계로 끌려갔나 할 정도로. 가르보가 36세로 은퇴한 뒤 종적을 감춘 까닭이 훗날 알려졌다. 점점 늙어가는 모습을 팬들에게 보이기 싫다나.
그녀가 완전 은둔에 성공한 바람에 어느 파파라치도 알지 못했다. 우리 식으로 말하면 자연인처럼 살았다고 해야 하나. 일설에 따르면 캘리포니아 시골 마을에서 개방적으로 살았는데 마을 주민이 모두 그녀를 보호해준 바람에 소식이 새나가지 않았다는 얘기도 들린다.
은퇴 뒤 미국 대통령의 백악관 초대도 여러 번 거절하여 완전은둔에 성공한 가르보를 존경하는 사람과 비판하는 사람으로 나뉘지만 나는 참 멋지다고 생각한다. 가르보로 하여 사회적으로 크게 성공한 사람이 갑자기 외부활동을 중단하고 자취를 감추는 걸 뜻하는 "do a Garbo(가르보하다)"라는 관용어구도 만들어졌다.
[3. 늙은 감나무, 늙은 뽕나무]
우리 집 나무들은 나이가 많다. 그냥 많은 게 아니라 아주 많다. 몇 십 년 된 나무라면 명함을 내밀지 못한다. 감나무와 뽕나무가 백 살을 넘었다. 우리 땅의 전 주인께서 말씀하시길 그분의 아버지가 심었다고 하니 믿을 수밖에.
나이 든 감나무와 뽕나무를 예찬한 글을 여러 번 썼다. 거기에 ‘나무의 덕’이란 제목의 글도 썼고. 다 우리 집 나무를 글감으로 삼았다. 이제사 고백하지만 늙은 나무가 주는 가르침이나 멋짐보다 사실 흉이 더 많다. 그럼에도 ‘덕’이란 말을 다들 좋아하니 거기에 초점을 맞췄을 뿐.
우리 집 감나무는 이제 뿌리 쪽이 썩어서 감을 달지 못한다. 아니 감이 달리긴 하나 제대로 익을 때까지 버텨내지 못하고 다 떨어진다. 즉 감나무로써의 가치가 없다. 그럼 왜 그냥 놔두는가? 바로 나이 때문이다. 어떤 동물이든 식물이든 평균보다 훨씬 오래 살면 영물로 보아야 한다.
자르지 않다 보니 문제가 생겨났다. 센 바람이 불면 큰 가지 작은 가지가 마구 부러져 길을 막기 일쑤. 태풍 불면 다 넘어갈까 봐 가운데 기둥가지만 남기고 잘랐다. 그래도 한 가지 쓸모는 있다. 한여름 능소화가 올라가도록 어깨를 내준다는 점.
볼 때마다 자를까 말까 고민이다. '초강력태풍'이 불어온다는 말이 심심찮게 들리는 이즈음 완전히 쓰러져 길을 막거나 차를 덮칠까 걱정이다. 요즘 영물이란 점이 밀려나고 잘라야 한다는 점으로 생각을 굳히고 있다. 늙으면 잘려야 한다. 아쉽지만 사람도, 동물도, 식물도.
[4. 늙으면 멋지지 않고 추하다]
‘늙어도 아름답다’ ‘다시 젊어지고 싶지 않다’와 관련된 글을 찾으면 가장 먼저 두 분의 이름이 뜬다. 소설가 박경리 님과 박완서 님.
박경리 님은 운명하기 몇 달 전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다시 젊어지고 싶지 않다. 모진 세월 가고... 아아~~~ 편안하다. 늙어서 이렇게 편안한 것을...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박완서 님은 노년에 쓴 수필에서,
“나이가 드니 마음 놓고 고무줄 바지를 입을 수 있는 것처럼 나 편한 대로 헐렁하게 살 수 있어서 좋고 하고 싶지 않은 것을 안 할 수 있어 좋다. 다시 젊어지고 싶지 않다. 하고 싶지 않은 것을 안 하고 싶다고 말할 수 있는 자유가 얼마나 좋은데 젊음과 바꾸겠는가.”
이분들의 말이 진심에서 나온 말이라 믿는다. 허나 한 분야에서 일가를 이루거나 도를 얻은 분들과 달리 나는 늙은 모습이 추하고 보기 싫다. 코로나가 극성일 때 두 가지로 갈등을 했다. ‘걸리면 기저질환자라 쉽게 낫지 않고 자칫 잘못될 수 있는데.’ 하는 점과, ‘마스크 끼니 얼굴을 드러낼 필요가 없어 참 편하다’는 생각이 갈등을 이뤘다.
요즘 모임이 몇 없고 일부러 밖에 잘 나가지 않는다. 그렇다고 대인기피증 걸린 것도 아니건만 사람 만나는 게 두려워서. 다들 사람 만나는 게 두렵다고 하면 인간관계에서 배신을 당했거나 보기 싫은 사람 만날까 봐 그러느냐 할 터.
허나 인간관계 때문이 아니라 얼굴관계 때문이다. 그 전에 참 곱던 여인들도 팍 삭았고, 참 멋진 사내들도 나이 드니 다 망가졌다. 그나마 또래 모임에 가기는 하는데 또래들 얼굴 보고 돌아오면 다시 거울을 본다. 늙은 그 얼굴이 그의 얼굴뿐 아니라 바로 내 얼굴이다.
요즘 성당 갈 때 마스크를 꼭 쓴다. 다행히 마스크 쓰는 사람이 나 말고도 몇 있어 어색하지 않다. 이제 날이 추워지면 아예 합법적이 된다. 신부님도 좀 이상하게 생각할 게다. 영성체 할 때만 살짝 걷어 성체(제병 : 祭餠) 먹고는 다시 덮으니까.
버스를 타도, 전철을 타도, 택시를 타도, KTX를 타도 마스크 쓴 채다. 백화점, 슈퍼마켓, 동네 구멍가게 갈 때도 마찬가지다. 마스크를 오래 끼면 고무줄로 하여 귀가 좀 아프다. 그래도 얼굴 타지 않고 얼굴 가려주니 얼마나 좋은가.
단언컨대 나는 늙은 얼굴이 싫다. TV를 보다가 늙은 사람이 패널로 나오면 채널을 돌린다. ‘늙어간다’를 잘 ‘익어간다’라 표현한 글을 읽어도 ‘별 쓰잘데기없는 소릴 하네.’로 치부한다.
성현들은 ‘나이 드니 사람이 진중해지고 욕심이 없어진다.’고 설파했건만 나는 정반대다. 사람이 가벼워지고 욕심도 많아졌으니. 성현들 말씀과 정반대고, 박경리 님 박완서 님 말씀과도 정반대이고, 「바램」이란 노랫말 ‘우린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익어가는 겁니다.’란 말과도 어긋난다.
나만 그런가, 내가 병적인가? 아니면 다른 늙은이들은 정말 나이 드니 멋있다고 여기는 걸까? 참 궁금하다.
*. 일곱째 사진은 배우 지창욱인데 마스크로 가려도 멋짐은 사라지지 않고, 여덟째 사진은 할리우드 배우 베티 데이비스인데 젊을 때와 늙을 때의 차이를 보여줍니다.
그리고 감나무 사진과 제 얼굴 그림을 제외하곤 모두 구글 이미지에서 퍼왔습니다.